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행복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주장하는 개척정신이 꼭, 옳은 것일까?
황팀장님과 장과장님, 교장선생님과 이야기를 하다가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이 나라 사람들은 어떤 것에 행복을 느끼나요?”
그에 대한 대답으로 교장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이 나라 사람들은 그냥 있으면 있는 대로 쓰고, 없으면 없는 대로 굶고 그래요. 딱히 자신들의 상황을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는 것 같아요.”
그 말에 참 아이러니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보기에는 못살고 도와줘야할 것만 같은 사람들이었는데……. 정작 그들은 불편함과 불행을 느끼지 않는다니. 어쩌면 행복과 불행이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니들은 가진 것이 없어도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반면에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인니들보다 훨씬 좋은 환경에 살고 있으면서도,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던가. 어쩌면 한국이 빠른 성장을 이룩한 데는 이런 국민성이 큰 몫을 했을 것이다. 오로지 물질적이고,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성공만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고, 정신적인 가치는 뒷전으로 해버렸기 때문에 물질적으로는 빠른 성장을 이루었을지는 모르지만, 그만큼 상대적 빈곤에서 오는 박탈감을 느끼고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반면에 인니들은 가난할지는 몰라도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행복을 누리고 있었다.
황팀장님은 이렇게 말하셨다.
“참... 저도 NGO에서 일을 하면서 아프리카도 자주 가고 그러지만... 이럴 때마다 가끔 혼란스러울 때가 있어요. 어떻게 보면 이 사람들은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데, 갑자기 어느 날 한국인 의사가 나타나서 ‘당신 당뇨병이야’라고 말을 하는 순간, 자신이 아프다는 것을 자각하고 약을 먹고 걱정에 시달려야하는 거잖아요. 자신이 가진 것에 불행함을 느끼지 않는데, 우리가 자꾸 개발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으니까요. 어쩌면 이 사람들이 우리보다 더 행복한 사람일지도 몰라요.”
행복이란 무엇일까? 오히려 나보다 행복한 사람들에게 개발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조금 회의감이 들기까지 했다. 과연 내가 하는 일이 옳은 것일까?
“아프리카에 갔는데 그곳에 선교사님이 계시더라고요. 하루는 제가 저런 고민을 털어놨어요. 과연 이들이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데 우리가 와서 개발하겠다고 그러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죠. 그런데 30년 동안 아프리카에서 NGO활동을 하신 선교사님들도 그렇게 말하시더라고요. 3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런 고민을 하고 있다고. 가끔은 이런 일을 하면서도 무엇이 옳은지 헷갈릴 때가 있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참 아이러니함을 느꼈다. 우리는 한국에서 항상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을 배웠다. 남들보다 뒤처지는 순간 그건 경쟁에서 도태되는 것이고 실패한 삶이라고 배워왔다. 하지만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어왔던 가치들이 과연 정말로 옳은 것일까?
세계를 다니다보면 시야가 넓어진다는 말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 당연한 것들, 때로는 당연하지 않게 여기던 것들을 행하고 있는 외국인들을 보는 순간, 무조건 내 생각이 옳은 게 아닐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가 아니었다. 시간과 공간을 달리하면서 사람들이 믿는 정신적 가치, 아름다움, 인권이 달라지듯이, 절대적인 것은 없었다. 단지 차이가 있을 뿐. 어쩌면 지금 우리가 말하는 개척정신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혼란스러워졌다.
다음 날 인니 친구들을 만났을 때, 나를 보며 웃는 이들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내가 이들에게 준 것이 단지 물질적인 풍요만은 아니기를……. 이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행복하게 해주었기를 바랐다. 나와 함께 웃는 이 시간들이 그들의 기억 속에 아주 작은 조각으로나마 남기를 바랐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짧았던 3개월간의 인턴이 끝난 가운데서도 자꾸만 머릿속을 맴도는 것은 바로 이런 아이러니였다. 과연 행복이란 무엇일까. 단지 부유함이 행복의 척도가 될 수 있을까. 지금까지 내가 믿어온 가치가 옳은 것일까. 내가 이들보다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들의 삶은 지금 그 자체로 행복할지 모른다. 내가 이들에게 주장하는 개발이라는 것이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었고, 오염된 물을 마시고, 병든 채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들을 도와야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이들을 도우러왔다는 것. 비록 이들이 생각하는 행복과는 조금 다를 지도 모르지만, 나는 나의 일을 묵묵하게 수행하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일이고, 내가 이곳에 온 이유였다. 그렇게 생각하자 답답한 마음이 조금 가시는 듯 했다. 만약 후에 이 시간을 되돌아보았을 때 후회와 아쉬움만으로 남게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써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계속해야만 했다. 아낌없이 모든 것을 쏟아 부었더라면, 후에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적어도 나 자신에게 떳떳할 수 있을 테니까.
