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만들고 벽을 세우며 복을 지키는
고딕 성당의 가파른 나선형 석조 계단 387개를 오르는 길은,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하나의 고행처럼 느껴진다. 좁고 어두운 통로를 따라 숨을 고르며 도달한 노트르담 대성당의 상층 갤러리, ‘키메라의 회랑(Gallery of Chimeras)’에서 처음 마주하는 것은 파리의 전경이 아니다. 그곳에는 먼저, 거친 숨결을 닮은 석조 괴수들이 있다. 수백 년의 비바람을 견딘 가고일(Gargoyle)들은 턱을 괴고 앉아 도시를 내려다보거나, 무언가를 삼킬 듯 입을 벌린 채 허공을 응시한다. 기괴하면서도 서글픈 얼굴, 위협적이면서도 고독한 표정. 그 침묵 속에는 시간의 무게가 스며 있다.
노트르담 대성당을 장식하는 가고일은 이 건축물을 가장 인상적으로 규정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다. 무시무시한 형상으로 기억되지만, 이 신비로운 존재들은 오랜 세월 방문객과 파리 시민의 상상력을 붙들어 왔다. 가고일 조각상들은 성당 건축과 함께 설계되었다. “가고일”이라는 이름은 라틴어 gorge와 고대 프랑스어 gueule에서 비롯되었으며, 모두 “입”을 뜻한다. 중세 유럽 건축에서 이들은 지붕에 자리한 악마 형상의 석상, 혹은 그 이미지에서 파생된 날개 달린 괴물의 원형으로 남아 있다.
프랑스 전설은 가고일의 기원을 더욱 극적으로 전한다. 루앙 지역에는 드래곤의 모습을 한 가고일이라는 괴물이 살았다고 한다. 루앙의 대주교 성 로마노는 이 괴물을 사로잡았는데, 십자가로 제압했다는 이야기와 죄수의 도움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화형에 처해진 가고일은 몸은 타들어 갔지만, 불을 뿜던 목과 머리는 남았다고 한다. 이후 새로 지어지는 성당에는 이 괴물의 형상이 매달렸다. “너희들 나대다가는 이놈처럼 죽는 수가 있다”는 경고를, 악마들에게 건네기 위해서였다. 형태는 달라졌지만, “우리는 이런 괴물마저 쓰러뜨렸다”는 의미만은 공유되었다.
2019년 4월, 노트르담 대성당을 덮친 비극적인 화재 이후 가고일과 그로테스크 조각상들은 또 다른 상징이 되었다. 일부는 손상되거나 파괴되었지만, 많은 조각상들은 남아 복원 과정 속에서도 자리를 지켰다. 그 묵묵한 존재감은 장인들의 기술과 예술성을 증명하는 동시에, 이 대성당을 미래로 이어가려는 이들에게 조용한 용기를 건넨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가고일은 기능과 상징을 함께 짊어진 존재다. 빗물을 흘려보내는 실용적 장치이자, 상상력과 두려움이 형상화된 얼굴이다. 위협적인 모습은 고딕 미학의 깊이를 더하고, 인간이 끝내 두려움을 예술로 바꾸어 왔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이 상징적인 걸작의 수호자로서, 가고일은 오늘도 파리 시를 말없이 내려다본다. 정면에 자리한 석조의 얼굴들은 그것들을 생명처럼 깎아낸 장인들의 손길을 증언하며, 노트르담 대성당이 품은 긴 역사와 문화적 기억을 환기한다. 복원과 보존의 시간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가고일은 이 건축물이 세월을 견디게 한 인간 정신의 끈질김을 상징하는 존재로 남아 있을 것이다.
돌의 얼굴, 인간의 영혼
햇빛이 석조 표면의 이끼와 파인 구멍들을 비출 때, 차가운 돌은 잠시 생명력을 얻은 듯 꿈틀거린다. 이 기묘한 생동감은 빅토르 위고가 창조한 비극적 영혼, 콰지모도의 형상과 겹쳐지며 우리를 고딕 미학의 핵심인 ‘그로테스크’의 심연으로 이끈다.
고딕 건축의 상징인 가고일은 본래 지붕의 빗물을 밖으로 흘려보내는 실용적 배수구다. 그러나 예술의 차원에서 가고일은 거룩한 성전을 지키기 위해 악귀의 얼굴을 빌려온 역설적 존재다. 이 존재 방식은 『노트르담 드 파리』(빅토르 위고) 속 콰지모도의 삶과 깊은 상호텍스트적 관계를 맺는다. 위고는 콰지모도를 하나의 인물이라기보다 대성당의 일부로 묘사한다.
“그는 대성당에 동화되어 있었고, 그 속에 포함되어 있었으며, 말하자면 그것의 마지막 부속물이었다.”
