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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Mar 19. 2018

고난을 다 이겨내지 않고도 사는 것

책 읽다 말고 딴생각하기 

지난주 토요일, 타지에서 학교를 다니는 중학생 조카가 집에 왔다. 방학도 아닌데 아이가 온 이유는 학교 생활을 잠시 ‘멈추기’ 위해서였다. 장시간 쉬는 건 아니고 일단 일주일 정도 집에 있다가 다시 돌아갈 계획이라고 했다. 얼마 전 명절 연휴 때 내려온 뒤라 텀이 길지도 않았다. 조카는 요즘 학교생활이 좀 힘들다. 정확한 원인과 이유를 모르는 나는 교우 관계 문제 정도로 알고 있다. 이제 중학교 2학년. 한창 사춘기. 예민할 시기다. 나도 그랬고 조카의 엄마인 우리 언니도 그땐 그랬다. 툭하면 문 잠그고 방에서 안 나왔다. 그런 시기에 집이 아닌 학교 기숙사 생활을 하다 보니 심리적인 부담도 커진 모양이었다. 날마다 딸과 통화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학교 상담 선생님까지 만나보며 해결방안을 찾으려던 언니와 형부는 일단 아이를 잠깐 집에 오게 하는 데 의견을 모았다. 누구보다 조카가 그걸 원했다. 왔다가 가면 좋아지기보다 다시 돌아갔을 때가 더 힘들어지리란 걸 모르지 않지만 일단 아이를 그곳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게 우선이었다. 조카는 집에 와 있는 동안 심리상담을 받을 예정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말한다. 다시 학창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그러면서 묻는다, 넌 어때? 난 절대 사양이다. 그 시절로 돌아가느니 둘째를 낳겠다. 뭐 모두가 학창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건 아닐 것이다. 나처럼 그 시절이 힘들었을 수도 있다. 조카의 학교 생활 이야기를 듣고 나는 한동안 과거의 내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무척 내성적이었던 나는 반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학생이었다. 그렇다 보니 친구가 별로 없었다. 중고등학교를 돌이켜 보면 쓸쓸했다. 매 학년마다 단짝 친구도 있었지만 한두 명의 단짝 친구와의 사이는 늘 불안 불안했고 혹여 그 친구들이 다른 친구와 마음이 맞기라도 하면 나는 외톨이가 되었다. 다른 애들처럼 그러면 나도 다른 얘랑 놀아야지, 이게 잘 안됐다. 그 자리에서 나의 단짝 친구가 내 곁으로 다시 돌아오길 기다렸다. 


중고등학교 때 내가 싫어하는 시간은 월요일 아침마다 운동장에 모여야 하는 조회 시간과 체육, 음악, 미술 등 중간중간 장소를 옮겨야 하는 시간이었다. 당연히 그렇게 자리를 옮겨야 하는 시간은 친구들과 함께 움직이기 마련인데 친구가 적었던 나는 그 혼자가 되는 아주 잠깐이 참 싫었다. 그렇다고 아무한테나 가서 같이 이동하자고 말할 수 있는 주변머리도 못 되었다. 말수가 적고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며 잘 노는 것도 아니니 아이들이 딱히 나를 좋아할 이유도 없었다. 그저 나랑 성격 맞는 몇몇 짝꿍들이, 그러니까 한번 짝꿍이 되면 꽤 오랫동안 그 관계가 지속되는 스타일이었다. 


친구가 필요한 순간들이 싫었다


다행이게도 당시의 나는 그런 상황이 외롭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나이가 어려 외로운 감정인지 잘 몰랐을 수도 있다. 내 성격을 마구 탓하지도 않았다. 애 늙은이처럼 내가 처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지내며 빨리 졸업이나 했으면, 하고 바랐다. 혼자 있는 게 싫진 않으니까 그냥 혼자 놀면서. 말 그대로 덤덤하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공부에 흥미가 많은 것도 아니어서 수업시간이 즐겁지도 않았다. 내성적인 탓에 선생님이 뭐라도 시킬까 봐 늘 조마조마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미술을 시작했고 미술학원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조금 더 활달해지고 성격도 단단해졌던 것 같다. 잘하는 분야가 생기니 자신감도 붙었다. 그렇다고 해도 고등학교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1도 없다. 100% 내 속내를 드러내지 못하고 끙끙거렸던 날들이 더 많았으니까.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런 것들이 점차 사라졌다. 내 영역이 좁아지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직장이란 게 어쨌든 팀 단위로 움직이니 관계를 맺어야 할 인간관계가 적고 그만큼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어쨌거나 직장은 타인에 의한 선택이 아닌 내 자유의지에 따라 이동할 수 있으니 혼자여도 남들 눈을 별로 의식하지 않으며 지낼 수 있었다. 그만큼 나이를 먹고 얼굴이 두꺼워진 탓도 있겠지. 


