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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의 다른 말: 선택- 시간여행

| 타임워프 | 타임리프 | 타임슬립 | 타임루프 |

by 박 스테파노

가끔 시간을 되돌리고 싶을 때가 있다. 결과가 마뜩지 않은 순간, 치욕스러운 날, 중요한 것의 상실이 있거나, 민망할 때도 문뜩 드는 생각이다. 생각의 생각의 거듭을 하다 보면 "태어나지 말아야"한 것으로 귀결되는 맘 속의 시간여행을 하곤 한다.


그런데, 시간여행 관련 장르를 접하게 되면, 그 양상이 조금씩 다르게 다가 온다. 그래서 "타임워프", "타임리프", "타임슬립", "타임루프" 등의 용어가 나오는데, 헷갈리고 혼재되고, 잘못 혼용되기도 한다. 아주 쉽게 이야기하면 워프는 '시공을 초월한 이동'이고, 리프는 '타임머신'같은 의도적 시간 여행이며, 슬립은 '불가항력의 시간 이동'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루프는 이 모든 현상이 고장 난 시계처럼 '무한반복'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무비ㆍ드라마 큐레이션의 첫 번째 주제는 "시간여행"이다.



1. 타임워프(Time Warp)

*warp : 틀어지게 만들다. 왜곡하다
**time warp : 시간을 뒤틀어 왜곡하기
>> 현재의 시간에서 과거나 미래가 뒤섞여 나타나는 것. 현재를 중심으로 과거나 미래의 일이 나타나거나 영향을 미침.


오늘날 SF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초광속 기술의 한 종류로 등장한다. 즉, 웜홀 같은 방법으로 시공간을 왜곡하여 짧은 시간에 먼 거리를 이동한다는 것인데, 이해하려 들면 머리가 많이 아파 온다.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이 "모든 양의 질량을 가진 물체는 빛보다 빨리 이동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인류가 타 은하로 여행을 가는 꿈은 실질적으로 물거품이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떻게든 가능성을 찾아보다가, 빨리 갈 수 없다면 거리를 줄이면 된다라고 생각하며 생겨난 게 워프이다. 상식적으로는 꽤나 뜬금없는 얘기지만, 초광속 여행이 가능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매우 많았기에 SF에 많이 등장하는 기술이 되었다. 현대 물리학적으로 이론적으로 "가능"은 하다니, 오래 살고 보기로 한다.


영화ㆍ드라마 장르에서는 그야말로 조금 "왜곡"되었는데요. 사실 "워프"의 기술은 "순간 이동"의 기술이나, 먼 우주를 짧은 기간에 운송하는 기술, 즉 스타트렉의 "빔(beam) 워프"가 맞지만, 현재 미디어 장르는 확대 해석해서 정착되었다. 시간이 '뒤틀려' 현재, 과거의 시공이 혼재되는 것들을 다 포함한다.


드라마 <시그널(2016)>이 대표적이고, 데니스 퀘이드 주연의 <프리퀀시(2000)>, 조정석 주연의 <시간 이탈자(2016)>, 내일을 찍는 사진기 <타임랩스(2014)>, 그리고 임재범의 '너를 위해'가 OST로 더 유명한 <동감(2000)>등이 있다.

수많은 타임워프

그중 저의 "원픽"은 고민이 많았는데,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터스텔라(2016)>로 정했다. "워프"의 의미에 가장 부합한 물리학 이론적 배경으로 놀라운 감동을 주기 때문인데, 살짝 어렵고 지루하다는 의견(와이프님)이 있어 최종 선택에 고민은 있었다. 그래도 정석이 해법보다는 우선되어야지.


정석 <인터스텔라>


-Ste's pick-

인터스텔라 (Interstellar, 2014)

| SF | 미국 |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 출연: 매튜 맥커너히, 앤 해서웨이, 마이클 케인 |


세계 각국의 정부와 경제가 완전히 붕괴된 미래가 다가옵니다. 지난 20세기에 범한 잘못이 전 세계적인 식량 부족을 불러왔고, NASA마저도 해체됩니다. 이때 시공간에 불가사의한 틈을 탐험해 인류를 구해야 하는 임무가 지워집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뒤로한 채 인류를 위해, 그들은 이제 희망의 실마리를 찾아 우주로 가는데. (다음 영화)



2. 타임리프(Time Leap)

*leap : 크게 점프하되 한 발로 점프해서 다른 발로 착지하여 전진하는 동작.
**time leap : 자기 의지대로, 자유자재로, 특정 시간으로 되돌아가는 것. "회귀"라고도 표현됨.
리프


시간 여행 이야기는 대체로 타임리프, 타임슬립에 해당된다. 현재에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특정 시간대(주로 과거) 이동하며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다. 타임리프가 슬립과의 다른 점은 시간여행을 스스로 제어할 수 있다는 점이다. "리프"라는 동사가 설명하듯 스스로 시간대를 건너뛰는 것이다. (타임머신=타임리프)


일본의 서브 컬처에서 확장된 용어로 보인다. 게임 용어에서 따온 타임 리프(タイムリープ)라는 표현이 쓰인다. 1999년 타카하타 쿄이치로의 라이트 노벨 <타임 리프 내일은 어제>에서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일본 애니메이션에 자주 차용되었다. 영미권 문서에서는 자주 눈에 띄지는 않는다.


