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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스테파노 Nov 24. 2023

‘빨리 감기’ 시대에 영화를 읽는다는 것은

보물찾기 같은 영화 리뷰 홍수의 시대

영화리뷰를 본격적으로 하고자 책을 준비하고 있다. 그간 나름으로 밀도 있게 써 온 리뷰들이 250편 정도 되는데, 이들 중 서른여섯 편을 주제 기획으로 묶어 책 한 권 분량으로 출판 지원 공모를 해 놓았다. 10년 만에 출간을 준비하면서 주위 사람들이 ‘영화 책’을 쓰는 것에 우려를 보냈다. 생각보다 잘 안 팔린다는 이유였다. 한국의 도서와 글 시장에서 ‘비평’은 인기 없는 주제다. 미국의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항상 들어 있는 것이 ‘서평물’들이듯, 미국은 ‘북리뷰’가 큰 시장을 이룬 지 오래다. 그와 함께 제법 심도 있고 풍성한 영화리뷰와 비평 사이트와 잡지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반면 한국은 정반대다. 영화에 대한 글이 글자가 그림보다 많으면 일단 읽히기 쉽지 않다.


한국에서 ‘영화리뷰’라는 콘텐츠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블로그 리뷰와 유튜브 리뷰다. 블로그 리뷰의 대부분은 사실 ‘평’이 없는 그저 ‘광고’ 수준이다. 여러 스틸컷을 나열하여 글로 썼지만 혀 짧은 목소리가 연상되는 단문으로 줄거리와 등장인물 정도를 요약하는 것이 전부다. 일종의 팸플릿을 블로깅 해야 했다고 할까. 그리고 더 심각한 것은 유튜브다. 유튜브에서 영화 관련 콘텐츠는 대부분이 ‘줄거리 요약’이다. 짧게는 10분에서 길게는 1시간 넘게 영화 한 편을 진행 순서대로 ‘줄여서’ 보여 준다. 그것이 전부다. 초창기 유튜브에서는 ‘오롯한 관점’의 리뷰들이 제법 있었는데 코로나 팬데믹을 거쳐 가면서 온통 ‘줄거리 요약’으로 덮여 버렸다. 솔직히 개탄스럽다.



‘빨리 감기’ 세대의 문화 ‘소비’


이미지 출처=알라딘


작년에 흥미로운 주제의 책 한 권이 소개되었다. 2021년 일본에서 한 칼럼이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DVD 잡지 편집장을 거쳐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이나다 도요시가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의 출현이 시사하는 무서운 미래>라는 칼럼이었다. 칼럼니스트는 ‘왜 젊은 세대들은 영화나 영상 콘텐츠를 빨리 감기로 보는 것일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하여 다방면의 조사, 그리고 그간의 경험으로 유추한 논리를 전개했다. 일본 내의 반응은 대단했다. 긍정과 부정, 동조와 비판, 공감과 반대의 양가 반응이었다.


지금 세대와 세태에 대한 명쾌한 지적이라는 반응이 있었는가 하면, 왜 시청 방식을 강요하냐는 의견도 제법 되었다. 각자의 관점에서 품고 있었던 불편함을 꺼내기 시작하였다. 이에 이나다 도요시는 젊은 세대의 대표 부류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하고 각계 전문가와 포커스 그룹에 대한 심층 인터뷰를 보충하여 원고를 완성하였다. 그리고 출간된 책은 일본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빨리 감기’는 매우 개인적인 행태다. 그리고 사회적인 이슈에 비하여 매우 작은 현상이다. 그런데도 일본 사회에서는 제법 큰 반향을 일으킨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빨리 감아 보는 행태가 단순히 현상이 아니라 거대한 사회적 변화를 담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영화를 본다는 말을 일상에서 어떻게 표현하는지 생각해 보자. ‘영화 감상’이라는 말은 정말 꼰대 아저씨들의 이력서 한 편에 적어 내는 취미일 뿐이다. 요즘 세대들은 ‘콘텐츠 소비’라고 표현한다.


