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루기, 이기고 진다는 의미

승부(勝負)의 미학 - 태권도와 형

by 박 스테파노

국민학교에 입학하고 한 학기를 채웠을 무렵, 우리 가족은 잠실의 한 아파트 단지로 이사했다. 처음으로 ‘우리 집’이라 부를 수 있는 자가 주택이었다. 복도식 29평, 방이 세 개나 되고 엘리베이터와 놀이터까지 갖춘 집. 계단 밑 반지하나 2층 상가 옥탑방을 전전하던 시절에 비하면, 모든 것이 과분할 만큼 좋아 보였다.


거대했던 식구의 수는 그 무렵 조금 줄었다. 고모들 식구가 차례로 독립하고, 미혼이던 막내 고모만 함께 살게 되었다. 조부모, 고모, 모친, 우리 형제, 그리고 일 년에 한 번 귀국하는 부친. 당시로서는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이상하게 안정된 가족의 모양새였다.


모친이 형을 각별히 아끼던 일은, 훗날 나와의 어색한 거리감을 설명하는 이유 중 하나로 자주 소환되곤 했다. 그 편애에는 사정이 있었다고, 모친은 늘 덧붙였다. 가장 힘들던 시절에 유치원도 보내지 못했고, 수유 중 연년생으로 나를 임신하면서 형이 늘 허약하게 자랐다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형은 자랄수록 조부를 닮아 늘씬을 지나 마른 체형이 되었고, 나는 유난히 큰 머리에 콤파스로 그린 듯한 보름달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 비교는 쉽게 이루어졌을 것이다.


피아노 학원. AI Sora


아파트로 이사한 뒤, 모친은 형에게 매일 학습지를 풀게 하고 피아노 학원도 보내기 시작했다. 당시의 피아노 학원은 음악 전공자가 자기 집에서 아이들을 모아 가르치던 사설 무인가 교습소가 대세였다. 형도 그런 곳에 다녔고, 형제 사이가 아직 좋았던 나는 늘 그곳을 따라다녔다. 피아노 선생은 나에게도 건반을 눌러 보라 권했지만, 그 제안은 끝내 실현되지 못했다. 이 대목에서 나와 모친의 기억은 조금 다르다.


내 기억 속에서 그 이유는 분명했다. 교습비 부담도 부담이었지만, 내가 피아노를 시작하면 형이 그만둘까 봐 걱정했을 것이다. 모친의 정성은 온통 형에게로 향해 있었다. 경상도 집안의 장손이라는 위치, 조부가 부도를 맞기 전 비교적 넉넉하던 시절에 태어났다는 사연, 그 모든 것이 형을 더 소중한 존재로 만들었다. 피아노 콩쿠르, 끝없는 학습지, 몰래 붙인 과외, 철마다 새로 장만한 유명 아동복과 학용품까지. 돌이켜보면, 그 시절 가장 부족함 없던 아이는 형이었을지도 모른다.


반면 나는 한글을 옥탑 밑 상가 만화방에서 혼자 깨쳤다. 1인분만 가능하면 나는 자연스레 열외였다. 옷은 늘 형이 입다 남긴 것이었고, 참고서 같은 건 애초에 떠올릴 이유도 없었다. 더구나 나는 태어날 때부터 머리가 유난히 큰 ‘콘헤드’였다고 한다. 산파는 아이를 안고 “잘 버리고 치성이나 드리라”고까지 했다. 백일이 지나고도, 여섯 달이 되어서도 고개를 제대로 가누지 못하던 아이가, 석 달 만에 걷기까지 이르자 사람들은 조금 다른 학습 능력을 지녔다고 수군거렸다.


결국 ‘아무개 동생’으로 불리던 나는, 시간이 흘러 형에게 ‘누구의 형’이라는 이름을 돌려주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의 이름을 바꿔 부르며 자라왔다.