어느 경위로 주인공이나 누군가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과거로 날아가버린 이야기들을 말한다. 즉, 인생 다시 살기, 넓게 보면 시간여행물이나 타임슬립 물의 일종으로, 과거 2000년대에는 역행물, 리턴 물, 리셋 물 등으로 불리기도 했으나 2010년대 이후에는 "회귀 물"이라는 표현이 압도적으로 많이 쓰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일본 애니메이션 <시간을 달리는 소녀(2016)>, 영국 '워킹 타이틀'의 대표작 <어바웃 타임(2013)>, 그리고 애쉬튼 컬처가 풋풋한 모습으로 나온 <나비효과(2004)>등이 있다.

타잉 리프


이 중에서 <어바웃 타임>도 정말 좋은 영화이지만, 널리 알려졌고,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타임머신의 정석 <백 투 더 퓨쳐> 시리즈도 고민이 되었다. 결국 저의 픽은 기욤 뮈소 원작의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2016)>입니다. 이유는 링크된 리뷰로 대신.

기욤 뮈소의 원작


-Ste's pick-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Will You Be There, 2016)

| 판타지 | 한국 | 감독: 홍지영 | 출연: 김윤석, 변요한, 채서진 |


우연히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10개의 알약을 얻게 된 수현(김윤석). 1985년으로 돌아가 30년 전의 자신(변요한)과 만나게 되고, 10번의 기회를 통해 평생 후회하고 있던 과거의 한 사건을 바꾸려 하는데. (다음 영화)



3. 타임슬립 (Time Slip)

*slip : 미끄러지다
**time slip : 인물이 과거나 현재, 미래로 이동하는 시간 여행. 보통 초자연적 힘, 우연이나 비자발적인 이유에 의해 시작.


판타지 및 SF의 단골 이야기 틀로 사람 개인, 집단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시간을 거스르거나 앞질러 과거 또는 미래에 미끄러지듯 떨어지는 일을 말한다. 사고에 가까운 초자연현상이라는 점에서, 의도적으로 시간을 거스르는 타임머신을 이용한 타임리프 등과는 구분된다.


타임슬립 개념은 여러 사람들이 들고 나왔으나, 1964년 필립 K. 딕이 화성의 타임슬립(martian Time-slip)이라는 소설명으로 사용한 것이 최초라고 하기도 하고, 19세기에 마크 트웨인이 쓴 <아서 왕 궁정의 코네티컷 양키>를 그 시초로 친다. 타임리프류와의 가장 큰 차이는 주인공은 시간을 뛰어넘는 일에 대한 제어능력이 없고, 또 그 과정을 이해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대개는 그 원리가 독자에게도 전혀 설명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믿는 자에게 마음의 평화가 오는 것이다.


개연성을 무시하고 감동적이거나 드라마틱한 상황을 쉽게 연출할 수 있어 창작물에서 자주 써먹는 클리셰로 아주 유효하다. 타임슬립은 두 개 또는 그 이상의 서로 연결된 타임라인을 갖는다. "기억상실"은 스스로의 타임슬립이라 할 수 있다. 기억이 통째로 단절된 사건으로 인해 스스로 타임슬립을 한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이 장르에 포함하곤 한다. 어쩌면 자기가 타임슬립을 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이런 경우일지도 모른다.


타임슬립 소재의 소설, 영화, 드라마는 정말 많다. 넘쳐난다. 이유를 굳이 설명 안 해도 되니 접근성이 좋기 때문이다. 그래도 몇 편들자면, <말할 수 없는 비밀(2015)>, <시간 여행자의 아내(2009)>, <미드나잇 인 파리(2012)>, 그리고 <고백 부부>, <터널(OCN)>, <라이프 온 마스>등의 드라마까지 다양하다.