콰지모도와 가고일은 시각적으로도 완벽히 조응한다. 위고는 콰지모도를 “살아있는 가고일”로, 가고일을 “잠든 콰지모도”로 그리며 둘의 경계를 허문다. 뒤틀린 척추와 돌출된 눈, 비대칭적인 신체는 성당 외벽에 매달린 가고일의 기괴한 조형성과 맞닿아 있다. 그는 사람들에게 공포를 주는 ‘추(醜)’의 화신이지만, 동시에 종을 울려 신의 목소리를 전하는 ‘성(聖)’의 대리자다. 가고일이 추한 얼굴로 성당의 불순물을 토해내듯, 콰지모도 역시 자신의 비천한 육신으로 세상의 멸시를 받아내며 성전의 순결을 지킨다.
이 지점에서 가고일은 단순한 건축 부재를 넘어 콰지모도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콰지모도는 인간 사회에서 밀려날수록 성당의 석조 구조물에 더 깊이 스며들고, 그 안에서 비로소 정서적 안정을 얻는다. 무생물인 건축에 인격이 부여되고, 살아 있는 인간은 건축적 질서 속으로 편입된다. 가고일의 기능인 ‘액막이’와 ‘배수’는 그대로 콰지모도의 삶의 은유다. 그는 추한 외모 속에서도 에스메랄다를 향한 숭고한 사랑과 성당에 대한 헌신을 간직한다.
이들의 접점은 외형적 닮음을 넘어 ‘그로테스크의 숭고’에 이른다. 위고는 「크롬웰 서문」(1827)에서 “그로테스크는 예술에서 가장 풍요로운 원천”이라 말했다. 콰지모도와 가고일은 추함이라는 외피 속에 숭고라는 핵을 품는다. 완벽한 비례 대신 왜곡과 불균형을 통해 존재의 비극과 신비를 드러내는 고딕의 미학이 이 상호텍스트성에서 완성된다.
움베르토 에코는 『추의 역사』에서 고딕 시대의 추함을 천상의 아름다움에 닿지 못한 인간적 한계의 표상으로 읽어낸다. 가고일과 콰지모도는 같은 조형 언어를 공유하며, 불완전한 존재들이 모여 이루는 고딕적 통일성 속으로 편입된다. 콰지모도가 종을 울릴 때, 그는 가고일들과 함께 대성당이라는 거대한 유기체의 일부가 된다. 여기서 발생하는 감각은 공포와 경외가 뒤섞인 ‘전체론적 숭고’다.
가고일이 높은 곳에서 파리를 내려다보듯, 콰지모도 역시 그 자리에서 세상을 관조한다. 이들은 인간의 도덕과 외모의 질서를 넘어, 천상의 질서로 향하는 중간적 존재다. 돌처럼 굳은 인간의 고독과 생명을 얻은 돌의 기괴함이 교차하는 순간, 독자는 추함이 어떻게 예술로 승화되는지를 목격한다.
결국 노트르담의 지붕 위에서 마주하는 가고일은 콰지모도의 침묵하는 분신이며, 콰지모도는 가고일이 육화된 존재다. 둘은 서로를 비추며 인간 내면에 공존하는 짐승과 천사, 추함과 숭고의 모순을 증언한다. 성당이라는 거대한 텍스트 안에서 이 석수들과 종지기는 분리될 수 없는 문장처럼 엮인다. 파리의 노을이 가고일의 어깨 위에 내려앉을 때, 우리는 비로소 깨닫는다. 가장 추한 외피 속에 가장 뜨거운 신성이 깃들 수 있음을, 그리고 그것이 위고가 건축과 문학으로 완성한 상호텍스트적 미학의 승리임을.
봄을 세우는 얼굴들
‘겨울이 깊으면 봄도 멀지 않았다’는 시구처럼, 우리는 여전히 겨울의 한복판에 서 있으면서도 어느새 봄의 기척 안으로 들어서 있다. 어제는 봄으로 들어선다는 절기, 입춘이었다. 입춘은 24절기 가운데 봄의 시작을 알리는 시점으로 여겨진다. 이 때문에 흔히 ‘입춘’을 ‘入春’으로 오기하기 쉽다. 봄으로 들어간다는 뜻을 떠올리면 자연스러운 착각이다. 실제로 SNS에서도 이런 표기를 종종 마주한다. 그러나 정확한 한자 표기는 ‘入春’이 아니라 ‘立春’이다.
