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누스- 문을 지닌 신, 시간의 얼굴
1월을 뜻하는 영어 January는 그리스·로마 신화의 신 야누스(Janus)에서 유래했다. 우리는 흔히 ‘야누스의 두 얼굴’이라는 말을 들으면 겉과 속이 다른 인간의 이중성을 떠올린다. 그러나 이 비유는 애초부터 오해를 품고 있다. 인간의 위선을 설명하기 위해 차용된 이 표현은, 실은 철학자 쿠퍼의 곡해에서 비롯되었다. <마징가 Z>의 아수라 백작이나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분열된 자아를 호출하기엔 더없이 편리했지만, 신화 속 야누스의 본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책은 넘쳐 나지만, 책을 온전히 읽어 내는 이는 드문 시대다. 그리스·로마 신화를 제대로 읽은 기억조차, 성년의 편견 앞에서 유년의 독서를 이기지 못하기 일쑤다.
“영국의 철학자 쿠퍼(Anthony Ashley Cooper) 탓이 컸습니다. 감정과 욕망, 이성 사이의 균형과 조화를 강조했던 그는 『인간, 매너, 의견, 시간의 특성에 관하여(Characteristics of Men, Manners, Opinion and Times)』에서 “한쪽 얼굴로는 억지로 미소를 짓고, 다른 쪽 얼굴로는 노여움과 분노를 표하는 작가들의 이 ‘야누스 얼굴’만큼 우스꽝스러운 것은 없다.”라고 썼는데, 그것이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진 것이었습니다.”
- <김헌의 그리스 로마 신화>, 김헌 -
라틴어 야누아(janua)는 ‘문’을 뜻한다. 이 단어의 뿌리에는 신 야누스가 있다.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Metamorphoses』는 태초의 혼돈, 카오스를 설명하며 야누스를 호출한다. 완전한 ‘없음’으로도, 만물이 뒤엉킨 무질서로도 불렸던 카오스의 상태에서는 세계가 태어날 수 없었다. 그때 안과 밖을 가르는 경계, 곧 문의 신 야누스가 등장한다. 그의 출현으로 무존의 카오스는 비로소 질서의 코스모스로 나아갈 수 있었다.
야누스는 부정의 상징이 아니라 긍정의 존재다. 신화 속 그의 형상 또한 우리가 익숙히 떠올리는 이미지와 다르다. 야누스는 뒤통수에 또 하나의 얼굴을 지녀, 앞과 뒤를 동시에 바라본다. 뒤의 얼굴은 지나온 시간을, 앞의 얼굴은 다가올 시간을 응시한다. 과거를 통해 미래를 성찰하라는 통찰, 인간사에 주어진 숙명이 바로 이 두 얼굴에 담겨 있다.
인간은 긴 유랑을 끝내고 정주의 삶을 선택했다. 우리는 이를 ‘농업혁명’이라 부르며 진보의 이름을 붙인다. 그러나 생물학과 생태학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불합리의 연속이었다. 평생의 노동이 운명이 되었고, 편식은 질병과 궁핍을 불러왔다. 무엇보다 치명적인 변화는 정주와 함께 보수적이고 이기적인 유전자가 공고해졌다는 점이다. 울타리를 세우고 담과 지붕을 올리며 ‘나의 영역’을 확정하는 순간, 갈등의 씨앗은 싹트기 시작했다.
이 인간사 속에서 ‘문’은 특별한 발명품으로 등장한다. 문은 안과 밖을 가로지르는 통로이자, 배타적 이기심에 작은 틈을 내는 장치였다. 벽을 온전히 허물지 않으면서도,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인간은 벽의 일부를 열어 두었다. 문은 세계를 받아들이는 최소한의 개방이었다. 야누스는 전쟁에서 로마를 지켜 준 신으로도 숭배받았고, 그 이름은 1월에 남았다. 새해의 문을 여는 달이 ‘야누스의 달’, January(Janus+ary)가 된 이유다. 시간의 문을 여는 달에 문의 신이 자리한 셈이다.