끝으로
짧았던 3개월간의 인턴쉽이 끝났다. 처음에 도착했을 때 정환형 교장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이 기억난다.
“3개월이면 금방이에요. 조금 정들려고 하면 한국 가버린다니까요.”
그때는 그 말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3개월이 끝나고 난 뒤에, 다시 그 말을 생각해보니 정말로 사람들과 정이 들려고 하는데 한국으로 와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처음으로 떠나는 해외봉사였기 때문에 부족한 점도 많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 지난 3개월을 되돌아보았을 때, 나는 후회 없이 나의 일에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이 정말로 행복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과거의 나는 항상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며, 왜 우리 부모님은 나에게 부유한 삶을 물려주지 않으셨나, 그렇게 한탄한 적도 많았다. 그러고 보면 나는 항상 모든 것이 불만이었던 것 같다. 왜 나는 이런 얼굴로 태어났나, 왜 나는 머리가 남들보다 좋지 않을까, 왜 나는 이것 밖에 못하나, 왜 우리 집은 부유하지 않을까. 나의 노력으로 바꾸기에는 모든 것이 너무 힘겨워보였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에서 나는 깨달았다. 단지 한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그들보다 안락한 삶을 살았다. 항상 나는 위를 올려다보며 나 자신을 불행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나보다 못한 이들도 많다는 사실을, 그런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NGO인턴쉽을 하는 사람들은 분명 각기 다양한 이유로 봉사를 자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가장 큰 목표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문화를 느끼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인턴쉽은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정말이지 많은 인니들과 어울리며 생활했다. 그들의 언어를 배우고, 그들의 삶 속에 아주 조금이나마 스미어들었다.
인니들은 정말이지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행복은 우리의 삶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돈이 많고, 적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항상 남들과 나를 비교해왔다. 스펙 경쟁 사회 속에서 다른 이들에 비해서 부족한 내 모습을 보며 한없이 불안함에 떨고, 무수히 많은 밤을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만 같은 외로움에 떨었다. 늘 입버릇처럼 작가가 되겠다고 말했지만, 5년을 노력하고도 남들보다 성공하지 못하면 어떻게 할까 두려움에 떨었다. 남들 앞에서는 당당한 사람처럼 겉으로는 자신감에 차서 말을 했지만, 속으로는 그 누구보다 불안함에 떨고 있었던 것이 나였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에서의 경험은 그런 나에게 위로가 되어주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성공하느냐, 성공하지 못하느냐가 아니었다. 정말로 내가 바라는 일을 삶이 다하는 날까지 할 수 있느냐 였다. 비록 나는 남들보다 성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남들처럼 안락하고 편안한 삶을 살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루하루 힘겹게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살아갈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나보다 가난하게 살지만, 나보다 더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도 많았다. 내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세상은 천국처럼 행복한 곳이 될 수도 있고, 지옥처럼 불행한 곳이 될 수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가짐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는 알 수 있다. 내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면서,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던지 간에 나는 더 이상 외로움과 불안함에 떨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짧았던 3개월간의 추억을 뒤로하고 나는 또다시 내일을 향해, 그 누구보다 치열한 삶을 살아보고자 한다.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꼭 발전하는 것이 아니었다. 내 스스로가 만족을 느낀다는 것. 그것이 바로 행복이 아닐까.
인턴쉽의 기회를 주신 김장생교수님, 정환형 교장선생님, 황정인 팀장님, 장영수 과장님
같이 일을 했던 현가람, 민은송 교관.
농군학교 직원들 주미란 아저씨, 안디 아저씨, 뺀디.
리스마 중학교 아이들, 까랑빠빡 마을에 사는 모든 아이들.
국제학교 직스의 선생님들과 학생들
항상 NGO를 통해서 봉사를 하러 가면,
정작 내가 남을 돕는 것보다, 남들에게 내가 더 많은 것을 배워서 온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 말의 뜻을 이렇게 깨닫게 될 날이 올 줄은 몰랐습니다.
좋은 경험과 좋은 추억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