왜 ‘立春’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한 정설이 남아 있지 않다. 다만 몇 가지 해석이 전해진다. ‘立春’이라는 말은 『예기(禮記)』 월령편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진다. 이날 중국 황제가 신하들을 거느리고 동쪽으로 나아가 봄을 맞이하며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황제가 봄을 ‘세운다’는 의미에서 ‘立春’이라는 표현이 쓰였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해석에서 ‘立’자는 ‘곧’, ‘즉시’라는 뜻을 지니므로, “곧 봄이 된다”는 예고의 의미로 이해되기도 한다. 아직 완연한 봄은 아니지만, 이제 봄의 문턱에 들어섰다는 뜻이다.
동양 철학에서 ‘립(立)’은 없던 것이 존재감을 얻어 자기 자리를 세우는 행위를 뜻한다. 겨울 내내 땅속에 잠들어 있던 양(陽)의 기운이 막 고개를 들고 “나 여기 있다”고 말하는 순간이다. 그래서 입춘은 “봄이 왔다”는 완료형이 아니라, “봄의 질서가 수립되었다”는 시작형에 가깝다. 24절기 가운데 계절의 전환점에 해당하는 절기에는 모두 이 ‘立’ 자가 붙는다. 입춘(立春), 입하(立夏), 입추(立秋), 입동(立冬). 이를 사립(四立)이라 부른다. 일 년이라는 시간 위에 네 개의 기둥을 세우는 순간들이다. 집을 지을 때 가장 먼저 기둥을 세우듯, 시간 역시 그렇게 구조를 얻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입춘인데 왜 이렇게 춥냐”고. 여기서 ‘立’은 체감 온도가 아니라 천문학적 기준을 따른다. 태양의 황경이 315도에 도달하는 순간을 봄의 시작으로 정했기에, 우리의 피부가 느끼는 계절과는 어긋남이 생긴다. 입춘은 “따뜻해져서 봄”이 아니라, “오늘부터 봄이라는 시간이 발효된다”는 선언에 가깝다. 대문에 붙이는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에도 ‘세울 건(建)’ 자가 들어간다. 입춘은 단순히 계절을 맞이하는 날이 아니라, 한 해의 운과 질서를 새로이 세우는 능동적인 시점이다.
이 입춘서와 서양 건축의 가고일은 서로 다른 문화권에 속해 있으면서도 흥미로운 공명을 이룬다. 둘은 모두 ‘경계의 수호’와 ‘벽사(辟邪)’라는 기능을 공유한다. 가고일과 입춘서는 건축물의 입구나 취약한 지점에 놓여 외부의 부정한 기운을 막아내는 시각적 부적이다.
가고일은 성당의 지붕 끝에서 빗물을 토해내며 건물을 부식으로부터 지키는 동시에, 기괴한 형상으로 악귀를 위협한다. 입춘서는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이라는 문자를 통해 절기의 경계에서 복을 부르고 화를 막는 언령(言靈)의 역할을 수행한다. 가고일이 공포로 공포를 제압하는 방식이라면, 입춘서는 문자와 질서를 통해 보이지 않는 기운을 다스린다. 방식은 다르지만, “이 문턱을 넘어 부정한 것은 들어올 수 없다”는 선언은 같다.
가고일과 가장 가까운 한국의 건축적 대응물은 궁궐과 관아 지붕 위에 놓인 잡상(雜像)이다. 잡상은 『서유기』의 인물들과 토신(土神)을 흙으로 빚어 구운 기와로, 궁궐 전각이나 성문처럼 위계 높은 건물 위에 올려졌다. 가고일이 악귀를 쫓듯, 잡상 역시 살(煞)이나 화마(火魔)가 침투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다. 맨 앞의 삼장법사를 시작으로 손오공(손행자), 저팔계, 사오정이 뒤따르는 배열은 불법을 수호하고 요괴를 퇴치하는 서사를 건축 위로 옮겨온 것이다.
이 밖에도 취두(鷲頭)와 치미(鴟尾)는 용이나 독수리의 머리 형상으로 화재를 막는 상징이며, 드므는 궁궐 정전 앞마당의 큰 솥으로 화마가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달아난다는 의미를 지닌다. 귀면와(鬼面瓦)는 도깨비 얼굴을 새긴 기와로, 가고일의 위압적인 외형과 가장 닮아 있다. 가고일이 석조 건축에서 물리적 보호를 담당했다면, 한국의 잡상과 입춘서는 목조 건축과 시간의 경계에서 복을 부르고 화를 막는 정신적·서사적 방패였다.
입춘은 그렇게 계절을 알리는 표식이자, 경계를 세우는 의식이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막고, 다가올 시간을 맞이하기 위해 우리는 해마다 문 앞에 말을 붙이고, 지붕 위에 얼굴을 올려둔다. 봄은 그렇게, 조용히 ‘세워진다’.
입춘, 가장 먼저 오는 봄의 얼굴
“흐드러진 꽃이 아직이라고 낙심 말아요.
봄은 꽃이 활짝 필 때가 아니라
추운 겨울이 깊고 깊어지면 오니까요.”
