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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조급함이 그들의 느림을 부를 때

느린 학습자, 그리고 느림을 꿈꾸며

by 박 스테파노

기억을 길어 올리는 일에도 이제는 어떤 숨 고르기가 필요해지는 나이가 되었다. 오래전 경험과 장면들은 더 이상 즉각적으로 떠오르지 않고, 마치 바닥이 보이지 않는 저수지의 물꼬를 억지로 터뜨려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는 것처럼 느린 속도로 돌아온다. 그러다가 뜻밖의 순간, 두터운 시간의 퇴적층 아래 묻혀 있던 장면들이 말없이 떠오르곤 하는데, 내게는 ‘훈이와 호야’라 불리던 고종사촌 형들의 잔상이 그러하다. 이름조차 쌍둥이라는 사실을 은근히 증언하던 두 형제는, 소멸한 기억 속에서도 여전히 묵직한 그늘과 빛을 함께 품고 있다.


분명 그들은 나보다 열 살이나 많았지만, 내 기억 속 그들은 늘 어린 영혼을 가진 거인이었다. 덩치는 크고 힘도 셌으며, 식욕은 마치 생존 본능의 마지막 불씨처럼 거대했다. 명절이면 작은 상가 건물 옥탑방이었던 우리 집은 숨이 막히도록 사람들로 가득 찼다. 조부모와 고모들, 삼촌들과 사촌들, 서로의 체온이 방 한 칸을 메우던 풍경. 커다란 밥상이 쉬지 않고 들어왔다 나가던 소란스러운 그 시간들 속에서, 나는 아이의 눈으로 그 모든 북적임을 한없이 좋아했다. 그러나 그 왁자지껄함의 이면에, 말로 하지 못한 오해와 상처, 끝내 타협되지 못한 자존심들이 어둠처럼 겹겹이 쌓여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훗날에야 알게 되었다.


아버지의 아홉 남매 중 유일하게 ‘잘산다’는 말을 들었던 큰고모의 아들들, 훈이와 호야는 언제나 가장 좋은 옷을 입고, 말끔한 이발과 반짝이는 구두를 신고 나타났다. 그러나 그 단정한 외형 아래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불협화음이 있었다. 다섯 살배기 아이보다 느렸던 발음, 금방 끊겨 버리는 문장, 극단적인 격렬함과 무표정한 정적 사이를 오가던 태도, 그리고 단순한 허기가 아니라 존재 전체가 먹는 행위에만 매달리는 듯한 식탐. 뜻이 거스르면 바닥에 드러누워 몸을 굳히며 울부짖던 그들을 어른들은 ‘바보’라 불렀다. 그 단어는 설명이 아니라 낙인이었고, 이해가 아니라 거리 두기였다. 그렇게 그들은 일찍부터 하나의 존재가 아니라 특징으로 기억되는 사람이었다. 그 결이 얼마나 잔혹했는지, 나는 그 말의 무게를 늦게 배웠다.


강풀의 만화를 2008년에 영화로 만든 <바보>. 스타뉴스 제공


형들은 이십 대 초반을 겨우 넘긴 시점에 간질환으로 연달아 세상을 떠났다. 특수학교와 일반학교 사이를 오가며 적응과 실패를 반복하던 그들의 삶은, 결국 집이라는 울타리이자 감옥 같은 공간에서 서서히 시들어갔다. 발달도, 사회성도 멈췄고, 몸이 보내는 고통의 신호조차 언어의 형태로 변환되지 못했다. 간이 부어오르고 복수가 차오르기까지, 그들의 침묵은 누구에게도 해독되지 않았다. 그 침묵은 고통의 언어였으나, 그 시대의 사회적 감수성은 그 언어를 듣고자 하지 않았다.


큰고모와 고모부의 헌신적 돌봄은 분명 사랑이었으나, 그 사랑은 사회적 제도와 공동체적 책임이 부재한 공간에서 혼자 감당해야 했던 고된 애씀에 가까웠다. 의료, 교육, 복지, 언어, 돌봄, 존엄의 개념이 지금처럼 촘촘하지 않던 시절. 훈이와 호야는 그 구조적 빈틈 속에서 서서히 잊혀지고, 잊힌 채 늙고, 늙기도 전에 사라졌다.