지난 설 명절에 조카가 집에 오는 날, 김포공항과 합정동 회사가 가까워 내가 마중을 나갔다. 공항버스를 타고 돌아오며 조카랑 벼뤘던 이야기를 나눴다. 


“밥을 혼자 먹니?”

“아니 걔들이랑 같이 먹어.”

“싫어하는 애들이랑 같이 먹는다고? 그러지 말고 그냥 혼자 먹으면 되잖아.”

“이모, 혼자인 나를 다른 애들이 보는 게 더 싫어. 그래서 싫지만 걔네랑 어울리는 거야.”


조카의 대답을 듣는 순간 생각이 짧았구나 싶었다. 마흔을 코앞에 둔 나는 어떤 사람이 싫으면 당연히 떨쳐내고 혼자 지낼 수 있지만 이제 열다섯 중학생인 내 조카에게 그건 너무 버거운 일이었다. 더 많은 아이들이 자신의 처지를 알 게 되고 수군거리는 게 싫은 마음, 내가 왜 몰랐을까? 그래서 나도 그 시절 나를 자신들의 영역에 껴주지 않아도 비굴하게 쫓아가야 했는데. 

엑소 팬인 조카는 내가 조금 진지한 이야기를 꺼내려할 때마다 아이돌 이야기로 주제를 바꾸려 했다. 그렇게 한 참을 버스가 달리고 있을 때 조카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냥 직장 다닌다고 생각해라.”

“직장?”

“응. 회사 다닌다고 생각해. 거기에 너무 네 에너지를 다 쏟지 말라고. 마음 쓰지 말란 말이야. 직장은 그냥 일로써 사람을 상대하면 그만이거든. 너도 걔들한테 감정 소모하지 말고 그냥 직장동료 대하듯 해버려.” 


말인지 방귀인지, 하는 표정으로 납득이 어렵다는 듯 멀뚱하게 나를 바라보던 조카는 그냥 흐흐, 하고 웃어버렸다. 이모가 날 위로해주려는 건 알겠다는 듯. 제대로 상담해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머쓱해진 나는 괜히 창 밖을 바라보다 ‘이모 좀 잘게’라고 말했다. 


슬픔을 다 이겨낼 필요는 없다 

작은 일에 연연하고 친구의 눈빛, 행동 하나에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하던 학창 시절을 생각하면 나 자신이 좀 측은하게 여겨져 다신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나마 외향적인 성격인 조카는 상담 선생님께 직접 이야기도 하고 뭔가 이 상황을 벗어나려는 액션을 취했지만 나는 함께 사는 엄마나 언니에게 조차 이런 이야길 한 적이 없다. 그래서 이번 일을 계기로 언니와 대화하던 중 나의 과거 이야길 했더니 그런 줄 몰랐다며 놀라는 기색이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나는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으니까. 대부분은 중학교 때부터 쓰던 일기장에 털어놓는 게 고작이었다. 아동 심리에 대해 잘 모르지만 아이들은 문제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돌이켜 볼수록 열다섯 살 이유미는 어떻게 하루하루를 버텨냈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책이라도 좋아해 심심할 틈이 없지만 그땐 책에도 별 관심이 없었는데. 성격이 좀 변했다한들 내 안에는 여전히 그 아이가 살고 있다. 나는 그냥 슬픔을 다 이겨내지 않고도 살 수 있게 된 것 아닐까? 자꾸 마음이 안 좋다. 모쪼록 조카가 지금 당면한 현실은 인생 전체를 봤을 때 0.3미리 펜으로 콕 찍은 점에 불과하단 걸 알았으면 좋겠다. 그 나이에 그걸 깨닫는 게 쉽지 않지만 말이다. 그렇게라도 털어낼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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