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사람들이 돈을 버는 세상, 그리고 나의 진로 고민
출판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초반, 책임편집을 맡아 진행했던 책 중 팔로워가 수만 명인 작가의 책이 있었다. 팔로워가 많으니 초판은 비교적 쉽게 소화될 거라는 예측으로 출판사에서도 내심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리고 그 책은 예상치보다 훨씬 더 잘 팔렸다. 출간 첫 1년 안에 몇 쇄를 거듭해 찍었다. 담당해서 만든 책이 사랑받으면 기뻐해야 하는 게 당연한데, 그때의 나는 그렇지가 않았다. 배가 아팠다. 그림자처럼 숨어 책을 완성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편집자로서의 자아보다, 나도 내 글을 쓰고 유명해지고 싶다는 열망이 더 컸던 당시의 나는 그저 질투가 났다.
당시에는 ‘인플루언서’라는 표현도 없었기에 ‘파워 인스타그래머’ 같은 말로 팔로워가 많은 이들을 수식하곤 했는데, 몇 년이 지나는 새 인스타그램 열풍을 타고 인플루언서가 급증했다. 다양한 일에 종사하는 인플루언서가 존재하지만, 나와 유사한 맥락에서 창작을 하는 이들의 계정은 자꾸 들여다보게 됐다. 그들을 볼 때면 나는 자주 상대적인 박탈감에 시달렸다.
그들이 작업을 잘해서 유명해지고, 다시 그 유명세로 기회를 얻고 돈을 벌고, 그렇게 계속되는 선순환을 시샘했다. 그들이 일정한 선순환 고리에 들어가 일종의 '부의 추월차선' 같은 것에 오르면, 이따금 자신의 소득을 공개하기도 했는데, 월천! 월 1000만원인 사람이 너무나 많았다. 더구나 삼십 대 중반이 되니 특정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자리잡은 이들이 모두 또래였다. 어릴 땐 나도 더 성장하면 선배들처럼 자리를 잡을 거라고만 막연히 생각했는데, 내가 어느덧 그 선배들의 위치에서 사회생활을 하는 입장이 되어버린 거였다. 그러면 결국 이런 물음이 남았다. 또래인 나는 그동안 무얼하고 있었나? 지금 뭘 하고 있나?
이렇게 평생 진로를 고민할 줄은 몰랐다. 게다가 이렇게 앓듯이 무기력증에 빠지고 번아웃에 시달릴 줄은 더더욱 몰랐고.
2023년에 들어서며 나는 출판편집자로 일을 시작한 지 10년 차가 됐다. 신입 시절에는 "신입이라 잘 모른다"가 허울좋은 핑곗거리였고, 그 뒤로 몇 년 또한 일을 배우고 익히는 단계처럼 느껴져서 늘 즐겁게 일했다. 잘 몰라서, 능숙하지 못해서 실수라도 한 번 하면 한 걸음 물러서면 그만이었고, 나를 대신해서 문제를 수습해줄 선배들이 있었다. 하지만 10년 차라면 다르지 않나. 더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만들고,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 새해 벽두부터 나는 스스로에게 이전보다 더 '잘해야 한다'고 종용하기 시작했다.
즐거운 마음이 한꺼풀 벗겨진 탓인지, 앞선 글(16화)에 적었듯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의 한계점을 자각하기도 했다. 먼저 편집자로서 경제적인 면. 외주편집은 매당 고료가 정해져 있어 수입에 상한선이 그어져 있다. 출판계가 워낙 박봉이라지만, 디자이너도 마케터도 어느 정도 몸값을 불려가며 일하는데, 업계 내에서 상대적으로 편집자들의 편집비 자체가 터무니없이 적게 책정돼 있기도 하다. 특히 외주자들에게는 더 박하다. 내가 아무리 애를 써서 시간을 들인다 해도, 읽고 다듬고 고민해서 카피를 써낼 수 있는 분량이 대강 정해져 있다. 일 년간 한 명의 편집자가 만들 수 있는 책 종수를 폭발적으로 늘릴 수는 없다. 재미 면에도 문제가 생겼다. 많은 경우 편집부 내에서 '분량이 방대하고 손이 너무 많이 가는 번역서' 같은 걸 빼두었다가 외부인에게 주는 것이라, 출판사 내에서 근무할 때처럼 저자와 소통하며 주체적으로 작업하는 기회는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장기적으로 꾸준히 글을 쓰는 창구를 만들고자 시작한 프로젝트도 구독자가 늘 비슷한 인원으로 유지되었다. 그럴 때면 나는 자꾸 거꾸로 질문을 던지고야 말았다. 내가 무언가로 이미 유명해졌다면, 유명한 상태에서 똑같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면 구독자가 얼마나 많았을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은 정답 없는 문제에 나를 빠트려 놓고 괴롭혔다. 그 괴롭힘 끝에서 스스로에 이렇게 물었다. 나는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은 걸까?