그들의 죽음은 울림을 남기는 비명도, 남은 이들의 기억을 붙잡는 상흔도 아니었다. 오히려 조용히 도려내진 한 조각처럼, 풍경에서 문장 하나가 사라진 것에 가까웠다. 나는 그 소거의 자리를 뒤늦게 들여다보며, 그들 이름이 아직 내 기억 속에 선명하다는 사실이 기묘한 방식의 책임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아마 그것이 내가 지금 이 문장을 쓰는 이유일 것이다. 누군가의 잊힌 존재를 다시 호명하는 일이, 더 이상 시간이 미루어도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달았기 때문에.



투명 인간들의 벼랑, ‘경계선 지능


훈이와 호야는 그나마 ‘장애’라는 이름표라도 있었기에, 누군가의 헌신과 주변의 연민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간주되었다. 말하자면 그들의 다름은 제도 안에서 명명된 차이였고, 이름 붙여진 고통은 적어도 사회적 인식의 범주에 들어 있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은 채,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에 서서 이름 없는 존재로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종종 발견되지 않은 인생으로 남고, 기록되지 않은 서사로 흩어진다. 2014년 세상을 뒤흔들었던 ‘염전 노예 사건’의 피해자들, 그리고 최근 방송 <시사 직격>을 통해 포착된 ‘경계선 지능인’들이 바로 그 잊힌 자들의 얼굴이다.


지능지수(IQ) 70에서 85 사이. 지적 장애인으로 분류되기에는 수치가 넘치고, 그렇다고 평균 지능의 범주에 들기에는 이해와 추론의 속도가 더디다. 학계는 이들을 ‘느린 학습자(Slow Learner)’, 혹은 ‘경계선 지능인’이라 호명하지만, 실제 현실에서 그들은 거의 언제나 ‘그냥 이상한 사람’, ‘조금 부족해 보이는 사람’으로 취급된다. 이 개념이 학문적으로 정립된 것은 1995년 무렵의 일이며, 그 이후에도 오랜 시간 동안 제도적 언어로 자리 잡는 데 어려움을 겪어왔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 곁에 있었다. 전체 인구의 약 14%. 즉 교실 하나에는 서너 명의 아이들이 이 위태로운 경계 위에 서 있었다는 뜻이다.


이들의 비극은 ‘평범함’이라는 외피 아래 숨겨져 있다는 데서 비롯된다. 눈에 띄는 장애의 징후가 없기에, 그들의 느린 반응과 이해의 결핍은 종종 성격이나 태도의 문제로 오해된다. “멀쩡하게 생겼는데 왜 이래?”라는 무심한 말,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되잖아”라는 강요는 끝내 그들을 침묵 속으로 몰아넣는다. 언어 처리 능력과 상황 판단력이 부족한 그들은 범죄에 취약하고, 피해자로 남았음에도 그 사실을 설명하거나 주장하지 못해 권리조차 행사할 수 없다. 염전 노예 사건 피해자들이 그러했듯, 그들의 순진함과 신뢰는 누군가의 악의 앞에서 가장 먼저 무너진다.


느린 학습자 분포. KBS, 교육부 제공


그러나 더 깊은 상처는 제도적 외면이다. 이들은 지적 장애 3급에 근접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서류상의 기준에 닿지 못한다는 이유로 국가 지원 체계 바깥에 내몰린다. 진단은 그들을 설명하지 못하고, 규정은 그들의 삶을 담아내지 못한다. 그 결과, 특수 교육의 기회 없이 학교를 떠나고, 사회에 진입할 무렵에는 이미 가장 취약한 노동시장으로 흘러들거나 관계의 언어 자체에서 배제된다. 성인이 되고 난 뒤 그들은 ‘홀로 버텨야 하는 존재’가 되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 격차는 돌이킬 수 없는 삶의 단층으로 굳어진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정부조차 이들의 정확한 수와 삶의 조건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변변한 통계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의 현실은 제도의 눈앞에 있어도 기록되지 않는 그림자이고, 이 사회에서 그늘에 서 있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묻는 가장 날카로운 질문이다. 그들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시민’이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가 그들의 이름을 다시 부를 수 있기를 바란다.