기권 수건이 날아오던 자리


누군가는 이 이야기를 내 승부욕의 기원쯤으로 해석하지만, 정작 나는 누구와 겨뤄야겠다는 생각을 품어본 적이 거의 없다. 어찌 되었든 모친의 기억 속에서, 내가 피아노를 배우지 않은 이유는 전적으로 내 선택이었다. 남자는 피아노 같은 것보다 운동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렇게 나는 아파트 단지 상가에 있던 태권도 도장에 다니게 되었다.


불만은 없었다. 오히려 신이 났다. 배우는 걸 좋아했고 몸을 쓰는 일에도 거리낌이 없었다. 승급심사는 남들보다 빨랐고, 몇 달 지나지 않아 유소년 유단자에게 주어지는 승품심사를 국기원에서 통과하기도 했다. 그 일은 어린 나에게도 작지 않은 성취로 남아 있다.


당시 태권도 사범은 청와대 경호대 출신이었다. 단호하고 엄격했지만, 부친의 부재가 잦던 나를 유난히 살펴주던 기억이 남아 있다. 방학이면 별다른 과외도 없어 아침부터 도장에 나가 운동을 했고, 유치부 아이들 몸풀기 구령을 붙여 주기도 했다. 여름에는 사범 가족과 함께 수영장에 데려가 주기도 했다. 어느 날, 2학년 무렵이었을 것이다. 지금으로 치면 여덟 살쯤, 태권도 겨루기(대련) 시합에 나가 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고 큰 고민 없이 수락했다.


그 시합은 연령 구분 없이 체중만으로 체급을 나누는 방식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자체가 맹점이자 핸디캡이었다. 호구와 낭심 보호대, 마우스피스를 착용한 모습이 제법 그럴듯해 괜히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 기분은 오래가지 않았다. 1회전 예선 상대는 나보다 체구는 작았지만 눈매가 예사롭지 않았다. 대진을 보던 사범이 낮게 말했다. “6학년이라고?” 그 말의 의미를 짐작할 틈도 없이 심판의 시작 구령이 울렸다.


당시 나의 특기는 몸을 한 바퀴 돌며 반격하는 ‘뒷차기’였다. 상대의 공격을 회전으로 흘리고 뒷발로 득점하거나 타격하는 방식. 여덟 살 아이에게 그 이상은 없었다. 그러나 타이슨의 말처럼, 누구나 계획은 있다. 쳐 맞기 전까지는. 상대는 정석이 아닌, 속칭 ‘개발’로 앞발을 끊임없이 내밀었다. 그 발은 번번이 내 얼굴에 꽂혔다. 회전으로 피하려 했지만, 상대는 좌우로 발을 옮기며 나를 몰아붙였다. 시야는 급격히 좁아지고 호흡은 가빠졌다. 그 순간 심판이 둘을 갈라세우고 중앙으로 이끌었다. 상대의 손이 들어 올려지던 찰나, 시야 한쪽에 내가 다니던 태권도장 이름이 선명히 박힌 수건이 늘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사범이 수건을 던진 것이다.


수건 던지기. AI Sora


나의 첫 ‘대결’이었던 겨루기는 그렇게 기권패로 끝났다. 이후로도 삶은 숱한 겨루기의 연속이었다. 때로는 누군가라는 특정한 상대를 넘어야 했지만, 대부분은 겨루기라 인식하지도 못한 채 치러낸 경쟁들이었다. 수천 명이 함께 달리는 마라톤이 ‘나와의 싸움’이라는 내적 수양으로만 남는다면 그것은 취미일 때의 이야기다. 직업으로 달리는 이들에게 마라톤은 분명 다중과의 겨루기다.