영화나 연극, 혹은 영상 ‘작품’이 한 조각이 되는 ‘콘텐츠’로 대치되고, ‘감상’이라는 제법 무게 잡은 말이 ‘소비’라는 일상의 것으로 치환되었다. 세대 차이와 분간을 강요하는 미디어 언론의 생태계를 탓하지 않아도 이런 사회적 현상에서 이미 세대의 특성은 나뉜다. 그 나뉜 특성을 솔직하게 대 놓고 마주하는 것이 일본의 사회이고, 한국은 눈치 보며 주저하는 경향이 있는 차이만 존재한다. 그래서 이 책이 한국에서 생각보다 회자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본래 영화는 영화관이라는 장소에서 비싼 영사기로 상대적으로 긴 시간 동안 제작한 영상물을 ‘보여주는’ 수동적 콘텐츠였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변하는 여러 일상의 변모가 그 콘텐츠를 능동적으로 ‘찾아보는’ 방법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텔레비전의 방송도 마찬가지다 IPTV나 OTT의 기능을 통해 건너뛰거나 빨리 감아 보는 일은 일상이 되었다. 이를 뛰어넘어 영화를 잘게 편집해 10~20분 내외의 요약 콘텐츠로 만들어 소비하는 일은 점차 늘어났다. 이런 현상, 이런 변화가 일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의 저자 이나다 도요시는 여러 이유를 유추했다. 넘치도록 생산되는 콘텐츠의 공급 과잉이 우선적인 이유다. 그리고 심리적이고 사회적인 이유로 시간에 대한 이기주의자들이 급속도로 늘었다. 달리 말해 ‘시간 가성비’를 따지는 사람들의 증가다. 무엇보다 중요한 요인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다.


'빨라 감기'가 유행하는 이유 (출처=뉴스1)


세상의 콘텐츠는 사실 ‘헐값’이 된 지 오래다. 창작자나 제작자가 헐값의 대우를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소비가 확산이 되면서 공급 수요의 법칙에 따라 무한 공급에 가까운 생태계가 조성되어 있다. 한 달에 만 원이면 평생 보아도 다 볼 수 없는 콘텐츠를 스트리밍 하는 OTT를 구독할 수 있다. ‘가성비’는 ‘품질’의 문제가 아닌 것이 되어 버렸다. 들인 시간만큼의 효율을 어떻게 내는가의 문제가 되었다. 저자는 이런 현상이 ‘성공하는 사람들의 00가지 비법’ 같은 자기 계발서가 잘 팔리는 현상과 맞닿아 있다고 서술한다. 남들보다 ‘빠르게 정보를 취득’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 버렸다. 깊게 들어가기보다 풍성하고 많이 아는 척을 하는 것이 중요한 덕목이 되었다. 자신의 것으로 체득이 되든지 상관없이 말이다.


그래서, 영화나 드라마의 콘텐츠의 미학적 질도 저하되는 원인이 된다. 예를 들어서 ‘친절한 대화’가 넘친다. 상황이나 심적 갈등을 모두 대화로 내뱉어 버린다. 그것이 모자라면 내레이션으로 친절하게 상황 설명해 준다. 작가들의 역량이라고 생각되었지만, 사실은 대사가 없는 부분을 요즘 콘텐츠 소비자들이 건너뛴다는 것을 파악한 콘텐츠 기획자들의 대비 방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새로운 세대는 효율을 강조하는 사회 속에서 일종의 ‘묘수’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문을 나서면 모든 순간이 경쟁으로 느껴지기에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증폭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심리적이고 사회적인 압박이 새로운 행태를 만들어냈다. 바로 '빨리 감기(배속)', '건너뛰기(스킵)', '패스트무비(몰아보기)' 현상이다.


