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유미 Apr 23. 2017

내 것 아닌 내 집,내 맘 같지 않은 인생

책 읽다 말고 딴생각 하기

그 향기가 내 침대에서도 나기 시작했던 것은 내 집이 ‘우리 집’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파비오 볼로 ‘내가 원하는 시간’을 읽다가>



“이 집에 이사 온 게 언제더라?”
“음… 재작년 3월쯤 이사 왔으니 2년 됐네.”
낯설던 동네가 제법 익숙해졌다고 느낀 아침 출근길이었다. 차창 밖으로 흐드러지게 핀 벚꽃나무가 하나 둘 지나가는 걸 보며 내가 말했다.
“옛날 같았음 우리 지금쯤 다른 곳으로 이사했어야 해.”


그렇다. 어쨌거나 지금 우린 타의에 의한 이사를 하지 않아도 된다. 2011년 결혼한 뒤 4년 동안 우린 총 3번의 이사를 했다. 처음 신혼살림을 꾸렸던 오피스텔은 1년마다 재계약을 해야 했는데 1년 살아보니 알콩달콩 재미는 있었지만 점차 생활하는데 불편함이 느껴졌고 마침 키우기 시작한 고양이와 한 공간에 오랜 시간 머무는 게 답답하기도 했다. (그때만 해도 고양이에게 넓은 공간을 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재계약할 때쯤 되어 아파트로 이사를 결정했고 당시엔 대출 없이 가족의 도움으로 전세금을 충당할 수 있었고 1년이 아니라 2년 동안 맘 놓고 살 수 있단 생각에 행복했다. 2년이 그렇게 빨리 지나가리라곤 예상 못했지만……


우린 4년 동안 3번의 이사를 했다


둘만의 아파트 생활은 꽤 만족스러웠다. 작은 옷방 하나가 달린 오피스텔 원룸에서 벗어나 크고 작은 방이 3개에 거실과 주방, 그리고 앞 뒤로 베란다가 있는 집이었다. 4층인 우리 집 베란다 창으로 딱 그 높이만큼의 은행나무가 풍성했는데 여름이면 초록이 가을이면 황금빛으로 물들어 멀리 나가지 않고 집에서 쉬기만 해도 만족스러운 공간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고양이에게 꼭 사주고 싶던 캣타워를 장만해주었고 녀석이 그곳에서 여유롭게 낮잠 즐기는 모습만으로도 엄마 미소가 지어지곤 했다. 공간이 넓어지자 각자 하고 싶은 게 더 많아졌고 함께 쓰는 안방을 비롯 작은 방 하나는 책이 빼곡한 서재 방으로 또 다른 방 하나는 남편이 밤늦도록 게임을 하거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자기만의 방’으로 만들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충만한 나날을 보냈다. 애초 예상은 2년 동안 돈을 열심히 모아서 2년 뒤 재계약할 때가 돼도 전세금을 보란 듯이 올려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늘 그렇듯 인생은 내 뜻대로 되지 않기에 더 다이내믹하지 않던가.


행복할수록 시간은 빠르게 지나는 법. 2년이 두 달처럼 순식간에 지나는 동안 우리는 넓어진 공간을 채울 살림살이들을 채우느라 저축은커녕 짐만 늘어나는 사태를 맞이했다. 그나마 집주인이 2년 만에 올린 전세금은 우리가 성실히 먹을 거 안 먹고 갖고 싶은 거 안 사고 저축했다 해도 쉽게 모으지 못할 만큼 말도 안 되는 액수라 위로 아닌 위로가 되었다. 2년 약속으로 가족에게 빌렸던 돈을 일부 되돌려주고 우리는 약간의 대출을 받기로 했다. 아파트 살아봤으니 됐어,라고 초 긍정 마인드로 주택가 작은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런 집은 흔하고 생각보다 저렴하며 예상보다 살만할 거란 우리의 기대를 보란 듯이 져버리며 주말마다 집 보러 다니는 시간은 절망과 낙담의 연속이었다. 그러다가 어렵사리 돈에 맞춰 구하게 된 집은 지은 지 족히 25년은 넘은 것 같은 허름한 다세대 주택 2층이었다.