느림을 허락하는 사회의 품


내 학창 시절을 돌이켜보면, 운 좋게도 그 ‘느림’이 조롱이 아니라 하나의 개성으로 받아들여지던 친구가 있었다. 1 더하기 1에서 2 더하기 2로 넘어가는 데 남들보다 몇 배의 시간이 필요했던 친구. 문제를 풀 때면 연필을 꽉 쥔 손가락이 땀에 젖었고, 칠판 앞에 서면 얼굴이 벌게졌다. 그러나 그 서툼을 향한 우리의 태도는 비교적 관대했다. 어쩌면 그 시절의 교실에는 아직 ‘효율성’이라는 잣대가 완전히 뿌리내리지 않았고, 누군가의 느린 걸음을 함께 기다려줄 여유가 남아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 친구는 환경미화 시간마다 누구보다 묵묵히 청소를 도맡았다. 손걸레를 들고 구석진 먼지를 끈질기게 닦아내던 모습은 오히려 모범에 가까웠다. 운동장에서는 더욱 빛났다. 핸드볼 골대를 지키던 그의 두 손은 자신보다 거칠었고, 코피를 쏟아가며 몸을 던지던 장면은 지금도 생생히 떠오른다. 친구들의 응원 속에서 그는 조금씩 자신감을 얻었고, 젊은 담임교사는 그 느린 이해의 속도를 끝까지 존중했다. 그 배려와 기다림이 모여 하나의 안전한 울타리가 되었다.


그는 결국 자신의 속력으로 자라났다. 서툴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더디지만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지금, 그는 한 방제업체의 지역 팀장이 되어 묵묵히 일상을 지탱하고 있다. 누군가의 옆에 서서 그 보폭을 맞춰준다면, 느림은 결핍이 아니라 다른 형태의 리듬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삶이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공동체가 만들어낸 조용한 기적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이 따뜻한 회고담보다 훨씬 냉혹하다. 한국 사회뿐 아니라 일본에서 사회 문제로 대두된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나 경제활동과 학업에서 동시에 이탈한 ‘니트족’에 관한 연구를 들여다보면 그 기저에 경계선 지능의 문제가 깔려 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하게 된다. 일본 소년원생의 34%가 경계선 지능 혹은 지적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통계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어린 시절 적절한 교육과 도움을 받지 못한 ‘느린 아이들’은 결국 사회의 변두리로 밀려나고, 그 외곽에서 길을 잃는다. 그 과정은 조용하지만 잔혹하다. 누군가는 가해자가 되고, 누군가는 스스로 발화할 단어조차 잃은 채 고립된다.


경계선 지능을 가진 학생을 일컫는 '느린 학습자'를 위한 피치마켓 도서로 독서 활동하는 모습. 피치마켓 제공

모든 변화는 정확한 인식과 실태 조사에서 시작된다. 학교 현장에서 지능검사가 생략되면서, 판단받을 기회조차 잃어버린 아이들을 다시 발견해야 한다. 장애 등급이라는 서류상의 기준에 닿지 않더라도, 학교와 지역 사회는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이를테면 ‘거북이 학급’과 같은 느린 속도의 학습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연민이나 동정의 차원을 넘어선다. 차가운 계산기를 두드려 보아도, 이들을 방치하여 발생하는 복지·사법·의료 비용은 조기 개입과 교육 지원에 드는 비용보다 훨씬 크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는 이유가 있다. 이것은 인간의 존엄에 관한 일이다.


최근 한 정당 관계자가 장애인 비례대표 의원 수를 두고 “비율을 넘는 과잉 대표”라며 비웃음을 섞어 말한 사건이 있었다. 그 발언은 개인의 실언에 머물지 않는다. 효율과 생산성, 숫자와 경쟁으로 사람을 재단하는 우리 사회의 깊은 무의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례였다.


“조금 달라도 괜찮다”는 말이 공허한 수사로 남지 않으려면, 통계에 잡히지 않는 수많은 ‘경계의 사람들’을 볼 수 있는 감각부터 회복해야 한다. 제도의 바깥, 서류의 행간, 우리의 무관심이 만든 빈 공간 그 어딘가에서 아직도 숨죽이는 훈이와 호야들, 그리고 이름조차 주어지지 않은 또 다른 이들을 위해서라도.



