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힘겹지만
똘스또이는 소설 <부활>의 한 대목에서 이야기했습니다.
인간이란 흐르는 강물과 같다.
여기까지 보면 흔히 듣던 '장강의 비유'처럼 들립니다. 흐르는 강물을 애써 거스르지 말라는 뻔한 타이름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부활>을 읽어 보았다면 똘스또이의 강물의 비유는 참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똘스또이는 인생이 아닌 인간 그 자체를 강물에 빗대어 이야기합니다. 강물은 좁은 목에서는 성급하게 흘러내리지만, 넓은 강바닥에서는 급할 것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윤슬을 뽐내곤 합니다. 어떤 강은 빙하의 기운을 담아 담근 손발이 얼어붙도록 차디 차고, 어느 강물은 미지근한 미온으로 몸을 맡긴 자에게 안도를 줍니다.
동남아의 탁한 강물은 구정물이 아니고 그 안의 생태를 지키는 점토의 보호막이 되고, 빙하수의 맑고 맑은 물에서는 오히려 서식하는 수생은 비교적 곤란하기 마련입니다. 그 물이 차던지 뜨겁던지, 탁하던지 맑던지 상관없이 모두 강물은 강물입니다. 인간도 마찬가지로 저마다의 성질을 담은 맹아를 품고 살기 마련이지요.
이런 의미에서 서로를 견주어 누가 더 넘치고 모자란 지, 누가 태어나면서부터 선한지, 누가 악한지를 따지는 일은 무의미합니다. 그저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하는가 그렇지 않는가의 문제만 남을 뿐입니다. 성악설이든 성선설이든 그 존재함이 인간일 뿐입니다.
좋지 않은 부분을 최대한 줄이고 그나마 나은 모습을 굳게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강물의 소명이 아닐까요.
하루하루 힘겹습니다.
어제보다 좋은 사람이 되기는 힘든 날들의 연속입니다. 남은 희망과 바람이 있다면 조금 더 좋은 사람이었으면 하고 바랄 뿐입니다. 그 시간이 얼마가 될지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