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랑빠빡 마을의 가장 큰 행사 - 손으로 물고기 잡기!
1년에 한 번 있다는 까랑빠빡 마을 행사에 참여했다. 우리는 20개의 상자에 생필품을 담아서 선물을 준비했다. 마을의 극빈자들에게 나누어줄 선물이었다.
차를 타고 가자 마을 입구에서부터 퍼레이드가 시작되고 있었다. 옷을 차려입은 채로 깃발을 휘날리는 기수단과 신나는 음악을 연주하는 악단, 온갖 음식을 담은 가마와 그 뒤를 따르는 마을 사람들, 다른 마을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버스들도 하나 둘씩 좁은 도로를 지나가고 있었다.
무슨 축제인지 알 수 없었지만, 우리가 도착한 곳은 추수가 끝이 난 거대한 논이었다. 이곳에서 지금까지 Karangpapak 마을에서 봤던 사람들을 모두 볼 수 있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을 보았다. 오늘 축제의 주제는 <Ikan menangkap> 바로 물고기 손으로 잡기였다.
시작을 알리는 소리와 함께 인니들이 논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이번 행사의 특이점은 자신이 잡은 물고기는 집으로 들고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먹을 것이 부족한 마을이었기 때문일까.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모두 물고기를 잡는데 혈안이 되어 마구 달려 나갔다.
논은 깊지는 않았으나 흙탕물이었고 밑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일까. 물고기가 조금이라도 있다는 기척이 보이면 마치 원시부족들이 사냥이라도 하듯이 마을 주민들이 우르르 몰려갔다. 이들 사이에서는 양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고, 오로지 손으로 물고기를 잡는 사람에게만이 집으로 들고 가서 가족과 먹을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다.
또 잠시 뒤에는 장대를 높이 세우기를 했는데, 기다란 대나무로 되어있는 장대의 꼭대기 부분에는 바구니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마을 주민들이 낑낑 거리며 거대한 장대를 세우고 있었고, 나는 그들을 도와서 논밭에 장대를 세우는 일을 도왔다. 이 또한 하나의 놀이 같은 것으로 보였는데, 장대를 세운 뒤에 그것을 타고 올라가서 바구니를 떨어뜨리면 밑에 있는 사람들이 주워서 갖는 식의 놀이인 듯 했다.
장대가 어찌나 무겁던지 세우다가 몇 번을 넘어져서 흙탕물에 얼굴을 처박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과 하나 되어 축제를 즐긴다는 것은 왠지 즐거운 일이었다. 비록 우리는 같은 국적이나 인종의 사람은 아니었고,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았지만 이런 사소한 행위에 동참함으로써 동질감을 느꼈다. 이판과 라마, 주미란 아저씨의 아들 슬라맛과 함께 물고기를 잡으러 뛰어다니면서 가까스로 한 마리를 잡아 올렸던 것은 아마 한국으로 돌아가서도 잊지 못할 추억일 것 같았다.
이제 나는 그들의 삶에 점점 동화되어가고 있었다. 인니들도 더 이상 나를 한국에서 온 이방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한 명의 친구로 서스름 없이 대해주는 그들에게 나는 정을 붙여가고 있었다. 하지만 점점 이별의 날이 다가오고 있음에 하루하루가 아쉬웠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나는 이들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 나의 친구이자, 가족 같은 존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