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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채 Apr 19. 2023

탈서울한 프리랜서, 소도시에 자리 잡기

더 넓게, 더 좁게 자립하는 연습

한 시절 완전히 서울에 매료되어 서울에 관한 책을 썼을 만큼, 나는 서울을 좋아했다. ‘사람은 서울로 말은 제주도로 보내라’라는 말을 무한 긍정하며 이십 대 시절을 서울에서 보냈다.


결혼하며 부산으로 이주했지만, 부동산 투기에 열광하며 난개발된 분위기 속에 정착하고 싶은 맘이 들지 않았다. 그 뒤론 가능하면 아이들이 자연 가까이에서 맘껏 뛰놀며 자랄 수 있는 곳을 찾았다. 그곳이 바로 순천이었다. 순천이 좋아서, 가능한 한 오래 머물며 아이들을 성장시키기로 결심했다.


요샛말로 ‘탈脫서울’이라 표현하면 될까. 나는 서울을 떠나는 동시에, 근무했던 출판사들에서 외주 일을 받아 프리랜서 편집자로 일해왔다. 출판계 성수기 때면 왕창 바빴다가 비수기 때는 종종 일이 없기도 했지만, 지난 6년간 꾸준히 책을 만들었다. 출판 편집자는 내가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한 직업이었고, 여전히 나는 주업을 편집자로 삼고 스스로 잘 맞는 일이라 믿는다. 경제활동의 주요 수입 역시 책방 운영이나 저술 활동이 아니라 편집자 일에서 얻고 있다.





그런데 순천에 자리를 잡기로 결심한 이후로, 나는 종류가 다른 초조함에 사로잡혔다. ‘탈서울’ 때문이었다. 내 경우 프리랜서로 일한다 함은 근무했었던 서울의 직장에서 일감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고로 내가 버는 돈은 서울에서 온다. 몸은 자유로워졌지만 사실상 서울을 떠나지 못한 거다. 반쪽짜리 탈서울은 만약 서울과의 모든 인연이 끊기게 될 경우 내 기반 전체가 흔들린다는 뜻이기도 했다.


요즘은 워낙 사는 지역에 구애 받지 않고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로, 프리워커free worker로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처럼 뿌리가 온전히 서울에만 남아 있다기보다는 전국으로 활동 영역이 확장되는 경우를 뜻했고 그게 진정 건강하고 독립적인 프리랜서라 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러니 나는 서울 밖 세상으로, 더 넓은 방향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또한 반대로 좀 더 좁은 방향으로도 자립할 필요가 있었다. 한 사람의 몸과 마음이 머무는 곳에서 경제적 기반이 함께 자라나야 한다는 의구심이 동시에 든 것이다. 내가 사는 소도시 순천에서 일어나는 경제활동에 이바지하고, 나 역시 거기에서 수입과 긍지를 얻는 것. 이곳에서 내 이름을 알리고, 이곳 사람들과 일을 도모하는 것. 이곳이 나의 자부심이 되고, 내가 이곳의 자랑이 되는 일.


출판계의 일, 서점 주인이나 글쓰기 강사로서 순천 사람들과 궤를 같이할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았다. 순천에 오고 초반에는 의욕적으로 내가 쓴 책과 이력서, 글쓰기 수업이나 북토크가 가능하다는 메모를 어느 도서관 직원에게 전하기도 했다. 그런데 아무 반응도 없었다. 아무런 반응이 없어서 나는 풀이 죽었고 자신에게 혹은 그에게 실망했다.


새 터전에 뿌리를 내려 꽃을 피우고 싶은데, 누구도 이 씨앗에 관심이 없는 것 같아 초라해졌다. 내가 좋아하는 이 소도시에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다면, 더 넓게 영역을 넓히지 못해 훗날 서울에서 오던 일감이 끊기고, 외주자로서 역할이 다하면 나는 뭐가 되는 걸까? 더 좁고 더 넓게 끊임없이 자신을 발신하고 알려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나는 천천히 지쳐갔다.




꼬박 1년 반이 흘렀다. 그러는 동안 지친 마음은 번아웃 증후군을 앓았고, 무기력으로 몇 달, 또 회복으로 몇 달 시간을 보냈다. 브런치brunch.co.kr 매거진에 긴 시간 고통스러운 마음을 배출한 덕에, 책방에서 글쓰기 워크숍으로 함께 글을 쓰는 벗들이 생긴 덕에, 또 불안정한 프리랜서 일의 흐름에 시달리는 대신 뉴스레터로 꾸준히 글을 쓰기 시작한 덕에, 다시금 나 자신으로 살아볼 용기를 얻었다. 지금 내 손에 쥔 것이 결코 열매가 아니라 믿고, 계속해서 씨앗을 뿌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 겨울의 끝, 나를 일으켜 세워줄 새로운 제안이 날아들었다. 4월 말부터 12주간 이웃도시 광양의 도서관에서 글쓰기 수업을 맡아 진행하게 됐다. 소도시에서 자리 잡고 자립하기 위해 꼭 해보고 싶은 일이었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첫 수업을 준비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문화재단에 글쓰기 강사로도 지원했다가 탈락했지만, 괜찮았다. 실패한 자리에서도 훗날 싹이 돋아날지도 모른다는 확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토록 작은 싹을 틔우는 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필요한지, 이제 조금 알 것 같기 때문이다.


앞으로 얼마나 긴 시간, 어떤 노력을 들여야 나 자신으로 독립해 온전히 설 수 있을까?


오늘도 씨앗을 뿌리고 아직 아무것도 돋아나지 않은 땅을 돌본다. “저 여기 있어요!” 손을 들고 기다리는 시간이 흘러간다.



작업실이기도 한 책방에서 편집일을 하며 (서울에서!) 돈을 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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