― 내 메모 어딘가 ―
봄의 기억은 언제나 따뜻한 개화의 장면보다, 미처 대비하지 못한 추위의 감각으로 먼저 남는다. 환하게 핀 꽃보다, 꽃이 피기도 전에 스며들던 시샘추위가 더 오래 기억에 붙어 있다. 새 학년이 시작되던 교실은 늘 차가웠다. 난방이 채 돌지 않은 아침 공기 속에서 아이들은 각자의 책상에 앉아 있었고, 서로의 이름조차 아직 익숙하지 않은 얼굴들은 어딘가 굳어 있었다. 창밖으로는 봄빛이 비치는데, 교실 안의 공기는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봄은 늘 그렇게 시작되었다. 환대보다는 경계로, 설렘보다는 긴장으로.
그래서 생각해 보면, 봄이라고 해서 늘 따뜻한 기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봄의 초입에는 늘 겨울의 잔기가 남아 있었다. 입춘은 봄의 첫 문턱이라기보다, 겨울이 마지막으로 요구하는 인내에 더 가깝다. 끝이 보이지 않던 겨울밤이 조금씩 옅어지지만, 아직 아침은 차갑고, 해는 낮다. 길고 긴 겨울을 한숨으로 채운 작은 방 안에서, 그저 볕 한 줄기가 깊숙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마음. 입춘은 그런 마음의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이미 봄을 말하지만, 아직 봄을 살고 있지는 않은 상태. 선언과 체감 사이에 놓인, 가장 미묘한 시간이다.
‘암 생존자’라는 말이 있다. 병의 깊이나 기간과 상관없이, 암을 이겨냈거나 지금도 함께 건너고 있는 이들을 부르는 이름이다. 이 말에는 결과보다 과정에 대한 존중이 담겨 있다. 완치 여부보다, 시간을 통과해 온 몸에 대한 인정이다. 유난히 추운 입춘날, 이 단어가 조심스럽게 마음에 머문다. 견뎌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존중받아야 할 이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재작년 이맘때의 기억이 겹쳐 온다. 백혈병으로 응급 입원해 항암을 시작했고, 병실에서 설날을 맞았다. 창밖에는 명절의 소리가 있었지만, 병실 안의 시간은 다른 속도로 흘렀다. 날짜는 넘어갔고 절기는 바뀌었지만, 몸은 하루를 겨우 통과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입춘을 기다리던 그 무렵, 봄은 계절이 아니라 희망에 가까웠다. 87kg이던 몸은 63kg까지 크게 줄었고, 다시 10kg 남짓을 회복하기까지 적잖은 시간이 필요했다. 두 번의 항암제는 기대만큼의 응답을 주지 않았고, 세 번째 약제에 이르러서야 수치들이 조금씩 고개를 들었다. 큰 변화는 아니었지만, 그 ‘조금씩’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된 시간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간은 혼자 건너온 것이 아니었다. 말없이 곁을 지켜준 얼굴들, 기도처럼 건네진 마음들. 결국 남는 말은 하나뿐이다. 다 덕분이었다는 말.
설날을 앞둔 입춘의 계절에 다시 일상을 맞이한다. 설날이라는 이름에는 여러 해석이 겹쳐 있다. 모든 것이 새로워 낯설어서 설날이라는 말, 한 살 더해지는 시간이 서러워서 설날이라는 말, 시작 앞에서 마음이 설레어 설날이라는 말, 혹은 모든 일을 삼가야 하는 시기라 ‘삼가는 살’에서 설이 되었다는 이야기까지. 어느 하나가 옳고 그르다기보다, 설날이라는 이름은 그렇게 여러 마음의 결을 함께 품고 있는 듯하다.
입춘과 설날이 나란히 오는 이 시기는 늘 애매하다. 끝나지 않은 겨울과 아직 오지 않은 봄 사이, 지나간 시간과 새로 시작될 시간 사이에 서 있다. 그래서 이때의 기쁨은 크지 않다. 대신 작고 조심스럽다. 요란하지 않고, 손에 쥘 수 있을 만큼만 존재한다. 오늘 하루 무사히 지나간 일, 몸이 조금 덜 아픈 아침, 다시 맞이한 평범한 저녁 같은 것들. 그 고만고만함 속에 삶은 다시 기울기를 회복한다.
나름 나름의 소동 속에서, 나름 나름의 속도로. 이 봄이 꼭 환희일 필요는 없겠다. 다만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온기와, 숨을 조금 더 깊게 들이마실 수 있는 여백이 있다면 충분하다. 그렇게 고만 고만한 행복을 진심으로 담아가는 봄날이기를. 입춘이라는 이름 아래, 아직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조심스레 고개를 드는 봄을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