비단 일본만의 현상이 아니다. 우리 사회도 비슷하다. 영화관에서 스마트폰을 켜고 메시지를 확인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영화관에서 부동자세로 2시간을 앉아 있는 것이 고역이 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인내심 부족이 아니다. ‘시간의 이기주의자’는 절대 게으른 사람들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들의 시간을 빈틈과 완충 지역 없이 빡빡하게 설계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이유로 유튜브의 영상은 20분이 마지노선이 되었다. 쇼츠나 릴스가 유행하는 것은 오래된 이야기다. 10편 에피소드를 20분 만에 요약하는 영상은 수백만 조회수를 보여 준다. ‘영화리뷰’라는 간판을 단 인기 블로그는 어떤가. 이런 세태의 가장 경계해야 할 점은 ‘가짜의 범람’이다. 가짜와 복제가 판을 친다. 글도 마찬가지다. 이곳 플랫폼의 글들은 제대로 검수가 이루어지고 있을까? 베껴 써도 부끄럼 없는 시대가 되어선 곤란하다.


미안하지만 20대 이하의 젊은 세대일수록 이런 현상을 ‘보통’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 사실이 그렇다. 그렇다고 ‘너희들이 문제야’라고만 할 수 없다. 사회적인 두려움은 일종의 ‘공갈’에서 시작된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도 전에 언론과 어른들은 ‘세상 힘들다’며 겁주기 일쑤다. 일종의 ‘심신증’처럼 진단되지 않은 통증이 찾아온다. 무언가 급하게 쫓기게 되고, 시간을 허투루 쓰면 패배자가 될 것만 같다. 이것에서 ‘빨리 감기’로 대표되는 ‘콘텐츠 소비문화’가 나타나지 않았을까 싶다. 안타깝지만 이 현상과 변화는 더욱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자고로 ‘트렌드’라는 것은 이런 작은 현상이 사회적 변화를 일으키는 기폭제를 말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흰소리 말고.



극장이 사라지는 시대, 영화도 사라질까


영화 평론가 오동진 선생에 따르면, 향후 1~2년간, 길게는 3~4년간 한국 극장가는 다시 외화의 시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상영 대기에 놓인 한국 영화가 많지 않다. 코로나 여파로 기획과 제작이 중단되다시피 하였기 때문이다. 현재 상황이라면 2024년에 이르면 거의 모든 한국 영화가 소진되어 버린다. 요즘 제작환경으로 볼 때 기획, 제작, 배급까지 보통 3~4년이 걸린다. 작년부터 제작이 전무한 현실을 볼 때, 2025~2026년은 한국 영화의 황폐기가 찾아올 것으로 예상된다. 21세기가 되면서 한국 영화는 극장 산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성패의 요인이 되었다. 이 공백을 채우기 위해서는 외화가 극장을 채워야 한다. 종전까지는 대체 순환 방식이 통했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했듯이 ‘콘텐츠 소비 시대’가 도래하여 그 예측이 쉽지 않다.


그래프=박 스테파노


영화 산업은 곧 극장 산업과 등치가 된 지난날이 있었다. 그 당시에 규정된 오래된 수익에 대한 배분 법칙이 아직도 작용한다. 그것을 보통 ‘배분율’이라고 이야기하는데, 극장과 제작, 배급으로 양분하여 4:6(외화) 혹은 5:5(방화)로 입장 수익을 나누어 갖는다. 보통 극장 입장으로 수익이 생기면 부가가치세와 영화 발전기금을 제외하고 극장과 제작 측이 분율대로 45일 이내에 정산한다. 그리고 제작사는 배급수수료를 지불하고 투자자와 제작자가 사전에 합의한 비율대로 정산한다.