고립의 이기심에서 개방의 이해심으로 나아가게 한 인류 최고의 발명품, 문. 그 기원이 야누스의 신화에 닿아 있다는 사실은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야누스의 아내 카르나는 ‘경첩’을 뜻하는 이름을 지닌 수호의 여신이다. 로마인들은 그녀가 악귀의 침입을 막아 아이들을 지켜 준다고 믿었다. 이 둘 사이에서 태어난 티베리우스는 로마를 관통하는 강의 신이 된다. 문과 경첩, 그리고 강. 안과 밖, 과거와 미래, 고립과 개방을 잇는 상징들이 하나의 신화로 겹쳐진다.
야누스의 두 얼굴은 위선의 표정이 아니라, 시간을 건너는 시선이다. 닫힘과 열림 사이에서 인간이 배워야 할 오래된 윤리, 그 첫 문이 바로 거기에 놓여 있다.
환대의 문이 열리던 날들
어린 시절, 대가족의 퍽퍽한 살림에서 겨울방학은 무료함과 긴 지루함이 겹쳐진 시간이었다. 두 형제가 학령기에 들어서며 잠시 숨을 고르던 어머니의 시간은, 1월이 오면 다시 길고 깊은 숙제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내게 1월은 달랐다. 그것은 선물처럼 길게 주어진 시간, 축복에 가까운 계절이었다. 어머니가 궁여지책으로 나를 외삼촌이 계신 강원도 황지, 지금의 태백으로 기차에 태워 보내던 때가 바로 그 무렵이었기 때문이다.
부족했던 것은 사람들의 주머니와 세상의 물질뿐이던 시절이었다. 선의와 온정은 지금보다 훨씬 넉넉해, 일곱 살이나 여덟 살쯤 된 아이가 홀로 열차를 타고 먼 길을 떠나는 일이 허락되던 사회였다. 기차역에서 옆자리에 앉은 어른에게 한마디 당부만 건네면, 나는 곧 객차 안의 기특한 귀염둥이가 되었다. 귤과 삶은 달걀, 사이다를 건네받고, 듬직한 군인 아저씨의 무릎에 앉아 까무룩 잠들기 일쑤였던, 이상할 만큼 안전한 여행길이었다.
몇 시간을 달려 기차가 멈추고, 산을 오르내리며 사람들이 하나둘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산 깊은 황지에 닿아 있었다. 역에 도착하면 언제나 막내 외숙모가 두 팔을 벌려 나를 품어 주었고, 몇 걸음 되지 않는 역을 나서면 외삼촌이 택시를 몰고 기다리고 있었다. 군 공무원이던 외삼촌은 부업으로 황지에 하나뿐인 택시회사를 운영했고, 양봉을 병행하며 살림을 일구고 있었다.
아궁이에 연탄을 때 장판 빛이 짙어진 아랫목에 나를 꽁꽁 싸서 눕히고, 이런저런 반찬에 닭도리탕까지 내어 주던, 다 쓰러져 가던 그 집에서 나는 귀한 존재였다. 아이가 서지 않았던 외삼촌 내외는 한때 나를 입적하려 했으나 친가의 반대로 뜻을 접었고, 대신 각별한 정성으로 나의 겨울을 맡아 주었다. 내가 더 이상 겨울방학 황지행이 필요 없어졌을 즈음, 외삼촌 내외는 딸을 입양해 키워 결혼까지 치러낸 뒤, 한 해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먼 길을 떠났다.
그곳에서 나는 천덕꾸러기가 아니라 ‘귀한 서울 도련님’이었다. 삼척과 강릉, 정선과 제천을 오가며 환대의 나날을 누렸다. 서울에서 온 열 남매 중 막내딸이었던 어머니의 막내아들은, 그 시골에서 손꼽히는 귀빈이 되었다. 외조부는 일찍 소천하셨고, 외조모는 투박한 손길로 늘 따뜻이 맞아 주었다.