illust by 윤지민

공간이 작진 않았지만 오래된 집이라 창문도 허술했고 일단 거실과 천장이 루바(나무) 벽이었다.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상상했지만 어두컴컴과 칙칙의 콜라보레이션이었다. 전셋집인데 대충 살까, 생각하기엔 우리의 눈이 너무 높아져버렸다. 없는 돈에 무리해서 인테리어 공사를 하기로 했다. 일단 도배장판은 기본이고 거실 루바 벽은 흰색 페인트로 칠했다. 문 손잡이를 바꾸고, 욕실 수납장을 달았다.(수납장도 없는 욕실이었다) 주방 싱크대 시트지도 바꾸고 타일도 다시 붙였다. 욕실 줄눈 공사도 다시 했다. 맘에 쏙 들진 않지만 어느 정도 봐줄 만한 집으로 바뀌었다. 공사는 모두 우리 돈으로 직접 했으니 집주인도 두 손들어 환영했다. 그나마 없는 돈을 투자한 건 전에 살던 사람이 이 집에 무려 7년이나 살았고 그만큼 집주인 하고도 사이가 좋았는데 실제로 부동산에서 직접 만나보니 성실하고 밝아 보이는 사람이었다. 주인은 건물 1층에 살았는데 그 집 할머니는 눈이 오면 아침 일찍 일어나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눈을 쓸어 주었다. 당시 눈이 꽤 많이 온 겨울이었는데 단 한 번도 직접 눈을 쓸어 본 적 없을 정도로 계단 눈은 늘 깨끗이 치워져 있었다. 나는 집도 집이지만 무엇보다 전세 사는 사람은 집주인과의 관계도 중요하기 때문에 여기서라면 계약을 연장해서라도 오래 머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오래된 다세대 주택에 머물면서 대출금도 갚고 나중에 조금 더 좋은 집으로 이사하리란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이번에도 내 계획을 나 보란 듯 깨트려버린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임신이었다. 인생 뜻대로 안 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더니 갈수록 태산이었다. 그 집에서 1년 반 정도 살았을 무렵 덜컥 계획에 없던 임신이 됐고 남편과 몇 날 며칠 의논을 통해 여기선 아이를 키우기 힘들 것 같단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우리는 공들여 꾸민 집에서 2년 계약 만기를 꽉 채우지도 못하고 다음 집을 찾아야 했다. 이사에 지친 나와 남편은 이래서 ‘하우스 푸어’가 되나 봐, 하면서 결국 대출을 무리하게 받아 집을 사기로 했다. 2년마다 이사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을 뿐 이건 뭐 은행에 매달 월세(이자) 주고 사는 집이었다.


집, 이렇게까지 해서 가져야 하는 걸까?


지금 사는 집은 신축빌라라 깨끗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까지 꽤 많은 비용을 들여 우리 맘에 들게 바꿔야 했다.(정말 눈만 높아졌다, 이게 다 인스타그램 때문이다) 망가지지 않은 싱크대 문짝을 디자인이 맘에 들지 않는단 이유로 교체하고 조명을 바꾸고 거실 몰딩 컬러를 바꿨다. 아마도 공사는 여기 사는 동안 계속해야 할지도 모른다. 완벽히 맘에 드는 날이 오기나 할는지 모르겠다.
원금과 이자를 매달 갚아나가야 하는 대출 만기는 30년. 상상조차 되지 않는 30년, 우리는 빚을 다 갚을 수 있긴 할까? 아주 가끔은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의구심이 든다. 남들도 다 이렇게 살아,라고 자위하지만 농담처럼 이러다가 내 아들한테 빚을 물려주게 될지도 몰라, 라는 말이 현실이 될까 두렵기도 하다. 지금 우리 세대는 부모보다 못 사는 최초의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던데 집은 이렇게까지 해서 소유해야만 하는 ‘내 것’이 맞는 걸까?


매거진의 이전글 아프면 비로소 보이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