대입 학력고사 시절, 선지원 후시험의 풍경에도 두 겹의 경쟁이 있었다. 시험 당일 킬러 문항들과의 지난한 겨루기가 있고, 그 이전에 이미 시작된 싸움이 있었다. 지원서를 넣는 순간 마주하게 되는 ‘경쟁률’이다. 경쟁률이라는 확률의 언어는 늘 착시를 만든다. 50명 모집에 100명 지원이면 2:1이라는 숫자가 나온다. 마치 단 한 사람만 넘어서면 될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100명 가운데 50명 안에 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결국 50명을 넘어야 얻는 결실이다. 그것은 이기고 지는 단순한 대결의 의미를 이미 넘어선 자리였다.



승부란, 키를 잡고 등을 내는 것


승부를 가르는 자리에서 남에게 지는 일이 곧 패배(敗北)다. 敗(패)는 손에 쥔 것으로 무엇인가를 두드려 부순다는 뜻이고, 北(배)는 등을 보이고 달아나는 사람의 형상을 담은 글자다. 옛 한자 세계에서 北(배)와 사람의 등을 뜻하는 背(배)는 서로 통용되었다. 북(北)은 북쪽이라는 의미와 함께 ‘등지다’라는 뜻을 지녔는데, 두 사람이 등을 맞대고 선 상형에서 비롯되었다. 본래의 의미는 배반하다, 달아나다에 가까웠고, 이것이 방향 개념인 북쪽으로 전이되었다. 왕의 어좌가 늘 남향이었기에 북쪽은 언제나 왕의 등 뒤를 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北은 ‘북’으로도, ‘배’로도 읽힌다. 패배(敗北)는 전쟁에서 져서 등을 보이고 달아나는 상태를 가리킨다.


그러나 진정한 승부(勝負)는 그 배반의 장면에만 머물지 않는다. 단어 풀이로는 이기고 지는 일을 뜻하지만, 勝(승)의 결은 조금 다르다. 여러 해석이 있지만, 핵심은 배의 키를 쥐는 행위다. 키를 잡는다는 것은 방향의 우선권을 거머쥐는 일이다. 우리는 흔히 승리(勝利)를 타인을 굴복시킨 결과로 이해하지만, ‘승(勝)’의 본질이 키를 쥐는 데 있다는 통찰은 승부를 전혀 다른 미학의 자리로 옮겨놓는다. 승리란 상대보다 앞서는 상태가 아니라, 우연과 혼돈이 출렁이는 바다 위에서 ‘나의 방향’을 선택할 권리를 얻는 일에 가깝다. 망망대해에서 키를 쥔 자는 고독하지만, 그 고독은 자유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이기다’의 어원을 한자어 익(益)에서 찾기도 하지만, 고대 국어에서는 ‘견뎌내다’, ‘제어하다’의 뜻으로 쓰였다. 무거운 짐을 견디고 다스려 끝내 떨쳐낸다는 의미다. 자신의 의지로 뱃머리를 돌릴 수 있다는 것은, 세계의 질서에 순응하던 존재에서 질서를 만들어내는 주체로 옮겨가는 순간을 뜻한다. 그래서 승리의 미학은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의 안도보다, 항로를 스스로 결정하는 찰나의 긴장 속에서 태어난다. 그것은 혼돈 위에 선을 긋는 예술가의 붓질과 닮아 있다.


반면 負는 짊어진다는 뜻의 글자다. 이는 패배를 단순한 결핍이나 상실로 두지 않는다. ‘부(負)’는 승부의 결과로 주어진 하중을 자신의 등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가리킨다. 키를 놓친 자는 방향의 주도권을 잃지만, 대신 삶의 무게를 온몸으로 감각하게 된다. 승자가 앞을 바라본다면, ‘부’를 수행하는 자는 아래를 떠받친다. 패배가 비참함을 넘어 숭고함으로 이행하는 지점은 바로 이 ‘등’에 있다.


모든 것이 무너진 자리에서 결과를 회피하지 않고 묵묵히 짊어지는 태도는, 승리의 화려함보다 더 깊은 인간적 품격을 드러낸다. 지는 법을 아는 이는 자신이 감당해야 할 무게를 인식함으로써 비로소 내면의 중심을 발견한다. 시지프스의 끝없는 돌 굴리기를 우리는 과연 ‘패배’라 부를 수 있을까.


