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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로운 Oct 08. 2020

퇴사를 생각하는 이 시대의 딜레마

지금요? 정말요? 감히 그래도 될까요?

퇴사가 하고 싶어요


 참으로 배부르고 못된 고민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코로나 때문에 일자리를 잃고 있는 이 상황에서, 위태위태하게 보존하고 있는 자리를 때려치우겠다는 소리를 하다니. 퇴사 이후의 조급함, 적이 있을 때 이직하는 게 좋다는 말, 지금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이직하라는 수많은 조언과 우려들이 있지만 나는 사실 누군가의 조언을 마음속 깊이 받아들이는 편이 아니다. 어차피 내 인생, 당연한 것도 겪어 보지 않고는 모른다. 당신의 인생과 나의 인생이 다르고, 우리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우주먼지에 불과하니까. 


 이제 3년 차로 접어든 직장인인 나의 상태는 무례하게도 권태기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누구나 이맘때쯤 회의감에 빠진다고 하지 않나. 세상에서 제일 끔찍한 월요일 출근을 견뎌내고, 집에 가고 싶다를 무음으로 외치며 컴퓨터 앞에서 시간을 보낸다. 커다란 돌을 놓고 이건 바퀴야! 굴려봐! 하면 네 바퀴군요... 하고 낑낑대며 굴리는 기분으로 일한다. 처음에는 내 의견을 내놓는 것 자체가 두근두근했던 미팅들이 이제는 저건 또 무슨 소리람, 같은 말 좀 그만 했으면, 그래서 저 일은 또 누가 맡는 거지... 하는 지겨움으로 바뀌어버린 걸 체감하고 있으니. 혹자는 우울증에 공황장애까지 왔으면 진즉에 때려치웠어야 하는 회사라는데, 그 말을 들어버리고 나니 마음이 더욱더 즐겁지 않다. 



이유는 충분하다

 애초에 별다른 야망이나 목표 없이 입사한 나였다. 그런데 웬걸, 새로 맡은 일이 하는 족족 성과를 냈고 일하는 것 자체가 재미있어서 오랜 시간 들떠있었다. 그러나 코로나라는 쓰나미 속에 수많은 것들이 변했다. 내부 관계들이 어긋났고, 잘해왔을 때는 없었던 경쟁과 실적 압박이 현실화되어 매일매일을 괴롭게 만들었다. 배울 것, 할 수 있는 것으로 가득하던 회사의 옛 모습이 있었는데, 지금은 모르겠다. 무엇보다도 재미가 없었다. 직원들이 떠나고, 남은 사람들이 싫어지고, 성취감도 없고, 연봉도 동결되고, 이 시국에 잘 되는 것이 없는데 상부에서는 몰아붙이기만 하니 당연히 회사가 싫어질 수밖에. 


 여행이라는 콘텐츠가 좋아서 일단 이 판에 들어왔지만, 과연 앞으로 언제쯤 안전하게 해외여행을 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앞으로도 여행 쪽으로 내 미래를 생각했는데, 재해와 역병이라는 바람 앞 호롱불 같은 업계의 민낯을 보고 말았다. 어떤 여행사 사장님은 사무실 뒤편에서 회를 포장 판매한다고 했다. 어떤 여행사는 휴직으로 돌린 후 전 직원이 으쌰 으쌰 하며 개발을 배운다고 했다. 기존에 있던 국내 여행사들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지만 뜯어보면 효도여행이나 수학여행에 가까운 상품들이다. LCC를 타고 날아간 치앙마이에서 저렴한 자유를 만끽하던 젊은 친구들에게 먹힐 리가 없다. 그 여행사들 마저도 갑자기 터지는 코로나 재확산에 신음하고 있다. 이 업계에서 내 미래에 대한 환상이 깨지면서 정강이까지만 담갔던 발을 빠르게 빼야겠다 싶었다. 


 나라는 사람의 성격으로 보았을 때는 어떤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에는 거부감이 먼저 든다. 미팅 장소 앞에서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는다. 눈 딱 감고 다녀오자는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이다. 스몰토크에 약하면서 비즈니스 관계의 사람에게 넉살을 부리는 것이 어려운 나에게 영업일은 힘들다. 말을 길게 잇는 재주가 없으니 앞뒤 쓸데없다고 생각되는, 또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는 잘라먹고 굵고 짧게 핵심만 정확한 미팅이 빈번하다. 미팅 중 침묵이 발생하면 초조해지면서 식은땀이 난다. 다른 사람 눈치와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은 잘하면서 그 상황을 이기지는 못한다. 횡설수설하지는 않는지, 목소리는 떨리지 않는지 신경 쓰는 것에 급급하다. 그러니 무슨 말이든 이메일과 메신저가 더 편하고, 전화는 부담스럽다. 스트레스가 심해지자 대인기피로 나타난 이 문제는 결국, 나는 이 직무와 결코 맞지 않는구나 라는 결론에 이르게 만들었다. 

죽지 않으려면 도망가!

감히 그래도 될까요? 

