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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Oct 17. 2019

여기 또 하나의 알이 깨졌다

<지니의 퍼즐> 최실  

무라카미 하루키 다음으로 외웠던 일본 소설가의 이름은 가네시로 가즈키.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읽고 일본 소설의 맛(?)을 알아 버려 닥치는 대로 일본 작가의 소설을 찾아 읽었다.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 《GO》는 짧고 강렬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제목에 이끌려 읽게 됐고, 작가의 이름과 재일교포란 정보는 그 다음이었다. 가네시로 가즈키가 무라카미 하루키 다음으로 외우는 일본 소설가의 이름이 된 데에는 그만큼 소설 《GO》가 인상적으로 재미있어서였다. 《GO》는 훗날 영화화되기도 했고, 나 또한 책을 읽으며 상상만 했던 인물들이 어떻게 그려질까 궁금해하며 영화도 찾아봤다. 그나저나 내가 오늘 말하고 싶은 책은 《GO》가 아닌데. 가네시로 가즈키의 <GO>만큼 강렬한 소설을 만나서 주절주절 서론이 길어 졌다.  

    

얼마 전 최실 작가의 《지니의 퍼즐》을 읽었다. 참 묘하게도 처음 《GO》를 접했을 때처럼 단번에 읽어버렸다. 재미있는 소설은 아껴 읽고 싶지만 그게 참 뜻대로 안 된단 말이지. ‘군조 신인문학상’ ‘오다사쿠노스케상’ ‘예술선장 신인상’ 등 작가의 수상 이력이 화려한 건 둘째치고 첫 페이지를 펼치자마자 가독성에 가속도가 붙어 모처럼 새벽잠을 벼른 채 한 권을 끝냈다.      


《지니의 퍼즐》은 재일조선인 3세인 박지니의 단도직입적인 혁명 이야기다. 책에서 주인공 박지니는 자신을 ‘혁명가의 알’이라고 친구 니나에게 말한다. 촌스럽게도 ‘알’하면 데미안이 제일 먼저 떠올랐지만 결과적으로 이 둘은 세계를 뚫고 나오려는 대상이란 점에서 비슷하다. 나는 그 대목에서 지니뿐만 아니라 작가 최실 또한 하나의 알처럼 생각됐다. 그 알은 조금씩 금이 가고 있고 그 안에서 이제 막 파닥거리는 생명체가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오는, 이 소설이 그 알의 결과물처럼 여겨졌다.


참 오랜만에 부조리에 맞서는 도전적인 문장을 읽었더니 이 두근거림이 사라지기 전에 뭐라도 써 놓고 싶어 진다. 무릇 탁월한 문장과 이야기는 쓰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으니까. 어쨌거나 대부분의 사람 모두가 그랬으니까 아무렇지 않게 따라가는 매일의 순간 앞에서 스스로 알이 되어 깨어져도 뚫고 나오고 싶어하는 한 인간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 세상이 고여 있지 않고 점점 틀 밖으로 번져 나가는 게 아닐까?      


‘학교-혹은 이 세상에서 이리저리 떠밀리듯 도쿄, 하와이를 거쳐 오리건 주로 온’ 지니가 일본 조선 학교에 다니던 중학생 시절을 홈스테이 아주머니 스테퍼니에게 털어놓으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녀는 과거에 어떤 일을 겪었길래 낯선 땅에서 불운을 운운하며 허우적거리는 걸까? 나에게 《지니의 퍼즐》은 단순히 재일교포의 이야기로 다가오지 않았다. 이치에 맞지 않는 현상에 대해 남들과 달리 ‘깊게 생각하는’ 인물이 자신이 생각한 바를 생각에 멈추지 않고 어떻게든 저질러 보고야 마는 멋진 좌절 스토리로 읽혔다.      


‘만약 눈앞에서 아이들이 괴로워하고 있다면. 만약 어른들이 자존심을 조금만 버려도 수많은 일들이 해결된다면. 그래서 조금이라도 아이들이 밝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면, 어른은 아이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게 아닐까.’ -160쪽-     


주인공 지니는 불합리한 세상에 맞설 노력조차 하지 않는 어른들에게 분노한다. 그리고 깊이 생각한다. 깊은 생각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시도’로 이어진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사진’ 아래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공부하게 만드는 현실에 분개하며 어떤 어른도 하지 못한 김씨 일가의 초상화를 건물 밖으로 던지고 이야기는 결말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물성은 얇지만 여운만큼은 두터운 《지니의 퍼즐》을 다 읽고 최실 작가와 관련된 기사를 찾아보았다. 주인공 지니만큼이나 당차 보이는 사진 속 작가는 소설이 될 줄 모르고 그냥 이야기를 썼단다. 어떤 이야기는 쓰려고 해서 써지는 게 아니란 생각이 든다. 쓰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이야기가 있을 뿐.     


PS: 엊그제 매주 빼놓지 않는 팟캐스트 ‘책읽아웃’을 듣는데 ‘제3회 한민족 이산문학 독후감 대회’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왔다. 차이와 다양성을 아우르는 우리 문학인, 이산문학 선정 도서 26권 중 1권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대회인데, 혹시나 하고 찾아봤더니 《지니의 퍼즐》이 포함돼 있었다. 앞서 쓴 이야기도 독후감이 된다면 도전해 봐야지. 제3회 한민족 이산문학 독후감 대회와 관련된 더 자세한 정보는 홈페이지(www.diasporabook.or.kr)에 가면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그러고 보니 《GO》도 대상 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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