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live Apr 04. 2024

난 안전한 우리가 좋아

연대의 공간

3월 중순의 어느 날 저녁, 은평구에 새로 생긴 한 공간의 오픈식에 초대를 받았다. 사실 후원자로 함께하는 자리였다. 저녁이었고 난 혼자였는데, 사실 혼자 가기가 썩 마음에 내키지는 않았다. 공간이 어떻게 만들어졌을지 궁금하고 기대되는 마음이 컸지만, 잘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놓이는 게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 그곳에 모인 사람들 중에 내가 아는 반가운 얼굴들이 보이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반가운 얼굴들을 만났다.


나와 이곳 사이에 뭔가 큰 인연이 있는 것은 아니었고 간간이 소식을 전해 듣는 것이 다였다. 몇 년 전, 지인을 통해 이 단체가 건물을 세우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막연하게 아, 그래 이런 공간 하나 정도는 있어야지 생각을 하며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작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 여파로 공사 자재 비용이 상당히 오르면서 건설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 공간을 완성하기 위해 힘을 보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일정 금액을 후원했다. (사실 후원보다는 대출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10여 년 전, 나는 한 포털 서비스의 온라인 모금 플랫폼을 운영, 기획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전국의 많은 기관, 단체들이 온라인으로 모금함을 열고 유저들의 기부를 받는 서비스였다. 당시 서비스를 운영하는 우리의 미션은 많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사회 이슈를 알리고 참여를 이끌어 내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팀에서는 각 팀원들이 사회의 각 영역을 분담하여 해당 영역의 단체들을 발굴하고, 소통하는 운영방침을 세웠는데, 내가 맡은 영역은 ‘시민사회’였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시민단체들을 직접 만나고, 이야기 나누며 내가 아는 세상이 조금씩 넓혀지던 시기였다.


서비스를 통해 크고 작은 시민단체들이 모금을 진행하였고, 매 달마다 서비스를 통해 모여진 금액은 각 단체로 입금되었다. 단체들이 제출하는 서류를 통해 자연스럽게 각 단체들의 후원 계좌를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적지 않은 단체들의 계좌 예금주가 한 단체의 이름이었다. 장애인, 여성, 성수소자, 이주노동자 등 소수자의 인권을 대변하는 작은 단체들의 몇 안 되는 활동가들은 활동만 해도 바빠 행정 업무를 하기 힘들다. 일정 규모의 예산과 사업 실적이 되어야 가능한 ‘기부금영수증’ 발급도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것을 대행해주는 곳이 ‘인권재단 사람’이라는 단체였다. 사실 작은 단체들은 ‘신뢰’ 하기 어렵다는 의견으로 지원받기 쉽지 않은데, 그러한 단체들을 ‘믿고’ 자신들의 ‘신용’을 사용할 수 있도록 내어주는 것이었다.


3월에 완공된 그 공간은 ‘인권재단 사람’에서 세운 ‘스테이션 사람’이라는 건물이었다. 그 안에는 누구든 방문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오픈된 크고 작은 공간과 작은 인권 단체들이 입주한 사무실과 인권운동의 주체이기도 한 섬돌향린교회 사무실이 있었다. 이 공간의 취지는 사무공간을 갖추지 못한 작은 인권단체들과 회의하고 모일 공간이 필요한 인권 당사자 커뮤니티들의 안전한 공간이 되어주는 것, 그리고 이러한 작은 단체와 사람들이 같은 공간 안에서 서로 연결되고 연대의 시너지를 내는 것일 것이다. ‘인권재단 사람’은 그전에도 그러한 역할을 해오고 있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공간을 기반으로 더 그 역할을 잘해나갈 것이라 생각한다.


당일 행사의 축하를 가수 신승은 님이 해주었다. 기타 하나를 치며 나지막이 노래를 불러주었는데, 노래 가사 중 한 구절이 마음에 와닿았다.

“난 안전한 우리가 좋아”

내가 있는 이 공간에서 어렴풋이 느꼈던 감정과 연결되어 있어서였을까 계속 이 가사가 맴돌았다. 행사 준비로 시끌시끌한 건물을 기웃거리며 이곳 활동가들과 대화를 나누시는 동네 분들이 생각났다. 건물을 찾아오면서 스친 주택가, 골목길, 가게들, 걸어가던 엄마와 아이, 교복 입은 학생, 작은 카페의 직원, 산책 나오신 할머니가 생각이 났다. 1층과 지하의 건물 밖으로 열린 공간들을 보며 이 마을에서 지역 주민들, 아이들, 인권 활동가, 소수자 당사자들이 함께하는 경험을 하는 안전한 공간이 되는 스테이션 사람의 모습이 상상이 되었다. 가득 기대가 되었다.  