 당연히 퇴사를 하면 생활고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딱히 월급이 많지도 않았지만. 직장인에게 월급은 마약 같은 것이라고 했다. 매 달 따박따박 나오던 월급이 나오지 않으니 얼마 못가 조급함에 손톱을 깨물며 다시 구직 사이트를 떠돌 수도 있다. 그러나 일단 회사, 조직문화, 사회생활이라는 것에 지쳐있는 나로서는 다른 회사에 이직할 용기도 적응할 자신도 지금으로서는 없다. 또다시 찾아올 수 있는 그 끔찍한 공황장애 증상이 나는 무섭다. 다르게 생각하면, 지금 이 상황에 내 경력으로 이직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임용을 준비하다 갈아탄 탓에 취업준비를 하던 사람도 아니었고, 다른 사람들이 쌓아두었을 수많은 스펙들이 부족할 테니. 그 부족한 것들을 열심히 채워야 할 텐데, 나약하게도 아직은 하고 싶지 않은 것에 두 손 걷고 나설 만큼의 무기력함을 극복하지 못했다. 그럼 너는 뭘 먹고 살 거냐고? 나도 모른다. 


1년간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시절, 나는 학생들에게 모두 똑같이 말했다.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고. 싫은 것을 억지로 시켜서는 절대 제대로 할 수 없다. 괜히 스트레스만 받을 뿐이지. 내가 진짜 하고 싶다, 하겠다는 마음이 있어야 무언가가 제대로 굴러간다. 공부가 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고 했다. 대학이 너를 책임져 주지 않으니 코앞에 보이는 입시라는 목표만 넘자, 라는 생각은 말라고 했다. 대신 너희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뭔지 찾아보라고, 그것에 공부가 필요하면 공부를 하고, 필요하지 않다면 그쪽으로 갈 수 있는 방향을 찾으라고. 대학이나 직업이 아니라,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은지를 찾으라고 했다. 교단에서 보낸 1년 후, 이 생각이 우리 교육 현실에는 맞지 않는 생각이었음은 분명했다. 학교와 학부모는 무슨 소리냐고 했고, 나는 현실을 바탕으로 시험 위주 강의식 수업을 할 수밖에 없었으니. 


모두들 행복하기 위해서 사는 것 아닌가. 내가 원하는 행복을 이루는데 돈이 필요할 수는 있지만 돈이 행복은 아니다. 사람들이 선망하는 유명세가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고, 부와 명예가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외부로부터 유입되는 가치를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여 끊임없이 비교하고, 갈망하고, 욕심을 부린다. 아직 30이 채 되지 않은 지금의 나로 보니 나는 돈에 대한 욕심도, 물건에 대한 욕심도 별로 없다. 앞으로는 어찌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는 그렇다. 지금의 나는 마음의 평화를 바란다. 행복이 땅 속 깊숙한 곳 어디까지 떨어져 사라져 버리는 기분, 내가 바닷속 깊숙이 수장당한 기분이었던 올 해가 지나면서.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밥벌이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강아지만 있으면 행복이 완성된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그러니 이제야 나야말로 진짜 하고 싶은 것을 찾아야 한다. 내 행복의 가치가 나에게 이렇게 명확하다면, 나는 나를 고통받게 하면서까지 외부적인 것들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 


나는 물 흐르듯 살아왔다. 어쩌다 보니 생각도 해보지 않은 사범대에 들어가서 좋은 사람들과 나에게 맞는 전공을 만났다. 사범대를 나왔으니 1년 동안 학교에서 일해보기도 하고, 잠깐 사교육 시장에서 일해보기도 했다. 임용을 준비했다. 잘 안됐다. 공부하는 것이 너무 싫었던 나는 시험을 때려치우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어디든 가서 일해보자고 이 회사 저 회사에 지원서를 넣었다. 면접을 본 곳 중 가장 재밌어 보이는 회사에 들어왔다. 돌이켜보면 모든 과정 속에는 피땀 나는 수많은 노력이 있었지만, 그만큼의 우연과 운, 그리고 내 마음이 작용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계획대로 되는 일은 없지만 생각지도 않은 일들은 일어난다. 그러니 이번이라고 어찌 다르겠는가. 낙관적이고 이상적인 생각이지만, 퇴사 후 이직이라는 당연한 절차를 살짝 치워두고 온갖 자유로운 생각을 하는 지금이 두근대는 순간이다. 




딜레마로 시작했다. 모든 것이 침체된 코로나 시국, 존버를 하며 더러움을 참을 것인가, 다 모르겠고 퇴사를 할 것인가. 한 때 퇴사 열풍이 불었었고 지금은 유행이 지난 것 같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의 꿈 아니겠는가. 나는 아직 해보지 못한 것을. 무언가의 톱니바퀴가 아니라 오롯이 내가 되고 싶은 마음. 끝으로 다다를수록 답정너가 되어간다. 다양한 견문을 넓혀볼 예정이다. 세상에는 아직도 모르는 것들이 더 많고, 험난하기도, 그만큼 재미있기도 할 테니. 그러고 나서 날짜를 정한다. 어려서 무식하고 무식해서 도전해본다. 


퇴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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