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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채 Oct 18. 2023

다정하고 깊은 포옹뿐


2022년 7월, 불안이 심각한 수위에 다다랐다는 생각에 브런치에 첫 글을 쓰고 네 달을 내리 내 안을 살피며 써내려갔다. 무엇이 나를 자꾸 불안에 잠식 당하게 만드는지 들여다보는 일로 나는 바빴다.


그러다 세 달은 단 한 자도 쓰지 못했다. 남편과 아이들이 계속해서 아팠고, 나는 교통사고를 당해 후유증 물리치료를 다녔다. 당시 남편이 앓았던 질병의 증상이 꽤 심각해서 남편과 두 아들, 세 사람을 그나마 멀쩡했던 내가 돌봐야 했다. 정신없이 네 식구 낫는 일에 골몰한 뒤에는 번아웃 증후군이 몰려왔다.


마지막 글을 쓴 2023년 4월까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던 여러 사건 중 어떤 면은 해소되었고 어떤 면은 현상 유지로 여전히 나를 괴롭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괜찮아졌다는 점이다.


이전까지 내게 글을 쓴다는 것은 기록과 수집에 가까웠다. 되돌릴 수 없는 순간을 아껴 붙잡아놓는 과정. 그러나 이 책을 쓴 지난 1년 나의 글쓰기는 전과 다르게 분명 해소와 해갈, 배출의 과정이었다. 불안과 욕망을 직시하는 동시에 내 안의 고통이 옅어져갔다.


너무 힘든 상황 속에 머물러 있을 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그 시간에서 조금 거리가 생겨야 글로 쓸 수 있다. 그러니 내가 이 책을 갈무리했음은 감사하게도 그 시간이 지나갔음을 의미한다. 끝내 지나갔다.


지난 1년, 몸과 마음에 있어 나만의 균형을 찾는 데 골똘했다. 집. 살림은 아주 잘게 쪼개어 시간이 있을 때마다 틈틈이 하니 훨씬 부담이 줄었고, 집안일 한 가지를 끝마치고 출근하는 것을 아침 루틴 삼았더니 성취감이 늘었다. 나. 일주일에 두세 번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유튜브 채널 〈요가소년〉을 선생님 삼아 요가를 해왔다. 몸이 한결 가벼워지고 호흡을 바로잡자 마음에도 평온이 찾아왔다. 특히 요가는 번잡했던 정신을 다스리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일. 남편은 몇 달 전부터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를 신청해 매일 몇 시간씩 일찍 퇴근하고 있다. 그가 아이들을 돌봐주는 사이 내가 마음놓고 더 많이 일할 수 있게 되었다. 거창한 결과물이 없어 미안하지만 늘 씨앗을 심는 마음으로 정성껏 일하고 있다. 더 많은 제도와 도모와 용기가 엄마, 내향인, 프리랜서들의 불안을 거두어주기를 바라며.


엄마 혹은 내향인 혹은 프리랜서로서 힘든 시간을 겪어내고 있는 이가 있다면 그에게 이 책을 전하고 싶다. 엄마이자 내향인이자 프리랜서인 독자라면 더 반갑게 맞이하고는, 감히 그 시간이 이렇게 지나가리라고 괜찮아질 거라고 속삭여주고 싶다. 마지막 남은 일은 하나뿐, 다정하고 깊은 포옹이다.


2023.07.


좋아했던, 서교동 시절 아이들모먼트 그리고 <불안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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