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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Apr 26. 2017

멀티 안 되는 당신도 반할 멀티탭

다르게 쓰고 싶은 쇼핑몰 카피라이터의 고군 분투기

나는 멀티가 어느 정도는 되는 사람이다. 멀티, 즉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해내는 걸 비유한 말인데 한동안 멀티플레이어란 말이 있을 정도로 능력이 많은 사람을 뜻하는 단어가 되었다. 일주일 동안 못했던 집안일을 한꺼번에 처리해야 하는 주말에 특히 멀티가 필요하다. 나는 주로 꼭 읽고 싶은 책을 읽어야 할 때 이 기질을 사용한다. 평일엔 주로 출퇴근할 때나 회사에서 책을 볼 수 있지만 주말엔 아이를 돌봐야 하니 특히 더 시간이 없는데, 이걸 나의 멀티력으로 해소한다.


아이는 밥을 늦게 먹는다. 아직까진 내가 한입씩 떠 넣어주고 있는데 한입 먹여주고 아이가 씹고 넘길 때까지 책을 읽는다. 아이에게 밥을 먹일 땐 빨리 먹지 않아 스트레스받는 경우가 많은데, 아이가 천천히 음식물을 씹어 넘기는 동안 나는 단 한두 줄이라도 책을 읽으면 그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다. 무엇보다 아이에게 빨리 먹으라 재촉하지 않게 된다. 보통은 아이가 늦게 먹기보다 내 속도에 못 따라와서 재촉하게 되는데 짬짬이 책을 읽으면 그럴 리 없으니 아이도 찡얼 대지 않는다.

설거지하면서 책 관련 팟 캐스트를 듣는 건 멀티에 속하지도 않을 것이다. 어쨌든 나는 아무것도 읽지 않거나 아무것도 듣지 않고 뭔가를 하는 시간은 글 쓰는 시간 말곤 없어야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멀티력은 꼭 갖추려 애쓴다. 사람들이 말하는 노동요(일할 때 듣는 노래)가 나는 책 팟 캐스트다.


오쿠다 히데오의 ‘버라이어티’는 그의 단편소설 몇 개와 오쿠다 히데오와 배우 겸 작가 잇세 오가타, 드라마 연출가 야마다 다이치의 대담집이 실려 있다. 꽤 알차다. 별생각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그중 ‘드라이브 인 서머’라는 단편에 나오는 이 문장은 멀티가 되지 않는 주인공의 아내에 대한 얘기다.


소설 속 문장:
돈가스를 튀기는 동안 양배추를 써는 당연한 일을 못한다.
한 가지를 정리하지 않으면 다음 일을 못했던 것이다.
<오쿠다 히데오 ‘드라이브 인 서머’ 중에서>



음식 할 땐 특히 멀티가 필요하다. 나도 라면 끓이는 거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는 상태로 결혼해서 결혼 생활 6년 차 정도 되어서야 레시피(거의 순서) 보지 않고 된장찌개나, 김치찌개, 콩나물국, 감잣국 등(여기에 왜 레시피가 필요하냐고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을 끓일 수 있게 되었는데, 음식 만들 때 멀티로 하지 않으면 주방이 말 그대로 난장판이 된다. 그러니까 된장찌개를 예로 들어 보자. 뚝배기에 물을 붓고 멸치 대여섯 마리를 넣고 끓인다. 이때 냉장고에서 꺼낸 멸치 봉투는 바로 냉장고에 넣음과 동시에 된장을 꺼낸다. 물이 좀 끓는다 싶으면 된장을 풀고 다시 냉장고에 넣음과 동시에 야채 칸에서 감자와 호박, 파 등을 꺼낸다. 된장 푼 국물이 끓는 사이 감자를 깎고 호박을 썰어 재빨리 뚝배기에 넣고 바로바로 감자 껍질과 각종 음식물 쓰레기를 정리한다. 이때 발생된 몇 가지 설거지 거리를 해두어도 좋다. 그럼 한결 깨끗한 상태에서 음식을 조리할 수 있다. 이렇게 찌개를 끓이면서 세탁기에 빨래를 넣고 돌리는 건 당연한 절차다.

이렇게 뭔가가 끓는 동안, 튀겨지는 동안 다른 걸 할 줄 아는 게 주방에서 필요한 멀티다. 나도 처음엔 끓고 있는 된장찌개를 망연히 바라보느라 다른 걸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젠 몇 분쯤 되었을 때 채소를 넣어야 하는, 파를 넣어야 하는지 두부를 넣어야 하는지를 알아 아주 여유롭게 요리할 수 있게 되었다(사실 다 때려 넣고 끓이기만 해도 맛은 똑같다). 소설 속 아내 히로코는 이게 안 되는 부류다. 남편이 봤을 때, 돈가스를 튀기는 동안 양배추 써는 게 왜 안 될까 싶겠지만 (그렇게 답답하면 직접 해 먹으면 될 것을) 안 되는 사람은 좀처럼 쉽지 않다. 자 그렇다면 멀티가 되지 않는 소설 속 인물을 통해 말 그대로 멀티가 되는 멀티탭을 팔아 보면 어떨까?



카피:
돈가스를 튀기는 동안
양배추 써는 당연한 일을 하지 못하는 아내는
멀티가 안 되는 사람.


그런 그녀도 멀티탭은 OOO(제품명) 
멀티가 안 돼도 멀티탭은 잘 아네.


단어에서 파생되는 이미지로 만든 카피다. 파생된 이미지와 실제 그 이름을 갖고 있는 상품을 연상 했다. 단어에서 떠올려지는 이미지와 상황을 매칭 한 것이다. 이런 방식 자체는 그리 독특하다고 할 수 없지만 앞에 예로 든 ‘돈가스를 튀기는 동안…’ 이 부분의 카피가 보는 이의, 혹은 듣는 이의 주목을 어느 정도 끌 수 있다. 일반적인 상황, 일반적인 말로 카피를 풀어갈 때 더 와 닿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내'라는 단어와 '잘 아네'의 아네를 맞췄다. 이 카피를 읽었을 때의 리듬감을 생각한 거다. 어쨌거나 돈가스를 튀기는 동안 양배추 써는 게 되지 않는다는 건 누가 봐도 한 가지밖에 못하는 사람을 뜻하니 이보다 쉽게 멀티탭을 설명할 순 없을 것이다.



*글에서 언급된 상품은 에디터 개인의 선택으로

해당 브랜드나 담당 엠디의 추천과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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