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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스테파노 Dec 18. 2024

<스타워즈>로 보는 세대순환론

영화로 읽는 정치지형의 순환론

스타워즈 시리즈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 시리즈는 대략 4세대에 걸쳐 지속된 대하드라마로 채워져 있다. 실제 방영도 1970년 대부터, 2020년대까지 3세대에 걸쳐 넓게 방영되었다. 처음부터 9부작을 구상했다는 루카스의 말은 반신반의하더라도 참 대단한 이야기를 써낸 것은 틀림없어 보다.


컴퓨터 그래픽, 미니어처, 각종 촬영기법뿐 아니라 시간 특정 없는 디스토피아적이면서 희망을 이야기하고, 포스트 아포칼립스적이지만 굴복 않는 인류의 끈기라는 역사가 있다. 미국에서는 단순한 영화 차원을 넘어 미국 문화를 대표하는 요소 중 하나임과 동시에 건국신화에 비교되는 상징성을 갖춘 초대형 프랜차이즈로 여기어다.


복잡한 가계도, "아나킨"만 기억하자


EU(Expanded Universe)이라 불리는 스타워즈 세계관의 구조는 사실 세대 간의 갈등이 중심 구조다. 스타워즈가 방대해서 헷갈리기도 하는데, 단순화하면 "아나킨 스카이워커-다스베이더와 그의 가문 연대기"라고 할 수 있다. 가장 매력적이면서도 강력한 포스의 소유자 아나킨 스카이워커의 흑화, 그리고 쌍둥이 자녀-러아와 루크와의 갈등이 스타워즈 시리즈의 하이라이트이자 큰 이야기 기둥이 아닐까 다. 기구한 이 가문은 세대 간에 단절이 심화되고, 서로 갈등하며, 결국 추구하던 지향점이 다르지 않음을 깨닫고 갈등을 봉합하는 서사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가장 큰 충격의 장면 "I'm your father. luke"


<스타워즈> 시리즈의 새대의 교차적 순환, 악의 축, 반군, 제국, 다시 반란의 교대를 보면서 요즘의 정치 지형을 빗대어 다. 보수-진보-보수로 교차되는 것 같은 '세대 순환' 구조는 그저 느낌적인 느낌일 뿐일까?


세대의 교체에 따라 일정한 순환주기를 두고 미국 정치의 주류가 보수와 진보로 교체된다는 주장이 있다. 바로 미국의 역사학자 아서 슐레진저 주니어는 <미국 역사의 순환>에 그런 주장을 기술하였다. 이 책이 발간되었던 1986년 당시를 살펴보면 흥미롭다. 보수의 아이콘인 레이건 정권이 예상을 넘고 청년층으로부터 강한 지지를 얻고 있을 때이기 때문다. 십 수년 전까지 미국은 반전운동으로 청년들의 진보적 요구가 온 나라를 뒤덮었기에, 보수의 꼭두각시 레이건이 청년층의 지지를 받는다는 것은 좀처럼 해석하기 어려운 일이 되었다.


반전 주의자 아버지를 둔 레이건 지지층


이에 대하여 슐레진저 주니어는 학자의 관점, 역사라는 인류의 세대 진화의 관점으로 설명다. 보수와 진보라는 정치적 지향의 성향은 '연령'의 문제가 아니라 '세대'의 문제라는 주장이다. 시기에 따라 청년 보수와 노인 진보가 존재한다는 말이다. 한 세대의 정치적인 성향은 그 세대가 처음으로 정치를 인지할 때, 어떤 상황과 환경에 처해 있었기에 의해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다.


한걸음 더해, '공공의 가치'와 '개인의 이익'을 각각 추구하는 세대 사이에 주기적인 순환이 일어난다고 이야기다. 이런 이유로 1984년 선거에서는 금주법이 시행되던 1920년대에 청년이었던 대표적인 보수적인 세대의 손자 세대, 즉 1950년대 후반 이후에 출생한 세대와 함께 레이건의 손을 들어주었다는 예를 든다. 지금 보수진영의 '세대 포위론'과 묘하게 닮아 있다.