타임슬립, 정말 많다

추천작은 넷플릭스 시리즈 <아웃랜더(2014~)>이다. 아웃랜더 Outlander는 이방인이라는 뜻으로

스코틀랜드어로는 새서내크(Sassenach)라고 하는데 새서내크는 드라마 여주인공인 클레어의 별명이다. 시즌 6까지 진행된 이야기에는 주인공 클레어 중심의 사랑, 전쟁, 그리고 200년 전의 영ㆍ미 역사가 있습니다. 주류가 아닌 아웃사이더-여성, 스코틀랜드, 반군 등의 시각에서 다양한 에피소드가 펼쳐진다. (와이프와 함께 추천하는 최애작)

추천, 추천

-Ste's pick-

아웃랜더(2014~, Outlander, 시즌6까지 진행 중)

| 판타지 | 미국 | Starz, Netix | 출연: 카이트리오나 발페, 샘 휴건, 소피 스켈튼


종군 간호사였던 클레어 랜들이 1945년으로부터 1743년으로 타임슬립 하면서 겪게 되는 일들을 그리는 드라마.



4. 타임루프(Time Loop)

*loop : 고리 모양으로 움직이다
**time loop : 고리처럼 특정한 시간 속에 갇혀 시간을 빙빙 도는 것. 그 순간을 벗어나지 못하고 똑같은 상황이나 사건을 반복해서 마주함.


고리나 원처럼 끝과 끝이 연결되어 특정 시간대가 무한 반복된다는 뜻의 '루프(Loop)'가 메인인 작품을 말한다. 줄여서 그냥 루프 물이라고도 불리기도 한다. 흔히 주인공 및 주변 인물들이 특정 시간대에 갇혀서 똑같은, 비슷한 일을 여러 번 반복해야 하는 상황이 나온다.


타임루프 물의 기원은 확실치 않지만, 일단 신화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언덕 위를 향해 끊임없이 바위를 굴려야만 하는 시시포스 이야기, 끊임없이 전사들이 죽고 싸우기를 반복해야 하는 북유럽 신화의 발할라, 라그나로크. 하지만 이런 것들은 '행위'를 반복할 뿐이지 타임루프 물의 핵심 요건인 '특정 시간대의 반복'에 해당되지 않으므로 타임루프 물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14세기 작품인 《데카메론》에 시시포스 스타일의 저주를 받아 금요일마다 특정한 행동을 되풀이해야 하는 기사에 대한 에피소드가 나오면서 보다 특정 시간대의 반복이란 요소가 강조되기 시작한다.


타임 루프라는 소재를 하나의 장르로 확립하고 널리 알린 작품은 1986년도에 미국에서 출판된 켄 그림우드 <다시 한번 리플레이>라는 소설로 추정된다. 1988년 43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사망한 주인공이 25년 전인 1963년도의 18살 때로 되돌아가 인생을 다시 사는 것을 반복한다는 내용의 소설로 스티븐 킹의 미저리를 제치고 세계 판타지 대상을 수상했다.


그 후에 '독특한' 설정의 루프 물이 등장했는데요. <이프 온리(2004)>, <타임 패러독스(2014)>, <엣지 오브 투모로우(2014)>, <7번째 내가 죽던 날(2017)>, <하루(2017)> 등이 있다.

무한"반복"


픽한 타임루프 물은, "타임루프"를 하나의 독립적인 장르로 자리 잡게 만든, 해럴드 레이미스 감독의 1993년작 영화 <사랑의 블랙홀>(Groundhog Day)이다. 영화의 임팩트가 어찌나 엄청났던지, 원래 성촉절을 의미하는 Groundhog Day라는 단어가 "끝없이 반복되는 좋지 않은 상황"이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을 정도이다. 이 영화는 훗날 재평가되어 명작 반열에 오른다.


타임루프 물 장르를 삶에 대한 철학적 고찰과 완벽하게 엮어냈기 때문에 주저함 없이 추천드린다. 수없이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일상과 삶의 중요성을 깨닫는다는 주제 면에서 특히 그러하다.

장르를 떠나 명작!


-Ste's pick-

사랑의 블랙홀 (Groundhog Day, 1993)

| 코미디 | 미국 | 감독: 해롤드 래미스 | 출연: 빌 머레이, 앤디 맥도웰, 크리스 엘리엇


잘 나가는 기상 캐스터 필 코너스는 매해 펑츄토니에서 열리는 성촉절 취재를 위해 촬영을 나갔다가 희한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취재를 건성으로 끝내고 돌아가려는데, 기상예보에도 없었던 폭설을 만나 발이 묶이게 되고, 다음날 일어났더니 날짜가 하루 지난 것이 아닌 바로 어제의 그날, 그 장소. 꿈인가 생각해도 어제와 너무도 똑같고, 단순한 기시감이라고 하기에도 어제와 너무나 일치하는데. (다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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