영화 <승부> 예고편.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결국 승부(勝負)라는 말은 삶의 순환을 품은 단어다. 어떤 순간에는 키를 잡고 항로를 정해야 하고, 또 다른 순간에는 그 선택이 남긴 무게를 짊어지고 견뎌야 한다. 키를 쥔 자는 이미 책임이라는 짐을 예약한 존재이고, 짐을 진 자는 그 무게를 견딘 끝에 다시 키를 잡을 힘을 얻는다.


승부의 미학은 이 두 상태가 교차하는 자리에서 완성된다. 이기고 지는 일은 분리된 사건이 아니라, ‘나아감’과 ‘버팀’이라는 삶의 두 축이 맞물려 돌아가는 과정이다. 우리는 승리를 통해 세계를 넓히고, 패배를 통해 자신을 깊게 만든다. 승부란 결국 이 두 행위를 오가며 저마다의 생의 지도를 그려가는 고요하고도 고귀한 투쟁이다.



키를 쥔 손, 등을 맡긴 시간


문학은 인간이 삶이라는 망망대해에서 어떻게 키를 잡고, 동시에 그 항해가 남긴 무게를 어떻게 등으로 견뎌왔는지를 기록해 온 거대한 승부의 서사다. 승(勝)이 지닌 ‘방향의 주권’과 부(負)가 지닌 ‘수용의 무게’는 문학적 장면 속에서 서로를 비추며 미학으로 승화되어 왔다.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 산티아고가 거대한 청새치와 사투를 벌이며 뱃머리를 돌리는 장면은 ‘승’의 미학을 또렷하게 드러낸다. 여기서 승리는 물고기를 잡았느냐는 결과에 있지 않다. 거친 파도 속에서 배를 통제하며, 사자(死者)의 심연으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끝까지 키를 붙잡고 항로를 선택하는 행위 자체가 승리다. 그는 “인간은 파멸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외부의 힘에 떠밀리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뱃머리를 돌려 운명을 결정하는 주권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키를 쥔 손에 남은 굳은살은 방향의 우선권을 얻기 위해 치러야 할 육체적 대가이며, 그 긴장은 주체적인 삶이 발산하는 서늘한 미학의 빛을 띤다.


앙상한 뼈만 남은 물고기를 끌고 항구로 돌아왔을 때, 세속의 눈으로 보면 산티아고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 자처럼 보인다. 서툰 독자 시절의 나 역시 그 시간을 헛수고로 여긴 적이 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항로를 스스로 정했고, 그 결정에 따라 끝까지 항해를 완수했다. 이는 타인에게 과시할 성취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승부에서 ‘키를 잡은 자’로 남았다는 존엄의 증명이다. 망망대해라는 거대한 우연 위에 의지라는 선을 긋는 그의 손등을 따라, 방향을 선점한 자만이 감내하는 고독한 자유가 흐른다.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는 ‘부’의 미학, 곧 짊어짐이 어떻게 인간을 위대하게 만드는지를 가장 철학적으로 사유한 텍스트다. 산꼭대기에 오를 때마다 다시 굴러떨어질 바위를 밀어 올리는 시지프의 등은 승부에서 ‘지는 법’, 혹은 ‘견디는 법’의 정수를 보여준다. 여기서 ‘부’는 굴욕적인 패배가 아니다. 주어진 운명의 하중을 회피하지 않고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정직한 대면이다. 시지프가 바위를 짊어진 채 비탈을 내려올 때, 그는 자신의 고통을 객관화하며 그 무게를 자기 존재의 일부로 편입시킨다.


