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eping Tom'의 유래
엊그제 방문한 병원에서 초콜릿이 묻은 막대 과자를 내밀어 준다. 제법 값나가는 것 같은 포장에 아내와 얼굴을 마주 보다 이내 웃었다. 남녀 중 누가 주는 날인지 가물거리는 '상술의 날', 그날이 온 것이다. 그래서 빼빼로데이라며 초콜릿 막대과자 사진이 SNS 타임라인에 자주 출몰하는 덕인지, 지난 시절 출장길에 늘 부서원들에게 조공했던 고디바 초콜릿이 떠 올랐다. 그리고 그 브랜드명인 '고디바-고다이바'를 기억해 본다.
고다이바 부인(Lady Godiva)은 고대(10~11C) 머시아 왕국(현재의 코번트리)의 백작부인으로 전해진다. 역사 기술이 아니라 ‘전설’로 내려오는 이야기는, 남편인 레프릭 영주의 무리한 세금 징수로 인해 백성들이 고통받자, 그의 부인인 고다이바는 세금을 감면해 줄 것을 간청하였다고 한다. 이에 영주는 부인에게 "벗은 몸으로 마을을 한 바퀴 돌면 생각해 보겠다"라고 조롱하였다. 고심하던 고다이바는 영주의 조롱 반 농담 반의 제의를 받아들이기로 하였고, 이 소식을 듣게 된 마을 사람들은 부인이 마을을 돌 때, 그녀의 깊은 결심을 헤아려 아무도 내다보지 않기로 하였다고 한다.
사실 이 이야기는 보다 깊은 콘텍스트가 있는데, 영주는 데인인(바이킹 후예)으로 알려져 있고, 고다이바 부인은 토착민인 앵글로 색슨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이야기의 배경이 회자되는 것은 잉글랜드 토착 민족의 척박한 지난날에 대한 이야기로 남겨서 그들의 영토 투쟁의 전설로 여기어 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도 한다. 역사의 중의를 떠나 고디바 부인의 쉽지 않은 결심이 일반 백성에게 울림을 준 것은 분명해 보인다.
여기에서 파생된 말이 관음증(Peeping tom)이라는 말인데, 누구도 개인의 희생으로 민중의 고통을 덜으려는 레이디 고다이바의 모습을 보지 않았지만, 딱 한 사람 양복쟁이 ‘톰’만 훔쳐보다 하늘의 벌을 받아 장님이 되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톰(Tom)이 훔쳐보았다(peep)라는 사건ㆍ사실이 바로 어원이 된 것이다.
타인의 수치와 괴로움은 이따금 구경거리가 되곤 한다. 사건의 당사자 외에 누구도 거들어서는 안 될 일인데도 말이다. 이런 일들에 거들어 무언가를 목적하는 단체나 무리들도 마찬가지다. 가끔 자신들이 확성기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들여다 보기를 진심으로 부탁하고 싶다. 자신들의 경험, 주장, 추측으로 훈수 둘 일이 아니다. 개인에게 어마 어마한 일들을 누가 감히 훈수를 두겠는가.
당사자가 아닌 제삼자의 이야기는 늘 위험하기 마련이다. 타인 주장의 배척으로 이유로 삼는 ‘경험’, ‘주장’, ‘추측’은 반박의 변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사실보다 관념이 앞선 주장에는 늘 나는 되고 너는 안돼 식의 억지가 섞이기 마련이다.
요즘 언뜻 이해가 어려운 사건과 사고의 보도가 연일 뜨겁다. 언뜻 들어 떠올릴 개념조차 없는 말들이 넘쳐 난다. 그 뜨거움을 유지하는 이유는 변죽들의 거들먹 거림이 주요한 역할을 하는지도 모른다. 이념과 주장 이전에 진실과 상식이 작동해야 제대로 된 세상이 유지될 것이다. 관념과 이념 뒤에 늘 사건, 사고의 진실은 숨어 버린다. 합리적 의심을 하는 ‘고의적 비판자’는 진보의 변절자로 손가락질받곤 한다.
누군가 '정치적 관음증'대한 예로 든 ‘레이디 고다이바’에 대한 인용은 생뚱맞았다. 엿보는 것과 견주어 판단하는 것은 참 다른데도 말이다. 그럼에도 정치관, 세계관, 가치관은 견주어 판단하는 것이 맞지만, 개인의 병력, 가족 구성, 그리고 외모의 변천사에 대한 것은 엿보기가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동의하는 맥락은 있다. 지금이 ‘관음의 세상’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스스로 그 대상이 되어 돈을 버는 '관찰 예능'같은 프로그램이 대세이고, 실체 불분명한 빈곤의 생활을 연출하여 선의를 요구하는 '기부 마케팅'도 그러하다. 엿보지 말고 제대로 볼 것은 보아야 하는데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