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어 보기에 말하면 콘텐츠 덕후, 팩트로 뼈를 때리면 미디어 중독자인 내가 얼마 전 아주 기가 막히게 재밌는 유튜브 콘텐츠를 봤다. 전국 일곱 개 지역(서울, 경인, 강원, 충청, 경상, 전라, 제주)의 대표자들이 한 명씩 나와, 정해진 주제에 해당하는 것들이 자기네가 최고라고 어필하는 난상토론 영상이었다. 첫 화는 바로 ‘대한민국 최강 국밥의 도시는?’이었고, 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국밥이 뭐더라?’를 생각해 보기도 전에 입담 좋은 출연자들의 토크에 빠져들었다. 거를 타선이 없는 29분짜리 영상을 보고 나자 역시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이 생각났다.
국물 러버가 사랑하는 음식 중 빠지지 않는 게 있다면 바로 국밥이다. 국물 러버와 탄수화물 러버를 겸하고 있는 나 또한 국밥류를 격하게 좋아한다. 국밥이란 무엇인가. 한 마디로 정의하면 ‘뚝배기에 담겨 나와 밥과 함께 먹는 뜨거운 국물 요리’ 정도가 될 것이다. 밥이 따로 나오든 말아져서 나오든, 국물이 하얗든 빨갛든, 해장의 기능이 있든 없든 상관없다. 하지만 뚝배기에 담겨 있지 않으면 국밥이라고 부르기 어렵다.
국밥을 시키면 두 가지 방식 중 하나로 음식이 나온다. 공깃밥으로 밥을 따로 주거나 국에 밥을 토렴해 주는 방식이다. 나는 국과 밥을 좋아하지만 뚝배기에 밥을 말아 먹는 건 의외로 좋아하지 않는다. 일단 너무 뜨거워 입안을 데기 일쑤인 데다 국물을 흡수한 퉁퉁한 밥알은 영 별로다. 또 밥을 말아 걸쭉해진 국물도 내 취향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뚝배기 국물 음식을 먹을 땐 먼저 밥을 입안 가득 넣고 국을 따로 먹는다. 건더기의 경우, 젓가락을 이용해 반찬처럼 밥과 함께 씹는 걸 제일 좋아한다.
하지만 예외의 음식이 있다면 바로 콩나물국밥이다. 건더기가 별로 없어 말아 먹을 수밖에 없는 설렁탕도 공깃밥이 따로 나오는데 콩나물국밥만은 꼭 밥을 토렴 해서 뚝배기 한 그릇으로 나온다. 콩나물국밥의 기원은 잘 모르지만 나는 또 주면 주는 대로 먹는 타입이라 굳이 주문하면서 밥을 따로 달라고 하지는 않는다.
콩나물국밥이 생각 날 때 가끔은 집에서 만들어 먹기도 했다.
콩나물국밥을 처음 먹었던 식당은 수란이 따로 나오지 않고 아예 달걀이 뚝배기에 들어가 나오는 곳이었다. 그곳을 자주 찾았던 사람의 권유로 먹게 되었는데, 그가 국밥을 기다리면서 스스로도 굉장히 흥미롭다는 듯이 이런 말을 했다.
“콩나물국밥은 되게 신기해. 콩나물국밥만의 비밀이 있어. 그 비밀은 다 먹고 나면 알게 될 거야.”
무슨 비밀이 있을까. 처음 먹어 본 콩나물국밥은 심심한 게 먹으면 먹을수록 건강해지는 맛이었다. 주재료가 워낙 흔한 음식이고, 놀랄 만큼 맛있지도 그렇다고 실망스럽지도 않은 맛이었기에 특별한 비밀이 예상가지 않았다. 그리고 나를 포함해 함께 밥을 먹은 네 명이 모두 숟가락을 놓았을 때 그가 얘기했다.
“봐봐, 콩나물국밥은 국물을 남길 수 없는 음식이야. 모두 국물까지 다 먹었잖아.”
테이블에 있는 네 개의 뚝배기에는 정말 국물이 남아 있지 않았다. 콩나물국밥을 처음 먹은 일행과 나는 어쩐지 납득이 되고 말았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국물이 맛있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몇 초 지나서야 밥과 국이 함께 말아져 나오는 특성상 다 먹게 되는 거라고 이해를 했다. 그리고 그 비밀에 대해 별생각 없이 몇 년을 지내다 콩나물국밥의 비밀 같은 건 없다는 걸 알게 됐다.