속도의 폭력 앞에 선 ‘느림’의 철학


우리는 현대 사회의 폭력적인 속도 앞에 선 ‘느림’의 존재론을 다시 사유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훈이와 호야’, 그리고 우리 사회 곳곳을 떠돌고 있는 ‘느린 학습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단순한 사회보고서를 넘어, 우리가 맹신하는 ‘속도’라는 종교에 대한 일종의 이단 심문에 가깝다. 이들을 둘러싼 사유는 연민의 의무나 동정의 윤리보다 더 깊은 층위에서 질문을 던진다. 느리게 산다는 것은 결함인가, 아니면 잊힌 인간성의 마지막 표식인가.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반드시 되묻게 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밀란 쿤데라는 소설 『느림』에서 “느림의 정도는 기억의 강도와 비례하고, 빠름의 정도는 망각의 강도와 비례한다”라고 말했다. 이 짧은 문장은 현대 문명의 구조적 병증을 정밀하게 가리킨다. 우리는 모든 것을 ‘빨리’ 처리하려 한다. 빠른 결정, 빠른 연산, 빠른 성취. 효율성이라는 이름의 신은 끊임없이 속도를 요구하고, 속도는 곧 우월함의 지표가 된다. 그러나 너무 빨리 지나치는 것은, 대상과 관계 맺지 않겠다는 선언이자 곧 잊겠다는 약속이다. 배움은 ‘남는 것’이 아니라 ‘잊히지 않는 것’이어야 하는데, 우리는 속도의 미명 아래 그 근본을 상실해버렸다.


이 지점에서 경계선 지능인의 느린 학습 과정은 우리 사회의 무의식을 드러내는 거대한 거울이 된다. 그들이 1 더하기 1을 배우기 위해 머무르는 시간, 더듬는 언어, 오래 걸리는 이해의 과정은 단순한 비효율이나 미숙의 표지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너무도 쉽게 지나쳐버린 개념의 뿌리, 의미의 질감, 기다림의 시간을 그들은 온몸으로 기억하고 있다. 우리가 그들을 답답해하는 순간, 실은 우리가 잃어버린 인간적 리듬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게 된다. 어쩌면 그들이 느린 것이 아니라, 우리가 너무 빠른 것일지도 모른다. 빠름이 표준이 되었을 때, 느림은 결핍으로 낙인찍히지만, 진실은 정반대일 수 있다. 느림은 망각되지 않는 방식의 존재이다.


달팽이의 경주. AI Sora


근대 이후 자본주의 사회는 인간을 하나의 목적이 아닌, 교환 가능한 도구로 축소해왔다. 도구의 가치는 효율성으로 측정된다. 투입 대비 산출이 크고, 반복 가능한 능력이 높을수록 ‘쓸모 있는 존재’로 인정받는다. 이 기준 앞에서 ‘느린 학습자’는 종종 불량품, 혹은 고장 난 기계처럼 취급된다. 그러나 칸트가 명징하게 선언했듯, 인간은 그 자체로 목적이며, 어느 누구도 수단이 될 수 없다. 지능이나 속도가 그 존엄을 결정하지 않는다. 느림에 대한 철학적 옹호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그들의 존재는 말한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프랑스 철학자 레비나스는 “타자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윤리의 시작”이라 했다. 우리는 너무 빨리 달린 나머지, 옆을 볼 수 없게 되었다. 빠른 속도는 시야를 좁히고, 타인의 고통을 비가시화하며, 결국 타자를 삭제한다. 그러나 느린 존재와 함께 걷기 위해선 반드시 속도를 줄여야 한다. 그들의 이해가 닿을 때까지 기다리는 행위는 단순한 배려가 아니라, 나의 시간을 타자에게 내어주는 깊은 윤리적 실천이다. 그것은 경쟁의 세계에서 탈주하는 행위이며, 관계라는 인간 존재의 본질을 회복하는 일이다.


폴 비릴리오는 “속도는 폭력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이 느림은 분명 반폭력적 리듬이며, 이 사회의 질주를 제어하는 마지막 제동 장치일지 모른다. 고장 난 것이 아니라, 고장 난 세상을 멈추게 하는 존재. 그러므로 그들은 ‘수정’되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잃어버린 인간의 속도를 기억하게 하는 하나의 표지이자 질문으로 남는다. 그 질문은 어느 순간 조용히 이렇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어디를 향해 그렇게 급히 달리고 있는가.