바위가 그의 등을 더 세게 누를수록, 그 무게는 역설적으로 그를 지면에 고정하는 실존의 닻이 된다. 끝없이 반복되는 노동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이유는, 그 짐을 짊어진 주체가 바로 자신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문학적으로 이 장면은, 결과가 예정된 패배조차 인간이 그것을 ‘짊어지기로 결단’하는 순간 장엄한 비극의 미학으로 변모함을 말해준다. ‘부’를 수행하는 시지프의 땀방울은 세계의 부조리라는 하중을 견뎌내는 인간 정신의 중심을 상징하며, 이는 승리의 화려함과는 다른 차원의 숭고함을 낳는다.


승부의 미학. Pinterest 제공


문학이 그려내는 진정한 승부는 키를 잡는 행위(勝)와 짐을 지는 행위(負)가 끊임없이 교차하며 하나의 변증법적 합일을 이루는 과정이다. 산티아고가 키를 쥐고 나아갔기에 뼈만 남은 물고기의 무게를 감당해야 했듯, 인간은 자신이 선택한 방향만큼의 하중을 짊어진다. 또한 시지프가 바위의 무게를 견뎌냈기에, 그는 비탈을 내려오는 짧은 순간 자신의 운명을 직시하며 사유의 키를 쥐는 주관적 승리를 맛본다.


결국 이 두 미학은 서로를 보완한다. 나아가려는 의지(勝)가 없다면 삶은 정체된 무게에 짓눌릴 것이고, 버티는 힘(負)이 없다면 삶은 방향을 잃고 부유할 것이다. 문학은 이기고 지는 단순한 이분법을 넘어, 생의 키를 놓지 않으려는 결연함과 내게 주어진 무게를 묵묵히 짊어지는 태도가 만날 때 비로소 인간의 삶이 하나의 예술적 형상을 얻는다는 사실을 조용히 일깨운다.



육개장 한 그릇이면 돼


영어의 ‘Win’은 고대 영어 winnan에서 비롯되었다. 이 말은 본래 ‘노동하여 얻다’, ‘쟁취하다’라는 뜻을 품고 있다. 승리는 노력의 대가로 손에 넣는 획득물, 곧 이득에 방점이 찍힌다. 반면 ‘Lose’는 losian에서 유래해 ‘파괴되다’, ‘사라지다’, ‘분리되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 어원적 대비 속에서 서구적 승패 개념은 이익과 손실이라는 계산의 언어로 작동한다. 무엇을 얻었는지, 무엇을 잃었는지의 합계가 인생의 성적표가 된다. 결과로 환산되지 않는 과정이나 패배는 곧 ‘제로(Zero)’ 혹은 ‘마이너스’로 밀려난다. 승패 이후에 남는 내면의 변화나 생의 진폭이 머물 자리는 그만큼 좁다.


그러나 ‘승부’라는 말은 그보다 훨씬 큰 파동을 품는다. ‘승’은 단순히 상대를 이겼다는 결과가 아니라, 거친 파도 앞에서 배의 키를 쥔 자의 결단을 뜻한다. 승리의 가치는 전리품에 있지 않다. 삶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항해의 주도권을 얻는 데 있다. 이는 내가 내 삶의 주인으로서 항로를 개척해 나가는 에너지다. 반대로 ‘부’는 상실이 아니다. 그것은 삶이 던지는 필연의 무게, 혹은 내가 선택한 항로가 불러온 책임을 등으로 받아들이는 수용의 미학이다. 지는 일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하중을 견디며 내면의 근육을 단단히 만드는 과정에 가깝다.


