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게 쓰고 싶은 쇼핑몰 카피라이터의 고군 분투기
한 달에 한번 우리 회사(29CM)에는 직원 복지 차원의 제도로 ‘리프레쉬 데이’라는 게 있다. 말 그대로 쉬라는 의미에서 12시부터 3시까지 세시간 자유시간을 준다. 뭘 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동료들과 게임을 해도 좋고 평소 처리하지 못한 개인 업무를 보고 와도 좋고, 네일샵에 다녀와도 되고 카페에 가서 수다를 떨다 와도 되며 영화를 한편 보고 오기에도 충분한 시간이다. 나도 몇 차례 동료들과 어울려 차를 타고 좀 멀리 나가 맛집을 다녀온 적도 있었고 영화를 보기도 했다.
4월의 리프레시 데이였던 오늘(글을 쓴 날은 4월 12일) 나는 병원(감기에 걸려 이비인후과를 갔다)에 갔다가 근처 김가네 김밥 집에서 치즈김밥으로 허기를 달랜 후 바로 옆에 있는 투썸플레이스에 가서 카페라테를 마시며 챙겨 간 소설책 유레루를 읽고, 30분 남겨두고 바로 옆에 있는 알라딘 중고서점에 가 책 한 권을 산 뒤 사무실로 복귀했다. 이렇게 혼자 보낸 리프레쉬 데이는 처음이었는데 가장 리프레쉬 다운 리프레쉬였다. 사실 워킹맘인 나는 이렇게 평일 오후 한가로이 멍 때릴 수 있는 기회는 좀처럼 없다. 카페 가장자리 커다란 창 앞에 마련된 곳, 조금 낮은 의자에 편하게 앉아 책 읽다가 좀 멍하니 있다가 다시 책 읽다가 창밖에 어딘가 바삐 지나가는 사람들도 힐끔거리고 따사로운 햇살에 눈을 좀 감았다가 다시 책 읽기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이 문장을 만났다.
최근 내 브런치에 자주 등장하는 ‘니시카와 미와’의 소설 ‘유레루’는 내가 읽은 그녀의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표현의 디테일이 살아있어 연신 밑줄 그어가며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읽었다(무슨 책을 갖고 나갈까 고민했는데 탁월한 선택이었다). 마치 영화를 보듯 흡입력 있게 읽혔다. 몇 년 전, 언젠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영화 유레루를 보았다. 근데 오다기리 조가 주인공이었다는 기억뿐 딱히 내용이 기억되지 않아 지지난 주 중고서점에 가 일부러 유레루를 샀다. 그땐 감독 니시카와 미와가 이렇게 소설을 쓰는 작가이기도 하단 걸 당연히 몰랐을 때니 생각 없이 그냥 봤나 보다.
오늘 이야기할 문장은 다케루(영화에선 오다기리 조)를 좋아하는 치에코가 그를 회상하는 대목인데 함께 유년시절을 보내던 그가 사진을 공부하겠다고 도쿄로 떠나게 된 후 성인이 되어 서점에서 그의 사진집을 찾아보았다는 내용이다. 치에코는 그의 사진집을 보며 이렇게 생각한다.
다케루가 찍은 사진을 보면서 이것이 내가 보지 못했던, 다케루가 보고 온 풍경이구나 생각하면서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겼습니다. (63P)
치에코는 도쿄로 떠난 다케루를 보지 못하지만 그가 보고 온 풍경을 보고 있다고 말한다. 나는 그 사람을 보지 못했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눈으로 직접 본 풍경을 사진으로 보고 있는 사람의 애틋함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 문장을 읽다가 우리가 만일 사진집을 팔려고 한다면 이런 포인트를 건드려주면 어떨까, 생각했다. 소설 속 문장에 아주 중요한 문구가 숨어 있다. 바로 ‘그 사람이 지나간 풍경을 영원한 정지 화면으로 가슴에 안고’ 이 부분인데, 사진은 말 그대로 지나가는 풍경을 영원한 정지 화면으로 내 눈에 담는 것 아닐까.
이 카피에서 ‘풍경’을, 모습이라거나 경치, 자취, 자태 등 비슷한 단어로 상황에 맞게 바꿔 써도 무방하다. 오늘 내가 유레루를 읽었던 카페는 아주 커다란 창이 있었는데 나는 그 앞에서 책을 봤다. 잠깐씩 맥이 끊길 때 책을 내려놓고 바깥 풍경을 살폈다. 평일 오후 바쁘게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을 휴대폰 카메라로 찍으며 ‘영원한 정지 화면’으로 남기기도 했다. 그걸 인스타그램에 담긴 했지만… 아무튼 놀러, 쉬러 간 카페에서 제일 좋아하는 일(책 읽기)을 하며 숙제(소설로 카피 쓰기)도 해결했다. 사무실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제법 가벼웠다.
*글에서 언급된 상품은 에디터 개인의 선택으로
해당 브랜드나 담당 엠디의 추천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