다시, 나의 조급함을 마주하며


나는 때로 스스로도 놀랄 만큼 조급하다. 그래서일까, 나는 오래도록 ‘느린 학습자’와 ‘느림의 미학’을 이야기하며 그들에게서 배우려 한다. 이 느림의 옹호는 단순한 미화가 아니라, 내 안의 조급함에 대한 가장 깊은 반성에 가깝다. 조급함은 어설픈 성격적 습관이 아니라, 욕망이라는 깊은 샘에서 끓어오르는 물결처럼 갑자기 범람한다. 빠른 속도로 흐르는 강물이라도 결국 바다 앞에서는 속도를 잃고 잔잔해진다는 단순한 진실. 그 진실은 언제나 가장 늦게야 내 마음에 도착한다. 그래서 나는 종종 멈춰 서서, 여전히 숨 가쁘게 몸부림치는 나를 발견한다. 그 모습은 나를 민망하게도, 때로는 연민 섞인 시선으로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나는 생존의 흔적처럼 글을 쓴다. 병을 마주한 이후부터는 하루 한 줄이라도 적어내려가는 행위가 흐려지는 삶의 경계를 붙들어 두는 일처럼 느껴졌다. 시작은 철저히 비가시적인 목적이었다. 누구에게 보이고 싶지도, 인정받고 싶지도 않았다. 오직 나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한 방편. 그러나 몸과 마음이 조금씩 회복을 향해 기울 때, 잠잠하던 욕망의 수면 아래에서는 다시 잔물결이 일었다. 출판, 공모전, 신춘문예. 남들이 이미 그어둔 선과 기준이 계단처럼 보이자, 나는 어느새 그 계단을 오르기 위해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 움직임은 성숙한 성장이라기보다 오히려 불안과 허기를 숨기지 못한 질주에 가까웠다.


어느 날 캘린더를 펼쳤을 때, 촘촘히 적힌 투고, 공모 일정표 앞에서 나는 가만히 숨을 고르며 생각했다. 나는 언제부터 글로 살아온 사람들과 자신을 나란히 놓고 조급해했을까. 제대로 된 사유의 어둠을 견디지 않은 채 그저 기술적으로 엮어낸 몇 줄의 문장에 기대어 요행을 바라는 나 자신을 바라보며, 부끄러움과 안쓰러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느림을 옹호하는 글을 쓰면서 정작 나는 누구보다 빠른 결실을 갈망하고 있었다. 심지어 훈이와 호야를 기억한다는 이름 아래, 그들의 느림을 내 글의 정서적 장식으로 소비하려던 것은 아니었는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 질문은 불편했지만, 그래서 더욱 진실에 가까웠다.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AI Sora


그래서 다시 내려놓기로 한다. 내려놓는다는 말이 거창한 포기나 비장한 결단을 의미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것은 단지 내가 감당 가능한 속도로 다시 걸어가겠다는 조심스러운 다짐일 뿐이다. 아직 배움은 부족하고, 욕망을 다루는 수행은 미숙하다. 남들보다 늦었다는 사실, 이제는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다. 그렇기에 늦은 김에 더 천천히 가보려 한다.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슬로 조깅’처럼, 달리는 듯 걷고 걷는 듯 달리며 숨 가쁘지 않은 리듬으로 움직여 보고 싶다. 성취가 아니라 과정, 결과가 아니라 방향, 경쟁이 아니라 나의 시간과 마주하는 감각으로.


그 느슨하고도 단단한 호흡 속에서, 어쩌면 나는 훈이와 호야가 견뎌야 했던 시간의 무게를 조금은 더 가까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속도에 휩쓸려 잊어버렸던 나의 존엄, 그리고 너무 쉽게 놓쳐버린 타인의 존엄을 다시 기억하려 한다. 그것은 선언도, 계획도 아니다. 그저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속도와 문장으로 살아 보겠다는 하나의 조용한 약속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쓸 수 있는 문장은, 아마도 이 한 문장일지도 모른다. 천천히, 그러나 끝내 멈추지 않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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