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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Apr 19. 2017

두 단어를 낯설게 섞자

다르게 쓰고 싶은 쇼핑몰 카피라이터의 고군분투기

소설 속 문장:
-근데 엄마, 그거 무슨 뜻인지 알고나 쓰는 거야?
할멈이 도끼눈을 떴다.
-그럼!
그러더니 낮게 읊조렸다.
-사랑.
-그게 뭔데?
엄마가 짓궂게 물었다.
-예쁨의 발견
<손원평 '아몬드’ 중에서>


나이 든 엄마가 정성스레 한자 愛를 붓글씨로 쓰고 있다. 그걸 지켜보던 딸이 엄마에게 그게 무슨 뜻인 줄 알고 쓰냐 묻는다. 엄마는 나를 무시하는 거냐는 투로 당연히 안다고 대답한다. 뭐냐고 재차 딸이 묻는다. 엄마는 ‘사랑’이라고 낮게 읊조리듯 말한다. 대답을 들은 딸이 다시 한번 묻는다. 그렇다면 사랑이 뭐냐고.


사랑은 뭘까.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한 마디로 답하라고 한다면 너무 단순하게 좋아하는 것, 이라고 밖에 답할 수 없을 것 같다. 너무 좋아해서 그 사람 생각하면 가끔 눈물 나는 거. 그게 사랑 아닐까. 사랑은 너무 포괄적이고 주관적인 단어다. 누군가에게 사랑은 애틋함일 수 있고 눈물일 수도 있다. 또 다른 누군가에겐 연민일 수 있고 동경일 수도 있다. 나 같이 단순한 사람에겐 그냥 좋아, 라는 뜻이겠다.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는 가장 최근, 가장 단 시간에 읽은 장편 소설로 처음부터 반 정도는 금요일 퇴근길에 읽고 나머지 반은 모두가 잠든 일요일 밤에서 새벽 사이에 읽었다. 다 읽을 생각은 아니었는데 한 장 한 장 넘기는 페이지가 멈출 줄을 몰랐고 나는 책을 읽다가 출출해져서 밤 12시에 컵라면 하나를 끓여 먹었는데 그때부턴 책을 마저 읽기 위함이기도 했다.(이런 식으로 야식 합리화;;)  다 읽을 생각이 아니었다고 했는데 단숨에 다 읽어버렸고 울 생각 없었는데 눈물을 펑 쏟아내고 말았다. 나는 어떤 책이 너무 좋으면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강제 선물(?) 하는데 이 책이 그랬다.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대구에 사는 나의 절친 YUN이었다. 책을 선물할 때 아무에게나 하지 않는다. 내가 감동받았던 부분에서 내가 눈물 쏟은 부분에서 눈물 흘리리란 걸 아는(짐작하는) 사람에게만 선물한다. 그만큼 내가 잘 알고 나를 잘 아는 사람 되겠다.


어쨌거나 ‘아몬드’는 참 좋은 소설이었다. 무엇보다 감정 표현 불능증이란 정서적 장애 ‘알렉시티미아’를 소재로 해 흥미로웠고 캐릭터의 개성과 책을 사랑하는 사람과 책방이 나온다는 점, 그리고 엄마인 나의 눈물을 펑 쏟게 만든 아이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이. 책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오늘 말하려고 하는 카피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주인공의 할머니 즉 소설 속 문장에 엄마가 사랑, 애 자를 열심히 쓰는데 그게 뭐냐 물으니 이렇게 대답했다.


"예쁨의 발견"



앞서 말했듯 사랑은 지극히 많은 뜻을 갖고 있다. 어느 것 하나 딱 정의 내릴 수 없는데 여기 이 단어의 조합이 신선하다. 유추해 보면 세상 모든 게 예뻐 보일 할머니의 시선에서 나올만한 해석이란 생각도 든다. 나는 카피 혹은 타이틀을 만들 때 이런 방법을 종종 사용한다. 낯선 단어의 조합. 여기서도 이 글이 남달리 보였던 건 흔히 연결 짓지 않는 단어를 연결해 사용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이런 조합도 있다.


-증발한 꿈
-울적한 공통점
-목적지를 바꾼 바람


흔히 사용하는 단어의 조합만 쓰다 보면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없다. 그건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가버린다. 하지만 단어와 단어를 신선하게 조합해 보면 ‘어?’ 하면서 소비자의 눈에 걸리게 되고 호기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런 문구는 카피 쓸 때에도 충분히 활용해 볼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이런 문장을 책에서 발견하면 괜히 신난다. 보물을 찾은 것 같아서.


‘예쁨의 발견’이란 문구로 어떤 걸 팔면 좋을까 하다가 단순히 정말 예쁜 걸 팔 때 쓰면 좋겠단 결론을 내렸다. 또한 발견이란 건 큰 게 아니라 작은 걸 찾을 때 더 강조할 수 있기 때문에 작고 앙증맞은 주얼리가 가장 알맞을 것 같다.


카피:
오늘 자 예쁨의 발견
혹은
4월 19일 예쁨의 발견 


요즘 인스타에서 해시태크(#)로 짧게 쓰는 게 유행이기도 하니까 그런 포맷을 이용해서 써줘도 어울리겠다. 카피는 쓰는 사람의 스타일이나 보이는 방식과 룰에 따라 너무 방대하고 넓다. 많이 시도해 보고 그중에 자신이 가장 잘 쓸 수 있고 자기만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좋겠다.



*글에서 언급된 상품은 에디터 개인의 선택으로

해당 브랜드나 담당 엠디의 추천과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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