지난해, 일과 직장을 떠나 지역을 중심으로 생활하며 동네에서, 삶 안에서 연결되고 만난다는 것이 개개인의 행동에 있어 얼마나 큰 변화를 자연스럽게 가져오는지 느낄 수 있었다. 서로 다른 영역의 경계에서 일을 하며,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안전하게 대화를 나누는 경험이 쌓이면 얼마나 임팩트 있는 솔루션을 만들어 내는지 볼 수 있었다. 거기에 실제 물리적인 ‘공간’이 있다면, 사실 그 연결의 반은 이미 이뤄놓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 연결되었다는 감각이 쌓이면 연대가 되는 게 아닐까.


나는 내가, 또는 우리가 ‘연결’ 되어 있다고, ‘연대’한다고 느끼는 공간들이 있다.


매주 카레를 끓이고 짜이를 내리고 손님들을 받으며 자원활동을 했던 ‘사직동 그가게’. 티베트 난민을 지원하는 단체 ‘록빠’가 운영한다. 그곳에서 일하는 내내, 그리고 일이 없는 날손님으로 아이와 손잡고 카레를 먹으러 가서도 나는 그 가게에서 자원활동을 하는 지기들과 저 멀리 인도 다람살라의 티베트 아이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함께 연대하고 있다고 느낀다.


대학로에서 저렴하게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는 ‘노들다방‘. 장애인 야학인 ’노들야학‘ 학생들을 위한 구내식당으로 시작한 곳이다. 크고 작은 장애인 단체들과 장애인 야학이 함께 쓰는 이 공간. 업무 미팅을 위해 처음 방문했지만, 이후엔 가끔 들려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신다. 그곳에서 노들다방에서 밥을 퍼주시는 활동가와 입주한 작은 장애인권 단체들과, 옆에서 식사 중인 장애인 분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함께 연대하고 있다고 느낀다.


홍대에서 드물게 미취학 아동 출입이 가능한 라이브 클럽 ‘빵’. 나의 대학 시절부터 있었고, 한때 인디 뮤지션들이 콜드콜텍 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지하는 공연을 매주 진행했던 곳. 많은 클럽이 문을 닫는 어려운 시기에도 여전히 인디 뮤지션들의 오디션을 하고 무대로 올리는 곳. 그 앞으로 지나거나, 가끔 공연을 보러 가면 이 생태계의 잔뿌리가 된 그 공간과 거쳐간 뮤지션들과 함께했던 사회 현장의 당사자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함께 연대하고 있다고 느낀다.


일 년에 한 번은 꼭 방문하는 지리산 아래의 작은 마을 ‘산내면’. 그곳에는 지리산권 지역의 활동가들을 지원하는 ‘지리산 이음’과 연결된 북카페 ‘토닥’, 게스트하우스 ’ 감꽃홍시‘ ’무검산방‘, ’달팽이하우스‘, 커뮤니티 공간 ’들썩’, 목기를 만드는 ‘새벽이네 공방’ 등 많은 공간들이 곳곳에 있다. 뱀사골 단풍을 보러, 지리산의 에너지를 받으러, 보고팠던 친구를 만나러 그곳에 가면 이 마을을 주민들과, 이 지역에서 활동하며 다양한 실험을 하는 활동가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함께 연대하고 있다고 느낀다.


이렇게 말고도 많지. 내가 편안함을 느끼고, 그 공간에 있다는 것 자체가 연대감을 느끼게 하는 곳은. 사람이 모이는 곳. 물리적인 대화와 스킨십이 있는 곳. 안전한 대화를 할 수 있는 곳. 이 공간에 있는 사람은 적어도 어느 한 부분은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곳. 이런 공간에서 연결이 되고 연대가 되는 게 아닐까. 우리 마을 곳곳에 이런 공간이 많아진다면, 우린 좀 더 쉽게 자주 연결되고 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지난 공간 개소식을 보고, 공간 투어를 하고, 또 나와 같은 마음으로 찾아왔던 지인들을 만나면서 이 공간도 그런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마 그런 바람으로 이 건물이 세워져 잘 운영이 되기를 바라는 응원의 마음으로 후원을 했었던 것 같다. 아이의 이름으로 후원을 해서 이 건물 앞 작은 판넬에 우리 아이 이름이 조그맣게 들어가 있다. 그 이름을 보며 이 공간이 우리 아이에게도 안전하고 편안한 공간이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고 생각했다.




고맙다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안녕이라 말하기 난 싫어서 시작이라 인사를 하네.
우울하다는 걸 흠이라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야 말로 흠이야. 난 안전한 우리가 좋아.  
지나가는 계절을 바라보는 너, 아주 느리게 기타를 치던 너. 우린 절대로 달리지 말자.
착한 척이 버거울 때, 네가 첨 만든 노래처럼 드러누워.
코도 뚫고 온몸에 문신을 하고, 같이 걸어 나가자. 다 부시자. 우린 언제가 너의 편이야.
살고 죽는 게 손바닥 뒤집기 같아. 기타 치던 너의 손에 장갑 껴줄래.
소중한 일기를 불러줘서 고마워. 친구가 행복하길 바라는 너의 행복을 바랄게.
네가 행복했으면.

- 신승은 [보내는 편지]
매거진의 이전글 연대, 마음이 반응해야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