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이가 여니에게
생각된다, 확인된다, 판단된다, 예상된다….
이런 ‘된다’는 말을 참 많이 쓰는 이상한 세상입니다. 다 틀린 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말에 없던 말이기 때문입니다. 본디 우리말에는 피동 표현은 있어도 수동 표현은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때렸다와 맞았다, 잡았다와 잡혔다 같은 표현은 괜찮습니다. 하지만 생각한다와 생각된다, 판단한다와 판단된다는 괜찮지 않습니다. 이런 말들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해방 이후에는 영어의 수동태 표현을 그대로 번역해서 쓰면서 우리에게 익숙해졌습니다. 요즘은 교과서에서도 이런 표현을 볼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글쓰기에도 이런 틀린 말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사 본문 중-
일본 문화의 잔재라고 무조건 비판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언아의 사용, 즉 '말과 글'에 대해서는 생각할 지점이 참 많아 보입니다. 아직 우리들의 말과 글 중에 일제강점기에 묻어난 일본식 표현이 참 많습니다. '다만, ~다만'이라는 표현부터, 조사의 남발, 그리고 다 망쳐 놓은 시제의 혼재 등이 그러합니다. 국뽕은 아니지만 조어학적으로 언어학적으로 한국어는 일본어보다 몇 단계 더 진화된 것은 맞다고 생각이 많이 듭니다.
얼룩소 초대 대표님의 SNS 포스팅을 보다가 초등학교 선생님의 '~된다'라는 일본어식 표현에 대한 우려를 보게 되었습니다. 비판 이유는 '피동'과 '수동'의 미묘하지만 엄청난 차이에서 시작합니다. 피동은 능동적 행위의 상대적 동사로 때리다-맞다, 잡다-잡히다 등의 능동의 주체와 피동의 주체를 명시하는 '주어'가 있는 동사가 됩니다. 그러나 '~된다'는 표현에는 '주체-주어'가 모호해집니다. 확인된다, 예상된다, 요구된다 등 '된다'의 남용은 책임과 주체가 될 대상을 가려 버립니다. 일본어 특유의 '주어 없는 표현'이 되어 그들의 '애매모호한' 중립 아닌 중립의 표현이 됩니다.
이런 표현을 가장 많이 발견할 수 있는 곳은 애석하게도 '기사'형식의 신문, 방송, 잡지 등입니다. 기자들은 아주 습관적으로 이 '~된다'의 표현을 씁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아주 유용한 수단일지도 모릅니다. 리포팅 결론의 주체를 애매모호하게 하여 분쟁을 피하고 오보와 가짜 뉴스의 지적에서 아주 조금은 핑계를 만들 수도 있으니까요. 아주 습관적인 '전언(傳言)-말을 옲김'의 대표적인 표현이 되었습니다. 남의 말을 빌어 자기의 주장에 힘을 싣고, 결국 책임의 소재는 두리뭉실 가려 버리는 못된 습관이지요.
"결국 넣고 빼는 일이라면 섭취와 배설 중에 무엇이 더 깨끗한 활동일까 궁금해졌다. 오만 것 다 삼키고 들이마시는 입보다 몸속의 노폐물 빼다 버리는 항문이 더 정결한 활동의 주체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찌 되었는 입은 제대로 간수 못하면 정말 더럽다." -언젠가 끄적인 메모 중-
남의 말은 3일 간다고 하더군요.
주체가 되고 주어가 되는 삶은 말과 글부터 아닐까 싶습니다. '된다'는 '이루다', '완성하다'라는 뜻의 능동적 표현이 본딧말입니다. 특전사의 "안 되면 되게 하라"의 구호처럼 말이지요. 누가? '내가'
-곰탱이 남편의 어여쁜 아내와 나누는 아침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