한국의 평균적인 투자:제작의 비율은 6:4로 조사된 바가 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영화 제작비용 대비 손익분기를 가늠할 수 있는데, 보통 50억의 제작비가 든 경우 100만 명의 관객이 들어야 손익이 분기점을 맞이한다. 100만이 들어야 적자가 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마케팅이나 기타 비용을 고려하면 100억이면 300만 이상이 들어야 산업으로서의 수익이 의미가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아래 표를 참조하면 이해가 쉽다. 출처=Tistory 블로그 ‘goodline')


출처=goodline.tistory.com


한국 영화의 공급이 줄어든 이유는 이 분배율에 근거한다. 작년 한 해 제작이 고사가 된 만큼, 외화가 버티어 주어야 하는데, 블록버스터가 지지대가 되어 주면서 각종 ‘작은 영화’가 명맥을 유지하는 대체 순환이 가능해야 극장 산업이 심폐 소생될 희망을 품는다. 그러나, 이론적인 이야기가 이렇지만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인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예술 영화나 독립 영화들이 활성화되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지만, 콘텐츠의 소비 형태는 반대로 가고 있다. 친절하게 설명되지 않는 작품들을 소비한 심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영화는 제작과 개봉을 위해 투여되는 많은 자원과 노력, 시간 등 유무형의 비용에 비해 비교적 짧은 기간 내에 흥행 결과가 결정되는 높은 리스크를 갖고 있다. 또한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불확실성도 높다. 이에 따라 많은 영화산업의 관계자들은 이러한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고 리스크를 감소시키는 방법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 왔다. 그런 내부의 고민은 확장되지 않았고, 오히려 소비자들의 소비 형태와 기술의 발전으로 외부에서 큰 변화를 해오고 있다. 바로 OTT의 등장, IPTV VOD의 확산이다.


2023년 현재 입장 수익 (출처=영화관 입장권 통합 전상망 KOBIS)


영화 전문가들은 한국 영화가 대목이었던 작년 여름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또 다른 이유로 '외적 요인'을 언급하기도 했다. '코로나 대유행'의 긴 터널을 지나 간신히 막을 올렸는데 고물가와 경기침체 가른 또 다른 장벽을 마주했다. 자본은 불경기에 쉽게 수익을 창출하고 예측할 수 있는 쪽으로 쏠리기 마련이다. 다른 산업이나 분야로의 자본이동도 있지만, 콘텐츠 산업계에서의 지형 재편성도 급격하게 일어나고 있다. 극장가가 얼어붙어 있을 동안 영상 콘텐츠 시장은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등 새로운 경쟁 플랫폼의 등장으로 '구조적 변화'를 거듭하고 있었다. 티켓값 인상,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약진 등 시장 구조 차원의 악재가 겹치면서 영화계는 안팎으로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실제 영화 티켓은 지난 코로나 팬데믹 2년 동안 25% 가까이 인상되었다. 현재 주말 일반관 기준 1만 5천 원 정도다. 솔직히 이 금액이 높은지에 대해서는 생각이 여러 가지다. 그러나 지갑에서 지출하는 소비자의 체감은 높을 수밖에 없다. 그 사이 OTT 플랫폼은 성장을 거듭하고 있었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발간한 '2021 한류 백서'에 따르면, 국내 OTT 시장은 2020년 약 9,935억 원 규모에서 2025년 1조 9,104억 원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되었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OTT의 콘텐츠 제작은 여러 형태로 제작되고 있다. 그리고 그 수익의 배분도 제작하는 주체에게 조금 더 이익이 되는 구조로 설계되었다. 물론 그 제작에 거대 플랫폼 자본이 침투된다는 위협은 존재하지만, 지금까지 손익계산표 상으로 극장보다 OTT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이득이다. 이제 사람들이 영상 콘텐츠를 보기 위해서 극장으로 가는 경향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극장의 관객이었던 대상이 집구석의 콘텐츠로 변모한 것이다. 통신사들도 해외 유명 OTT 플랫폼과 독점 계약을 추진하며 출혈 경쟁을 하기도 했다. 이전 넷플릭스에 이어 디즈니 플러스를 독점 계약한 LG U+의 경우 플랫폼에 90%의 수익을 돌려주고 있다. 다른 국내 콘텐츠나 방송국과는 5:5의 계약을 유지하면서 말이다.