정치의 변동을 세대의 주기적인 순환ㆍ교체로 설명하는 학자들은 슐레진저 주니어 이외에도 제법 있다. 짧게는 12년, 길게는 30년에 이르는 구체적인 수치까지 들어가면서 순환주기의 길이까지 제시하고 있다. 최단의 것과 최장의 것의 중간치를 잡자면 대략 20년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단, 이런 진단에 대한 이견은 정치를 처음으로 체감하는 연령이 몇 살인가의 지점다. 그것은 정보의 접근성에 달려 있다고 생각다. 세대가 거듭될수록 사회적 성숙도는 떨어지지만, 정보는 빨리 습득되어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의 형성이 생각보다 이른 나이에 고착다. 아마 14세~15세 정도부터 정치적 지형이 형성된다고 보아도 무방한 이유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즈음이면, 2002년 월드컵 즈음다. 지옥 같은 IMF의 위기를 건네고, Y2K를 지나면서 다시 꿈을 꿀 수 있는 시간이 일상으로 스며다. 90년대 생들이 본격적인 사춘기, 그리고 정치적 가치의 형성이 시작되는 시기다. 부모의 세대는 열병 같은 '민주화'를 전공 공부와 청춘의 시간 대신 몸으로 받아 온 586세대들다. 할아버지 세대는 일제강점기 말기에 태어나, 한국 현대사의 가장 큰 변곡점이라는 해방과 한국전쟁을 겪으며 청년기를 마주한 세대다. 4.19세대보다는 살짝 웃돌아 이녕과 가치의 성취보다는 살림과 생존이 일 순위였던 세대였다. 5.18이 북한의 공작이라 굳건히 믿으며 정부를 신뢰하던 순종적 보수의 세대였.


이렇듯, 교차하고 교대적인 세대의 교체는 정치 지향의 순번도 함께 하는 것일지도 모다. 4050 세대 입장에서 보면, 위로는 의심 하나 없이 국가의 체제에 순응하고, 그저 부의 획득이라는 개인의 이익을 우선하는 부모들이 있을 것다. 아래로는 당장의 득실이 중요하여, 내편과 네 편을 나누길 쉽게 하는 2030들이 자녀의 세대로 자리 잡고 있을 테니까.


세대가 "변하는 것"은 아니죠


정치의 성향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세대 안에서 변화하지는 않을지도 모다. 정치적 지향이 다른 세대가 교차하여 등장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세상은 언제나 부모의 세대와 자식 세대 간의 갈등과 대립은 늘 현재 진행형일지도 모다. 어느 시대가 되었든 아버지들ㆍ어머니들과 아들들ㆍ딸들은 한 편으로 서로의 관심, 이해,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또 다른 한 편으로는 질책, 원망, 미움을 쏟아 내기 마련이. 이런 양가적 심리와 양상이 역사의 한 축을 이끌어 가고 있었을지도.


그런데, 이런 이해를 넘어선 부추김은 조금  우려스럽다. 며칠 전에 관련된 이야기를 에둘러 러시아 문호의 작품을 빌려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이때 마무리한 결론은 여전히 유효하게 주장하고 싶다.


뉴스에 연일 달라진 세대의 "이념" 지형을 이야기합니다. 언론은 기득권의 나팔수라는 꼬인 생각으로 보면, "세대론"을 이야기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답니다. 갈라 쳐 놓아야 정치로 밥을 먹는다는 사람들의 공갈 프레임입니다. 진영이 견고해 보이는 4050 세대에게 더 이상 '이념의 프레임'은 작동하지 않은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래서, 가진 자와 못 기진 자로 자영업,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라는 계급으로 갈라놓습니다. 그것도 부족하니 위, 아래로 잘라 세대 간의 벽을 높이게 만듭니다. 가뜩이나 인간의 역사와 함께한 애증의 관계를 부추기면서 말입니다. 저들이 너희들의 연금을 빼먹는다는 이야기는 정말 최악의 쓰레기 이간질입니다. 300회 넘는 국민연금은 제가 납부했지 미래 세대가 납부한 것이 아닌데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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