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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스테파노 Nov 07. 2023

MBTI는 '차별화'가 아니라 그냥 '차별'일지도

알파벳 네 개로 사람을 규정하는 세상

혈액형이 뭐예요?


요즘 대세 유행 MBTI


어느 주말에 '테레비'를 보는데, <놀면 뭐하니?>라는 프로그램에서 MBTI로 웃음을 짜 내려 노력하고 있었다. 'E'와 'I'를 규정하며, 각각의 성향을 속이고 있는 소위 '스파이'를 찾아내는 에피소드를 2주 동안 채워 내보냈다. 결론적으로 2명의 스파이를 잡아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데 비슷한 변명 아닌 변명은 "전에 테스트했을 때와 다르다"였다. 성향이 변한 것인지, 테스트가 잘 못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말이다.


예전에도 ABO형의 혈액 타입으로 성격을 규정하는 일이 제법 오랫동안 유행 아닌 유행이었다. A형은 성격이 소심하다고 하고(전 A형), B형은 성격이 까칠하고, O형은 낙천적이고, AB형은 천재 아니면 바보라고 하는 전 인류가 4가지 성격으로 '분류'된다는 "we are the world"의 발상처럼 보인다. 혈액형이 인종차별의 용도로 시작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면 어떤 생각들이 들까?

차별의 근거가 된


페루의 원주민은 혈액형이 ABO타입으로 모두 O형이다. 그럼 페루 원주민은 낙천적인 성격이 지배적인 동일 성향의 부족일까? 이는 대부분(모두도 아니고)의 포유류가 B형이고, A형은 침팬지나 인간에게 발견되므로 'A형'이 더 진화된 종족이라는 가설에서 시작한다.


인종 우월주의자 독일의 의사들이 주장하건대, 북서유럽에서 태어난 백인은 A형이 많고, 동유럽 출신, 아시아, 아프리카의 유색인종은 B형이 높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A형이 우성 종이라고 우기기에 가까운 주장을 한다. 그리고 일본이 이것을 가져다가 자신들이 다른 아시아 민족보다 A형의 비율이 높아 우수한 종족이라 주장하기까지 이른다. 이것이 일본 사람들의 '혈액형 사랑'의 이유가 되었다.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1/07/2017110701156.html?outputType=amp


당시 독일에 있던 일본 철학 강사 후루카와 다케지는 힐슈펠트의 연구 결과를 본 뒤 주변 사람 319명을 조사해 '혈액에 따른 기질 연구'라는 글을 썼다. 다케지는 "혈액형이 다르면 성격도 다르다"라고 주장했다. 다케지의 글을 기초로 1970년대 초 일본 작가 노미 마사히코는 '혈액형 인간학'이라는 책을 펴냈다. 혈액형에 따라 몸의 구성 물질이 다르고, 이것이 체질과 성격을 결정한다는 비(非) 과학적 내용이었지만 일본에서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이 유행이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현재의 혈액형별 성격에 믿음이 굳어진 것이다.

-기사 본문 중-



MBTI; 성격 검사 뒤의 어두운 진실


최근 MBTI가 유행이다. 아니 제법 된 시간에 시들지 않고 있다. 솔직히 30여 년 전에 이미 접한 테스트가 열풍이니 그야말로 '레트로'가 아닐 수 없다. 시큰둥하게 혈액형 뒷이야기를 꺼내면, 사람들은 말하곤 한다. '혈액형과는 MBTI는 다르지'라고 근거 없는 확신으로 말이다. 이것은 무언가 심리 테스트 같은 빽빽한 지표검사로 이루어지고, 서점에 관련 서적도 있고, 심리학자들도 거든다고 이야기들 한다. 그런데, 이 MBTI도 혈액형과 같이 '차별'을 염두에 둔 가설에서 시작했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취업과 진학의 참고자료로 정당한 일이 될까?


http://naver.me/55na3K9K


단순 아르바이트 일자리뿐만 아니라 Sh수협은행, 아워홈, LS전선 등 규모가 있는 기업들에서도 입사지원 시 MBTI의 결과를 제출하도록 해 논란이 됐다. 일각에서는 'MBTI를 통해 입사 지원자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다면 기업 입장에서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MBTI 결과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어 채용과정에서 활용하는 것은 불공정하고 과학적이지도 않다'는 반발도 나왔다.

-기사 본문 중-


'MBTI'는 그럴듯한 조어가 아니라 만든 사람 이름의 약자다. '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Myers-Briggs-Type Indicator, MBTI)'는 작가 캐서린 쿡 브릭스(Katharine C. Briggs)와 그녀의 딸 이저벨 브릭스 마이어스(Isabel B. Myers)의 이름을 딴 지표의 약어가 이름이 되었다. 본인들 주장에 따르면 카를 융의 초기 분석심리학 모델을 바탕으로 1944년에 개발한 성격 유형 선호 지표로서, 사람의 성격을 16가지의 유형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형식이다.

브릭스-마이어스 모녀, 16유형


문제점은 시작부터 발견된다. MBTI를 개발한 어머니 캐서린 브릭스와 딸 이자벨 마이어스 둘 다 전문적인 심리학자가 아니었다. 어머니는 홈스쿨링을 한 소설가였으며, 딸 이자벨은 리버럴 아츠 컬리지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지표 정립을 위한 통계학조차 정규 교육이 아닌, 필라델피아의 은행원이었던 한 지인에게서 배웠다고 한다. 뭐 학력과 가방끈의 길이가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있다. 그래서 편견을 뒤로하고 더 살펴보기로 한다.