콘텐츠 수익 모델 비교 (출처=한화투자등권 리서치센터)


단지 산업의 문제로 그치지 않을지도 모른다. 콘텐츠, 즉 작품의 질적인 저하의 우려가 감지된다. 우선 러닝 타임을 1시간 40분, 즉 100분 이내로 가두어 제작한다. 이야기의 조밀과 영상미, 그리고 은유적 서사보다는 고화질 영상에 초점을 맞춘 제작 생태계가 조성되고 있다. 새로운 세대의 ‘빨리 감기’ 문화와 플랫폼 자본의 수익 극대화라는 이해관계가 맞물려, 이전의 예술 영화나 깊이 있는 스토리 텔링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 이에 대한 반응은 ‘감상의 비평’이 아닌 ‘소비의 리뷰’로 그치고, 이 소비에 대한 경험 공유가 대세인 양 트렌드로 자리 잡을지도 모른다. 이제 책을 읽기 힘들어하는 경향을 넘어 영상을 보고 사유하는 것도 버거워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이런 지점에 대한 고민과 공론이 필요한 때다.



영화와 드라마를 탐색하는 일은 변화한다


영화 ‘리뷰어’는 비평가, 평론가와는 조금 다른 영역의 글쓰기와 말하기를 하는 부류다. 앞서 말한 트렌드의 변화가 긍정적인 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리뷰어’가 생산해 내는 글과 말들이 ‘Breaking News(속보)’ 같은 단발성 소개는 지양될 가능성이 높다. 아무 의미가 없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블로그와 유튜브가 ‘클릭’을 유도하여 일종의 광고 수익을 올리는 ‘재테크의 기법’으로 변종이 되는 순간 영화의 리뷰는 광고 팸플릿이 되어야만 했다. 온통 ‘신작 뉴스’의 홍수였다. 이 피로감에서 벗어날 기회가 올 수도 있다.


이제 영화 리뷰어는 신작 소개보다 숨겨진 영화들을 찾아 소개하는 일이 주된 활동이 돼야 한다. 오동진 평론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트래져 헌터’가 되어야 한다. 극장은 사라져서 집중되는 ‘히트작’의 의미가 유명무실해졌다. 반면에 OTT 플랫폼의 성장으로 너무나도 많은 작품이 쏟아지고 있다. 극장에 걸린 영화들은 찾아보지 않으면 밀려난다. 마치 글쓰기 플랫폼의 글들이 쓸려 나가듯이 말이다. 여기에 더해 ‘빨리 보기 세대’들이 콘텐츠 소비자의 주축으로 등장하면서, 그들의 고뇌인 ‘시간 가성비’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보완해 주어야 한다. 극장에 걸리든 OTT에만 나오든 상관없이 보물을 찾아 소개해야 한다.


작품성이 좋은 콘텐츠, 지금 시대에 의미 있는 콘텐츠, 남들은 모르는 오롯한 재미가 있는 콘텐츠를 발굴해서 자신의 글과 말로 전시해야 한다. 이것이 지금 시대 영화 리뷰어들의 생존 방법이자 책무가 될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지금 극장에 막 개봉해 흥행하는 <스즈메의 문단속>, 넷플릭스의 <더 글로리>, <피지컬 100>을 이야기하거나, 조금 들어가 <다음 소희> 같은 작품을 주목할 때, 넷플릭스에서 리마스터링 해서 하는 <감각의 제국> 같은 작품을 소개하는 것이다. 이것이 오히려 리뷰어의 차별된 경쟁력이 된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48073