인생의 부침(浮沈)은 이기고 지는 사건의 반복이 아니다. 키를 쥐는 순간과 짐을 지는 순간이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생의 무늬다. 우리는 ‘승’을 통해 의지를 세계에 투사하며 외연을 넓히고, ‘부’를 통해 그 확장이 남긴 무게를 견디며 내면을 깊게 한다. 승부라는 말에는 잘 나갈 때(勝)의 오만을 경계하는 ‘방향의 책임’과, 가라앉을 때(負)의 비굴함을 넘어서는 ‘존엄한 하중’이 함께 들어 있다. 이득과 손실의 계산서에 기록되지 않는 ‘등의 넓이’와 ‘손아귀의 힘’이야말로 삶의 값이다. 결국 승부란 결과의 합계가 아니라, 삶이라는 바다에서 끊임없이 키를 잡고(勝) 다시 그 무게를 짊어지는(負) 행위 자체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다시 나의 첫 겨루기를 떠올린다. 그 기억의 중심에 형이 있다. 당시 시합에 동행해 준 유일한 사람이 형이었다. 나의 형. 사연이 많고, 선의가 언제나 선행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몸으로 보여준 사람. 어린 시절 형은 나의 반면교사였다. 그의 성과와 좌절을 지켜보며 나는 일종의 오답노트를 얻었다. 그 노트의 효능은 컸다. 성적뿐 아니라 세상에 임하는 태도까지 학습으로 그럴듯이 만들어 주었다. 모친은 아마 못마땅했을 것이다. 정성을 들이지 않은 쪽의 돌출은 늘 변수였으니까.


그 스트레스는 형에게 쏟아졌다. 강압과 체벌이 과도해졌고, 그 폭력은 내게로 흘러왔다. 한동안 등굣길에서 얻어맞아 어른들이 나를 보호하려 나설 정도였다. 그럼에도 나는 끝내 함구했다. 폭로는 악순환의 강도만 키울 것이라는 감각을, 그때 이미 알고 있었던 셈이다. 나의 태권도는 그렇게 시작되어 3단에 이르렀고, 중학교 때까지 체고 진학을 앞둔 친구를 위해 팀을 꾸려 대회에 나가기도 했다.


덕분에 학교에서 나를 건드릴 아이도, 동네 선배도 보이지 않았다. ‘날라리’라 불리던 녀석들의 도전은 대개 싱겁게 끝났다. 반장을 맡았고 성적은 탐이 났으며, 키는 빠르게 자라 늘 뒷자리에 앉았다. 나서기 좋아해 청소년연맹 누리단에서는 서울시 회장까지 지냈다. 그 시절의 승부는 특정한 누군가와의 대결이 아니라, 내 존재를 드러내야 했던 생존의 몸부림이었는지도 모른다. 두 학년 위의 형은 고등학교 진학과 함께 가톨릭 신학교와 수도원 입회를 준비했고, 모친의 관심과 욕망은 자연스레 내게로 옮겨왔다. 이후 부제 서품, 환속,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 우리는 안부조차 묻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육개장 한 그릇. AI Sora


그 긴 겨루기의 끝에서 나는 키를 쥐었을까, 아니면 기꺼이 짐을 짊었을까. 어느 쪽이든 내 삶은 승부로 가득했다. 때로는 승부를 ‘얻거나 잃는’ 문제로 오해해 남들을 밟고 올라서려 애쓰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내 삶의 방향키를 여전히 쥐고 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살아온 시간 쌓아 올린 모든 것을 짊어져야 한다는 책임이다. 아직 겨루기 중인 핏줄들과의 화해 또한 내 몫으로 남았다. 여기까지 이르는 데에도 적잖은 시간이 필요했다.


내 첫 겨루기에서 던져진 수건은 형의 요청으로 사범이 던진 것이라 한다. 시합을 마치고 울며 중식당에 앉아 있던 내게, 형은 “잘 싸우다 판정에서 졌다고 말해 줄게.”라며 등을 두드렸다. 그날 먹은 것은 육개장이었다. 중식당에서 왜 육개장을 먹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지만, 빨간 국물에 계란이 듬뿍 풀린 내 그릇에 형은 자꾸 자기 계란을 옮겨 담았다. 다 먹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나는 ‘잘 싸우다 진’ 태권 소년이 되었다. 요즘 나는 육개장을 거의 먹지 않는다. 매운 것을 조금만 먹어도 탈이 나는 몸이 되었다. 언젠가 한 번은 함께 먹는 날을, 조용히 기다려 본다. 그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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