MBTI지표는 본래 제2차 세계 대전의 발발로 인해 개발되었다고 전해진다. 징병제로 인해 발생한 인력 부족 및 총력전으로 인한 군수 공업의 수요 증가로 남성 노동자가 지배적이던 산업계에 여성이 진출하게 되어, 이들이 자신의 성격 유형을 구별하여 각자 적합한 직무를 찾도록 할 목적으로 1944년에 개발되었던 것이다.

(출처: Myers, Isabel Briggs with Peter B. Myers. 1995. 1980. Gifts Differing: Understanding Personality Type. Mountain View, CA: Davies-Black Publishing. ISBN 978-0-89106-074-1.)

취직은 어렵다


여기까지 보면, 기업에서 직무 적정성의 자료로 쓰는데 무리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창시자의 인종차별적 행적(인종차별적 소설 집필)이 드러나면서, 이 지표의 개발도 그 사상으로 인한 '우생학적' 왜곡 지표로 개발되었다는 지적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소설 밖에서도 작가 이자벨의 인종차별을 드러냈다고 전해진다. 이자벨이 사업가 에드워드 N. 헤이에게 쓴 편지에서 인종/민족에 관계없는 평등을 주장한 한 여성을 두고 "미성숙하고 성격유형적으로 덜 발달했다"라고 조롱하면서, "까맣고 틀림없이 열등한 인종은 사람의 정신에서 제압당하고 열등하다고 여겨지는 부분을 가리키는 전형적인 상징이다"라고 쓴 일화가 유명하다.


미국에서도 MBTI가 큰 인기를 끌며 고용 시장에서까지 사용되는 것은 한국보다 먼저였다. 이런 내용은 일부 언론이나 온라인에서만 알음알음 다뤄져 오다가, 2021년 미국에서 다큐멘터리 <페르소나: 성격 검사 뒤에 숨겨진 어두운 진실(Persona: The Dark Truth Behind Personality Tests)>이 공개되며 대중에게 알려졌다. 이 다큐는 MBTI뿐만 아니라 성격 검사 전반의 인종차별, 성차별, 계층 차별 문제에 대해 다룬다고 하니 참고해 볼만하다.

https://m.imdb.com/title/tt14173880/mediaviewer/rm1659619585/


Persona: The Dark Truth Behind Personality Tests (2021)


알파벳 네 개로 사람을 규정하는 세상


인종 차별의 방법과 여성 인력의 전쟁 수요 대체를 위한 지표라는 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다. 그리고, 지표가 상업적으로 성행되면서 큰 부를 이룬 창시자의 일가가 재단을 만들고 그 곁에 각종 이해관계와 이익단체들이 엮이면서 비판에 대한 방어를 적극적으로 하기에, 매체와 연구에 인용이 되면서 '정설의 가면'을 쓴 것처럼 받아들여지기 십상이 되었다.


네 개의 알파벳


창시자가 비전공자이고, 문답자가 셀프 작성하는 '자기 보고형 테스트'라는 한계, 카를 융과 니체의 검증되지 않은 비과학적 논증 기반, 표준편차가 너무 커 대부분이 '예외'가 되는 통계적 허점을 뒤로하고서라도 MBTI로 사람의 성격과 성향, 그리고 인성과 직무 역량까지 평가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될 여지가 깊다.


우선 '구별'과 '구분'의 기준이 인간 본연의 양태라면 '차별'이 될 수 있다. 테스트와 지표의 적정성을 떠나 성격과 성향의 구분으로 차등을 두는 것은, 찬부적인 양태에 대한 차별이 된다. 피부색ㆍ민족ㆍ성별ㆍ성적 취향 같은 '양태'의 차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구별은 차별을 위한 초석이다.", "차별에 대해 계속 배워야 하는 이유"를 이야기한 정하나 님의 글을 참고해 보면 좋을 것 같다.

https://alook.so/posts/XBtXd2Y


구별은 차별보다는 마일드한, 소극적인 차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구분을 짓는다는 것 자체가 차별을 하기 이전의 단계입니다. 또한, 심하지 않은 것 같지만 엄연한 차별이라고 생각합니다. -본문 중-


MBTI보다 정교하다는 '5 요인 이론(Big 5)' 또는 '인지 정동적 체제 모형(CAPS)'  과학적으로 더욱 건전한 이론이라고 해서 실생활의 활용도와는 무관하기 일쑤다. 이론의 적정성을 떠나 자본이 투입된 마케팅과 홍보로 시장과 대중을 사로 잡기는 너무 쉬운 세상이기 때문이다.


'차별' 같은 다소 남의 이야기 같은 주제에 공감되지 않는다면, 자존감과 자존심에 대해 생각해 보면 어떨까 싶다. 알파벳 4자로 이루어진 16가지의 성격 유형 지표로 자신을 규정하는 것이 자존심 상하는 일이 되지 않을까? 물론, 노래 가사처럼 어쩌면 우리는 모두 '외로운 사람들'이라 어딘가에 소속하고 부류를 이루고 싶은 '동질감 확보'의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일상을, 인생을, 그것들을 뒷받침할 직장과 직업 선택의 '꼬리표'로 작용한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MBTI 창시자가 이론의 본류라고 주장하는 심리학자 칼 융이 이야기한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면, 세상이 당신이 누구인지 정해준다."

-칼 융-
스스로 규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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