과도한 섹스 장면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여태껏 불멸의 영화로 남아 있는 것은 일본 내 군국주의적 정서를 다룬 오시마 나기사식 표현 방법, 그 시각 때문이다. 1930년대는 일본이 만주사변에서 중일 전쟁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특히 1936년이라면 중일 전쟁 한 해 전이다. 나라는 온통 징병의 군홧발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고 의회와 정치권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군부 권력이 점차 모든 것을 압박하던 시기였다. 일부 지식인들은 오히려 군부 권력에 편승해 광기의 프로파간다를 일삼았다. 이들은 언론과 학계를 장악하고 자신들의 권력욕을 확산시킬 계획을 차근차근 실현시켜 나갔다. 군부 자체도 통제파와 황제파가 대립해 피의 권력다툼을 벌였다. 황제파 중 일부 청년 위관 조직이 일으킨, 일명 5·15 사건 역시 1936년 벌어진 일이었다. 이 쿠데타는 무위로 끝났지만 이미 일본 군부는 정규군인 육군과 별개로 관동군(만주군)이라는 거대한 군사조직의 검은 야심이 일본과 전 세계에 위협적인 존재가 돼 버린 상태였다.

-칼럼 본문 중-


이 영화를 처음 접하는 분들은 파격적인 내용과 충격적인 묘사에 깜짝 놀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영화 비평계는 물론 문화적인 측면에서 찬사를 받은 영화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가학적인 성애의 장면과 과도한 섹스 장면에만 중심을 두어 감상하는 일은 드물다. 영화로서 일본의 가장 아픈 부분이자 역사인 군국주의적 정서를 비판하고 있다. 일본의 반군국주의적 영화는 소심하다. 직설적인 저항과 비판은 드물다. 빙빙 둘러 이야기하거나 예술적 묘사로 사회에 만연한 정서에 대해 비판한다.


<감각의 제국>을 만든 오시마 나기사도 반파시즘에 대한 비판으로 당시 무기력했던 사회적인 통감을 표현했다고 한다. 일본은 이처럼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는 것에 매우 인색하고 소극적이다. 독일의 통렬한 반성과 그로 인한 여러 영화나 소설과는 다른 양상이다. 이 지점이 지금 ‘한일 외교 문제’를 조망하는 또 다른 시각이 된다.


지금의 영화 소개는 이런 방향이어야 한다. <더 글로리>를 사람이 많이 보아서 ‘학폭에 대한 경종’을 떠 올린다는 이야기는 사실 시쳇말이다. 드라마 어디에 학교 폭력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 있었던가? 어느 지점에서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들여다볼 수 있는가? 아니면 적어도 오시마 나기사식의 우회적이고 소극적인 몸부림이라도 있었을까? 그저 유행이었다. 그렇다면, 반대의 경우를 이야기해 보아야 한다. 진짜 학교 폭력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다면, <우아한 거짓말>, <한공주>, 그리고 <파수꾼> 같은 작품을 자신의 블로그에 내보이며, 지금의 세태와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출처=Fanon Wiki


이런 세태가 비단 영화만의 트렌드는 아닐 것이다. ‘글쓰기’가 유행이라는 데 글쓰기는 어떤가? 글도 하나의 콘텐츠라 ‘소비’에 목적이 있다 보면 결국 대중의 니즈라는 것이 트렌드에 등치 할 것이라는 착각을 하기 쉽다. 그러나, 책이나 글의 가치는 세상의 사유와 가치 판단을 선도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의 사건들을 나열하여 ‘글쓰기 레이스’를 펼치는 일은 근시안적이고 소극적인 맥락 형성이다. 무릇 언론이고 정론이 되고자 한다면 과감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본연의 논조로 ‘주장’과 ‘논리’를 먼저 제시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미디어 언론 곳곳에 숨어 있는 보물 같은 이야기와 토픽을 발굴하여 진정한 공론의 맥락을 형성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다시 영화를 좀 더 살펴보고, 함께 나누는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하는 글이 길어졌다. 아마도 영화리뷰에 대한 책을 퇴고하는 과정에서 이 방면의 에너지가 고갈된 것 같다. 좀 더 마음을 가다듬고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세상을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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