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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l Feb 16. 2019

엄마의 압력밥솥

딸을 잘못 키웠다

우리 집 밥상에는 최대 세개의 밥그릇이 오른다. 엄마, 아빠 그리고 나까지 셋이 오붓이 앉아 새해를 맞이하면 떡국은 두그릇이 오른다. 보통 그러면 남은 밥을 먹는데, 새해 첫날부터 찬밥이다. 전자레인지로 데운 밥, 전기밥솥에 있던 따뜻한 밥을 안먹기 때문이다.


물에 빠진 떡, 물에 불린 밥, 전자레인지로 데운 밥, 전기밥솥으로 지은 밥.

모두 내가 안먹는 것들이다.


떡국, 떡만둣국 같은 것들은 새해면 먹는다. 먹긴 한다만, 좋아하진 않는다. 차라리 칼국수를 먹고 말지, 왜 떡을 물에 빠뜨리는 걸까. 아프면 죽을 해준다. 죽 먹으면 배고파. 그냥 밥 먹으면 안되나. 약먹기 전에 뭘 먹어야 된다면 차라리 케익같은 달콤하지만 부드러운 걸 먹는게 좋다. 해열제 먹고 벌벌 떠는 손으로 밥 차려 먹는다. 밥이 너무 차지 않는다면 차라리 찬밥 먹는게 낫다. 전자레인지로 데운 밥은 맛이 없다. 맛이 없어서 먹기 싫다.


전기밥솥에 한 밥이나 전자레인지로 데운 밥은 맛이 없다. 안먹는 이유는 딱 하나다. 수분도 날아서 퍽퍽하다. 밥이랑 전기파를 먹는 기분이다. 누구는 밥을 한 뒤 비닐에 나눠 냉동고에 올려놓고 끼니마다 데워먹는다는데 나는 글쎄. 하다못해 국을 데워도 냄비로 끓이지, 전자레인지를 사용하진 않는다. 저.. 손 많이 가나요?


그럴 때면, 엄마는 늘 압력 밥솥으로 밥을 새로 한다. 뭐하러 찬밥 먹냐고, 체한다고 하면서 삼십분만 기다리라고 한다. 사실 집에 전기밥솥이 없는 것도 아니다. 언젠가 추석 연휴 때, 아빠가 회사에서 받아온 분홍색 전기밥솥이 부엌 한구석에 있는데, 몇번 쓴 뒤엔 잘 쓰지 않게 됐다. 나나, 아빠나 둘 다 안먹기 때문이다.


이런 내 못된 습관은 어렸을 때부터 계속된 것인데, 아무래도 엄마가 나를 너무 잘키워서 그런 것 같다. 늘 따뜻한 밥만 먹었다. 반찬도 최대한 조미료가 없게, 국과 찌개는 따뜻하게 늘 밥 옆에 놓고, 고기든, 생선이든 뭐 하나는 올라왔었다. 압력밥솥으로 밥을 하면 손이 엄청 많이 간다. 불을 켜고, 뜸을 들이고, 김을 뺀 다음에, 밥이 뭉치지 않게 털어내야 한다. 그러면서 반찬, 국도 해야한다. 부엌에서 엄마는 슈퍼맨이다. 간단히 김치만 볶아도 엄마가 해주는게 당연히 맛있다. 고3 때 아침마다 따뜻한 밥 해주느라 엄마가 고생했다. 지각은 하더라도 아침마다 씻는 나를 기다려줄 때면 뜨거운 밥으로 김밥을 말아줬다.


엄마는 늘 나에게 그렇게 잘해줬다. 지금도 잘해준다. 알면서 택택 대는 게 딸이라서 어쩔 수 없다면 그렇다. 예전에는 낳았으니까, 딸이 하나니까, 당연히 해줘야 된다고 생각했다. 제가 원해서 나온 세상이 아닌데요. 내가 싸가지가 많이 없었다.


엄마 친구 아들, 딸들은 괜히 잘났는데, 그래서 나는 자랑할 게 별로 없었다. 재수 안한거, 엄마 성에 안차는 대학이지만 그래도 장학금 받은 것, 제때 졸업해서 어학연수 하나 안갔지만 회사 다니는 거, 빚 없이 꾸준히 사회생활 하는 소소한 것들이 엄마의 자랑거리였다. 예쁘지도 않고, 잘난 남자도 안만나서 엄마 씅에 찰리 없다. 돈을 벌면서 그래도 자랑할 거리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게 생일 선물 들이었다.



대학교 때 알바한 돈을 모아서 사피아노 장지갑을 사줬다. 지금도 잘 쓴다. 회사를 다니면서 2년차까진 스카프와 머플러를 사줬다. 일부러 티 팍팍 나는 걸로. 엄마 생일이 겨울 즈음이라 딱이었다. 장갑도 사줘봤었는데, 엄마가 잘 안끼고 다녀서 실패. 그러고선 재작년엔 가방을 사줬다. 얼마 안되지만, 엄마가 무척 좋아했다. 작년엔 파리 여행이 있어서 본 생일 때는 소소하게 해주고, 파리에서 엄청 큰걸 사줬다. 그거 들고 설에 가서 자랑했음 했다.


어떤 이가 했던 말이, 나는 엄마가 어디 가서 자랑할 만한 자식 이었으면 좋겠다고. 그게 효도라고 했던 말이 계속 생각에 남는다. 그는 엄마의 자랑이 되는 걸 좋아했고, 본인 스스로의 욕심도 많았지만, 효심이 바탕이 된 허세도 자기 스스로 발전하는 데 하나의 증폭제가 됐다고 생각한다. 그는 그러한 감정을 어렸을 때부터 깨달았던 것이고, 나는 이제야 느끼게 된 것이다. 내년에는 더 좋고, 비싼 걸 사주고 싶다. 물론 내 취향이 듬뿍 담긴.


엄마 밥이 좋다. 밖에선 애교가 그렇게 많은데, 집에만 가면 말이 없어진다. 그래서 더 좋은 걸 사다주고 싶다. 엄마가 오래 살아서, 나랑 같이 더 오래 했으면 좋겠다. 솔직히 만화나, 영화에 엄마 얘기 나오면 우는 거 나 뿐은 아니지? 엄마 얘기 솔직히 반칙이야. 앞으로도 더 잘할 자신은 없지만, 내 평생 엄마가 계속 함께 했으면 좋겠다. 시집가도 엄마 옆 집에서 살아야지. 엄마 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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