문이 열어 준 겨울
강원도 원동에 자리한 외가는 태백과 삼척 사이의 중산간 지역이었다. 드넓은 배추밭 한켠에 강원도 전통 너와집이 있었고, 툇마루는 좁았으나 집 안 한가운데에는 회랑 마루가 놓여 있었다. 아궁이에 불을 때던 부엌 옆에는 소 두 마리가 머무는 외양간이 붙어 있었다. 찬 외기를 막기 위해 부엌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기에, 그곳은 사랑방이자 놀이터였다. 겨울이면 쇠꼴죽을 먹는 소들을 바라보며, 아궁이 위에 올려 둔 감자와 옥수수가 익어 가기를 기다리는 재미가 있었다.
날이 풀리면 배추밭 한가운데 자리한 외조부 묘소에 인사를 드렸다.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을 만큼 넓은 밭을 일구며 일꾼을 거느렸다는, 마지막 향교 전교였던 외조부의 모습은 늘 하얀 두루마기 차림으로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낮에도 마을은 그늘진 곳이 많았고, 키 낮은 흙집 처마 끝에는 옥수수가 매달려 있었으며, 흙벽에는 시래기가 널려 있었다. 햇볕을 찾아 산으로 오르내리며 되지도 않을 토끼 사냥을 흉내 내고, 성기게 만든 활로 꿩 사냥 시늉을 하던 날들.
어린 시절 외가로 향하는 길에서 나는 수없이 많은 문을 건넜다. 집을 나서며 넘은 첫 문이 있었고, 기차에 오르기 위해서도 칸칸이 달린 미닫이 열차문을 지나야 했다. 태백에 도착해 외삼촌의 택시 문을 열고 닫았고, 좁고 낡은 외삼촌 댁의 합판문은 매서운 추위로부터 나를 감싸 주었다.
원동 시골집 부엌의 문은 좀처럼 닫히지 않았다. 사람의 온기를 숨기지 않으려는 듯 늘 활짝 열려 있었다. 부엌에서 방과 중간마루로 이어진 쪽문 사이로 밥상과 간식이 오갔고, 그 틈을 따라 투박하지만 다정한 강원도 사투리가 흘러들었다. 문은 단절의 경계가 아니라, 삶이 오가는 통로였다.
그렇게 문들은 나를 안으로 들이고, 추위를 밖에 남겼다. 수없이 열리고 닫히던 그 문들 덕분에, 나는 내 생애 가장 따뜻했던 겨울을 통과할 수 있었다. 내게 1월은 그렇게, 평온과 환대의 문이 조용히 열리던 시간이었다.
정화의 달, 두 얼굴의 겨울을 지나
올겨울은 유난히 매섭다. 계절만의 탓이라 하기엔 삶의 여러 조건과 처지가 체온을 더 낮추었을지도 모른다. 며칠째 이어진 추위 속에서 몸은 좀처럼 풀리지 않는다. 감기가 스며들어도 선뜻 쓸 약 하나 없는 암환자의 몸으로, 나는 온몸을 꽁꽁 싸맨 채 서툰 여름 이불을 끌어안는다. 목덜미로 스며드는 우풍에 문득, 낮고 오래된 외가의 흙집이 떠오른다. 지금보다 가진 것도, 누릴 것도 훨씬 적었던 시절인데, 그 시간들은 왜 그렇게 평온하고 충만했을까. 어른이 된다는 일은 성숙이라는 훈장을 달아 주는 동시에, 자각이라는 낙인을 남긴다. 그 상처와 영광을 함께 끌어안은 채, 나는 다시 봄을 그려 본다.
야누스의 두 얼굴은 과거를 통과한 회심의 시선으로 미래를 바라보라는 오래된 가르침을 건넨다. 한때 편견에 기대어, 그의 두 얼굴을 겉과 속이 다른 이중인격의 상징으로 불러왔던 기억이 이제는 조금 부끄러워진다. 신화란 본디 믿음의 체계다. 태생부터 허구와 상상에서 출발했기에, 그 변용은 놀라울 만큼 쉽다. 긍정의 상징이 부정의 주술로 둔갑하고, 사실은 망상으로 덮이는 일이 반복된다.