남편과 나는 5년을 연애하고 결혼했다. 3년 차쯤 되었을까.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우리에게도 권태기가 찾아왔던 것 같다. 어느 순간 우리의 일요일 데이트 마지막 코스는 우리 집 아파트 정문에서 50m쯤 떨어진 콩나물국밥집이 되었다. 연애 초기에는 홍대에 있는 맛집이란 맛집은 모두 찾아다니며 주말 하루 동안 세네 끼는 기본으로 먹었는데 주말 데이트의 마지막 코스가 어느덧 4,000원짜리 콩나물국밥이 되고 만 것이다. 연인이 콩나물국밥을 먹는다고 권태기였다는 건 아니다. 문제는 할 것도 없고 먹고 싶은 것도 없으면 우린 서로 “콩나물국밥 갈까?” 하고 저녁을 먹었다는 점이다. 저녁을 먹고 8시가 채 되기 전 헤어지면 나는 집에 들어와 엄마와 주말 연속극을 봤다.
상호명에 ‘전주’가 붙은 그 콩나물국밥집은 먹는 사람이 날달걀을 깨 넣어 먹는 콩나물국밥이었다(사실 수란이 나오는 콩나물국밥을 먹었던 건 다니던 회사 근처의 식당이 유일하다. 회사 사람들과 점심시간에 급하고 먹고 나왔던 기억밖에 없어 특별한 인상을 받지 못했다). 고춧가루 양념이 진하지 않은 잘 익은 깍두기와 마찬가지로 양념이 거의 되어 있지 않은 부추무침, 새우젓, 조개젓이 반찬으로 나왔다. 처음에는 조개젓이 너무 짜고 비려 거의 손이 가지 않았는데 자주 가다 보니 조개젓도 곧잘 먹게 되었다. 나는 가끔 콩나물비빔도 먹었다. 콩나물비빔밥에 딸려 나오는 육수를 먹었을 때 알게 됐다. 이 식당의 콩나물국밥이 건강하면서도 맛있었던 건 역시 육수가 훌륭해서였다는 것을. 육수는 ‘깔끔칼칼’의 정석이었다. 하지만 그런 주말 데이트 패턴이 몇 번 반복되자 맛과는 별개로 나는 콩나물국밥집을 가는 게 괜히 서러워졌다.
그와 콩나물국밥을 먹으며 알게 됐다. 콩나물국밥의 비밀 같은 건 없다고. 가끔 남편은 콩나물국밥을 남겼다. 국물과 콩나물과 밥 모두를. 배가 고프지 않은데 그렇다고 저녁도 안 먹고 헤어지긴 뭣해 들어간 식당이었다. 그리고 또 나를 통해서도 알게 됐다. 콩나물국밥뿐 아니라 모든 국밥은 국물을 남길 수 없다는 것을. 누군가 말한 콩나물국밥의 비밀은 예외가 있었고, 비슷한 범주에 있는 다른 것에도 그 비밀이 적용되었다. 그런 건 특별한 비밀이라고 할 수 없었다.
권태라는 단어와 콩나물국밥은 자극과 거리가 멀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4,000원짜리 심심한 콩나물국밥이 그 시기 우리 사이에 완충지대였을까. 연애 기간이 긴 커플에게 더 이상의 자극은 그다지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 자극의 종류에 따라 오히려 파국을 맞이할 수도 있기 때문에. 차라리 안정적으로 흘러가는 방법을 찾는 게 더 낫다. 콩나물국밥의 비밀은 누군가 말한 그런 게 아니었다. 나에게는 자극을 피할 수 있게 해주는 맛 자체가 콩나물국밥의 비밀이고 특별함이었다.
나와 남편은 4,000원이었던 콩나물국밥이 4,500원으로 올랐을 때까지 그 식당에 갔다. 그 시간이 모두 권태기였던 건 아니다. 권태기를 무사히 흘려보내고 나서는 정말 먹고 싶어서 간 기간도 상당하다. 그러다 결혼을 하고 친정까지 가 콩나물국밥을 먹을 일은 없었고, 친정 동네 근처로 다시 이사를 가서 정말 생각이 날 때 몇 번 먹은 적이 있다. 지금도 가깝다면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먹을 수 있는 맛이다. 국밥 중에서 제일 질리지 않고 자주 먹을 수 있는 게 콩나물국밥 아닐까. 현재 그 식당의 콩나물국밥 가격은 6,000원이다. 서울 시내에서 말도 안 되게 싼 가격인 데다 영양과 맛 모두 훌륭한 곳이다. ‘콩세권’에 살고 있으면서도 그땐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