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라도 5월 매일 쓰기
시 읽는 법에 대한 책(『시 읽는 법』)을 읽고 있다. 시를 인용한 구절이 있는 책을 볼 때면 그렇게 멋져 보였다. 그래서 나도 가끔은 시집을 샀는데 내가 뭘 읽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어 몇 번 펼쳤다가 덮어 버리기 일쑤였다. 그러다 이 책을 보니 시는 참 재미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시인은 새롭게 보는 것에 아주 많은 노력을 쏟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나도 나름 무언가를 발견하고 새롭게 보기 위해 노력하는 중인데…? 글감을 모아 둔 에버노트의 메모가 생각났다.
누런 코
코 속에서 코가 나온다
가래라는 이름으로 입으로 나오던 것이 이제는 코에서 잔뜩 나온다
코에서 나와 물과 함께 세면대에 미끄러져 내려가는 코를 본다
올봄 유난히 콧물이 자주 흐르고 심지어 축농증일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쓴 메모였다. 내 생에 콧물 때문에 고생한 적은 없기에 나에겐 큰 변화였고 발견이었던 것이다. 마무리 짓지 못한 메모를 더 끄적여 보기로 했다.
생애 첫 내시경을 했다
의사는 내게 코 안에 진득한 코가 가득하다고 했다
코 안 사이사이 누런 것들이 보였다
나는 너무 깜짝 놀랐다 내 속을 이렇게 볼 수 있다니
나는 매일 나를 봤지만 내 속을 본 적이 없다
매일 본 내 거죽의 면적은 지구의 몇 분의 몇이나 될까
불현듯 색도 질감도 이제는 뻔한 거죽이 재미없게 느껴졌다
아직 본 적 없는 나는 얼마나 많을까
아니 네가 본 거죽이 너의 다야,라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나이 마흔에 첫 내시경을 한 건 창피한 일이 아니다
일기가 또 다른 의미의 내시경이 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곁에 많이 두고 싶다
이걸 시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시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지 않을까. 내 코에서 나온 누런 코를 보고 시작된 끄적임이 이런 이야기로 끝날지는 나도 알지 못했다. 아무래도 제목은 ‘내시경’으로 바꿔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적어도 나는 쓰다만 메모를 이렇게 마무리할 수 있게 도와준 시『 읽는 법 』저자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또 이런 이야기는 어떨까. 문보영의 『일기시대에』서 본 카프카의 「요제피네, 여가수 또는 쥐의 종족」이라는 소설 이야기다. 요제피네라는 쥐는 노래를 아주 잘한다. 요제피네는 작정하고 ‘노래’를 부른다고 믿으며 찍찍거린다. 다른 쥐들은 찍찍거리는 그녀의 노래를 경청하는데 어떤 다른 쥐가 나타나 찍찍거리며 그녀의 노래에 훼방을 놓는다. 노래를 경청하고 있던 쥐들이 화가 나 훼방꾼에게 찍찍거린다.
“요세피네의 찍찍거림만 노래로 받아들여진다. 그것은 요제피네의 ‘태도’ 때문이다. (…) 그녀는 찍찍거릴 필요가 없는데도 찍찍거린다. 그것은 찍찍거림에서 벗어난 잉여의 찍찍거림이자 (…) 생존과 무관한 찍찍거림이다.”
문보영은 역시(내가 뭐라고) 시인이었다. 시인이 쓴 ‘일기’라는 제목으로 묶인 책에 이런 문장들이 있다니. 그래, 시든 일기든 나는 찍찍거리기로 작정을 했으니 나는 내 작정대로 찍찍거리며 또 그런 의도를 가지고 찍찍거리는 사람들의 찍찍거림 모음집을 더욱 탐닉하면 되겠다. 내 사랑스러운 아이가 돌아오기 전에, 눈여겨보고 있는 찍찍거림 모음집을 사러 얼른 집을 나서야겠다.
/24.05.29.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