우리는 흔히 두 얼굴을 가진 사람을 ‘야누스적’이라 부르며, 위선과 기만의 대명사처럼 사용해 왔다. 그러나 로마 신화 속 야누스는 문의 수호신으로, 그의 두 얼굴은 배신이 아니라 시작과 끝,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감당해야 하는 경계인의 숙명을 가리킨다. 신화는 인간의 집단 무의식이 투영된 믿음의 구조이기에, 시대의 편견에 따라 본질이 쉽게 왜곡된다.
신화는 사실적 근거가 없는 허구에서 출발하지만, 그 허구가 집단의 믿음과 결합하는 순간 강력한 상징 권력을 획득한다. 문제는 그 상징이 성찰의 도구가 아니라, 타자를 낙인찍고 자기 모순을 정당화하는 장치로 전락할 때다. 야누스에 대한 오해는 이러한 변용의 전형이다. 과거를 돌아보고 회심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모색하라는 신화적 메시지는 사라지고, ‘안과 겉이 다르다’는 표피적 특징만 남아 그를 배신자의 초상으로 굳혀 버렸다.
이 왜곡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정화의 시간이 필요하다. 1월(January)이 야누스의 달로서 새로운 시작의 문을 연다면, 2월(February)은 고대 로마의 정화 축제 ‘페브루알리아(Februalia)’에서 이름을 얻은 달이다. 묵은 때를 씻고 성스러움을 회복하는 시간이다. 정화는 단순히 더러움을 제거하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사물과 본질을 바라보던 우리의 시선에서 편견과 망상을 걷어 내고, 신화가 지닌 본래의 가치를 회복하는 지적이자 영성적인 의식이다.
야누스의 두 얼굴이 주는 가장 엄정한 경고는, 과거에 대한 정직한 반성 없이는 미래를 향한 투명한 시선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이다. 신화의 가변성을 악용해 사실을 망상으로 덮을 때, 정화의 기회는 사라지고 기만의 얼굴만 남는다. 그러므로 2월이라는 시간의 문턱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야누스의 한 얼굴이 응시하는 ‘지나온 길’에 대한 성실한 복기다.
신화가 쉽게 변형되는 까닭은 그것이 인간의 욕망을 담기에 가장 적합한 그릇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그릇에 무엇을 채울지는 전적으로 우리의 몫이다. 편견의 렌즈로 야누스를 재단해 왔던 과거를 부끄러워하는 마음, 곧 회심이야말로 정화의 출발점이다. 이 성찰 위에서만 우리는 가짜와 거짓의 껍질을 벗기고, 신화가 숨기고 있던 삶의 지혜를 마주할 수 있다.
고대 로마에서 2월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달이었다. 2월의 정화는 계절의 교체가 아니라, 오염된 인식의 체계를 씻어 내고 미래라는 미지로 나아가기 위한 실존적 준비였다. 신화 속 두 얼굴은 우리가 외면해 온 진실을 비추는 거울이다. 그 거울 앞에서 자신의 편견을 씻어 낸 이만이, 야누스가 지키는 미래의 문을 조심스럽게, 그러나 당당히 열 수 있다.
허구 덕분에 인류는 집단적 상상을 획득했다. 그 상상은 대규모 협력과 협업을 가능케 했고, 문명과 역사를 탄생시켰다. 유발 하라리는 인간을 ‘이야기하는 사피엔스’라 부르며, 이야기가 인간의 역사를 생물학에서 분리해 냈다고 말한다. 그 이야기의 가장 깊은 근원에 신화가 있다. 나는 신화를 다시 읽으며, 세계를 새롭게 읽는 나 자신을 만나고자 한다. 인간은 권력을 쟁취하는 데에는 탁월했지만, 그 권력을 행복으로 전환하는 데에는 서툴렀다. 언젠가 이야기의 힘이 권력과 재화를 다시 행복으로 바꾸어 줄 날을, 조용히 꿈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