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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채 Sep 20. 2022

일 육아 살림, 24시간이 모자라

밤이 오기만을 기다려서 미안해

수족구와 열 감기에 걸려 앓는 두 아이를 돌보고, 내가 잇따라 옮아 아프며 꼬박 2주 만에야 다시 일상 궤도에 올랐다. 아이들이 아프면 ‘돌보는 자’의 많은 일상생활은 멈추게 마련이다. 나는 명절 연휴 앞뒤로 책방 문을 계속 열지 못했고, 프리랜서로 작업하고 있는 일들은 모두 아이들이 잠든 밤중에 늦게까지 매달려야 했다. 아픈 아이들이 함께 머무는 집에서는 살림도 속도가 매우 느려져 많은 일들이 엉클어졌다.


24시간이 모자라다. 시간, 늘 시간싸움이다. 해야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많은데 늘 시간만 없다. 시간을 허투로 쓰고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돌보는 자는 늘 바쁘다. 잠깐 아이들과 떨어져 있을 수 있는 시간에만 해치울 수 있는 일들이 있어 발을 바쁘게 놀린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아이들이 비몽사몽하는 사이에 설거지를 해치우고, 어린이집 하원길에 양손 가득 분리수거 쓰레기를 들고 나가 버린다. 그렇게 자투리 시간까지 5분, 10분 모아 살림을 하는데도 할 일이 제법 쌓여 있다.


동시에 욕망도 쌓인다. 침대에 엎드려서 책도 읽고 싶고, 잠깐 앉아서 아무 생각 없이 창밖을 보며 커피도 마시고 싶다. 어제 못 마친 교정지를 펼쳐 글을 다듬고 싶다. 잠들고 싶은 시간에 자고 싶은 만큼 자고 싶다. 아무 행동도 아무 말도 안 하고 시간을 탕진하고 싶다. 그러다 보면 자꾸만 아이들에게 미안하게도, 나는 밤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24시간을 잘게 쪼개어 쓰다보면 늘 ‘쉬는 시간’에는 요원해진다. 시간이 잠깐이라도 생기면 to do list의 무엇이라도 하나 더 끝내고 싶어 달린다. 그렇게 할 일을 다 해치우고 나면 정말 마음 놓고 푹 쉴 수 있는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면서. 그렇게 5분, 10분 아껴가며 일하는 사이, 결국 온전한 휴식은 유예된다.


어쩌면 쉬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 한다며 종종거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잠든 뒤 밤은 쉽사리 끝나지 않는다. 잠드는 게 죄스럽다. 온갖 일거리와 책과 신문 속을 헤매며 뭐라도 얻는 유의미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강박으로 밤을 붙들고 늘어진다. 빈둥대거나 멍하니 시간을 보냈던 건 전생의 일 같다. 아이가 태어난 뒤로는 몸도 마음도 편히 쉴 자유가 없었다.


오늘의 내가 가장 그리워하는 감각은 토요일 아침의 늦잠 그리고 부지런 떤 일요일 아침 극장에서의 모닝커피와 조조 영화. 이제는 내게 없는, 그 시절의 완전한 휴식과 자유. 시작도 끝도 모호한 그 여유를 떠올리며 나는 시계를 본다. 아이들에게 미안하게도, 밤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정확히 말하면 아이들이 잠드는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두 아이 모두 밤잠에 들어야만 자유시간이 된다. 그마저도 모든 상점과 거리까지 잠이 든 늦은 밤이라 할 수 있는 건 집에서 할 만한 일들뿐이지만. 그래도 돌봄으로부터 한결 가벼워지는 순간은 24시간 중 아이들이 잠든 한밤중뿐이다.

(그 밤의 몇 시간마저도 아이들이 아플 때는 온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언제 응급상황이 될까 마음은 늘 곤두서 있고, 자꾸 아이들 방에 가서 열을 재보고 몸을 살펴본다.)


어느 오후 문득, 언제 밤이 될까 시계를 보는 나를 발견했다. 아이들에게 너무너무 미안했고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우리 아이들의 한 번뿐인 순간은 지금 여기에 있는데, 나는 이 아이들이 잠드는 시각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거다. 내 일상이 그렇게 고되었나, 잠시 나 자신을 옹호해보려 했지만, 결국 깨닫는다. 내가 나빴다.


온전히 마음을 나누는 데 시간을 쓰지 못하고, 멀리 있는 시간을 바라보고 있는 나. 그런 내 모습을 한 걸음 떨어져 지켜보니 더없이 쓸쓸했고 우울했고 또다시 한심했다. 수렁에 빠진 마음이 자꾸 고꾸라진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돌보는 사람들' 우울을 본다. 혼자만의 시간을 욕망하는 이들을 가서 끌어안아주고 싶다. 네가 나쁜  아니야. 자연스러운 거야. 한심해하지 . 괜찮아. 울지 . 이기적이지 않아.   있는 말은 뭐라도  쏟아내고 싶다. 물론  말들은 다시금 나를 향하는 것일 테다


그러니 오늘 밤 나는 나를 안고 운다. 

오늘도 24시간뿐인 하루에서 오롯이 나를 위해 쓸 몇 시간을 고대하면서. 

아이들이 잠이 들기를 기다리면서. 

그런 나를 증오하면서.


내가 자주 외는 주문. 밤아 길어져라, 밤아 길어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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