정답도 없고 방향도 없는 바보 같은 질문을 계속해서 던지다 보니 나는 결국 중고등학생 때나 대학생 시절처럼 근본으로 돌아갔다. 이런 걸 묻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도대체 무엇이 되고 싶은 걸까?"
아이들을 잘 키우기 위해서 그냥 안정적으로 돈을 벌고 싶어진 건가? 그럼 지금이라도 책방이며 외주편집 일이며 글 쓰는 것이며 전부 그만두고 월급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취직을 하면 되는 거 아닐까? 그게 진짜로 내가 원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나는 무얼 바라는가? 내가 쓰고 싶은 글은 무엇이고, 만들고 싶은 책은 무엇일까? 나는 정말로 그걸 하고 싶은가? 내가 바라는 것은 글이나 책이라는 결과물들의 성취 자체인가? 성취가 불러오는 유명세인가? 유명세가 끌고 오는 부인가?
하필이면 그 무렵, 시리즈 5권 동시 출간이 예정되어 있던 책이 나에서 내부 사람으로 책임편집 담당자가 바뀌었다. 내색은 할 수 없었지만 너무 아쉬웠다. 내 나름 2023년 기대작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일에만 매진하기 위해 비워둔 시간과 마음만큼 큰 구멍이 생겼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의욕이 사라져서 뭘 할 수가 없었다. 마구 잠이 쏟아졌다. 생각이 많아서 우울한 건지 피곤한 건지 어디 몸이 안 좋은 건지 모르겠지만 그냥 많이 잤다. 푹 자고 나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내 생태가 영 좋지 않아 보였는지 짝꿍은 내게 혼자 어디 가서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었다가 오라며 1박 2일의 휴가로 시간을 건네주었다. 의욕이 없으니 아름다운 곳을 찾아 멀리 떠나는 것도 내키지 않아 차로 15분 거리 내, 순천 안에 숙소를 잡았다. 멀지 않은 곳에서 천천히 따뜻한 저녁밥 먹고, 맥주 사들고 숙소에 들어가서 예능 프로그램 하나 켜놓고 아무 생각도 하지 말아야지. 그게 유일한 계획이었다. 그리고 저녁 밥을 먹다가 문득 펼쳐든 책에서 나는 그간의 나를 괴롭히던 생각에서 조금은 놓여날 수 있는 한 문장을 만났다.
"땅콩은 열매이자 씨앗이므로 그대로 심어줍니다."
(하야카와 유미, <이것으로 충분한 생활>, 열매하나, 2021)
나는 내가 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전부 잘하고 싶은데, 시도한 일들에 특출나게 빼어난 점이 없어서 고통스러운 것 같았다. 삼십 대 중반, 이제 막 수확해서 손바닥 위에 열매가 너무 작고 보잘것없어서 실망했던 것이다. 그런데 어쩌면 이대로도 괜찮은지도 몰랐다. 내 무기력과 괴로움이 모두 부질없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것은 마지막 열매가 아니라 무언가의 씨앗인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또 나는 갑자기 괜찮아지는 것도 같았다.
열매이자 씨앗인 것. 열매이자 씨앗...
나는 더 괜찮아지려고 거듭해서 중얼중얼 주문을 외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