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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채 Feb 09. 2023

정신 건강을 위해 SNS를 끊는 사람들

육퇴 후 인스타그램, 내게도 디지털 디톡스가 필요해

"인스타그램을 지우면 좀 나을까?"

저녁 식사에서 이어지던 대화 끝, 내가 남편에게 뱉은 말이었다.


2022년 4/4분기, 내 인생에서 손에 꼽을 만큼 힘든 시간을 보냈다. 코로나를 비롯한 각종 질병으로 인해 남편과 아이들이 번갈아 아팠고, 10월 초 나는 교통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짬짬이 물리치료를 받았다. '나만은 아프지 말자, 내가 엄만데' 되새기며 아침마다 영양제를 입안에 밀어넣으며 버텼던 시간. 힘을 내서 세 사람을 혼자 돌봐야 한다는 맘에 역으로 더더욱 씩씩해져 더 많이 웃고 떠들었던 날들이었다.

 

그래도 한 해는 끝났다 결국. 새해를 맞이하고 친정 가족들과 설날도 보내니 힘들었던 기억은 점차 멀어졌다. 기분도 몸도 한결 개운해져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살림하는 일이 버겁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해결되지 않은 무엇이 있던 걸까? 나는 다시금 무기력한 기운에 휩싸인 채,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몰라 멍하니 멈추어버렸다. 현실에서 도망치듯 자고 또 잤다. 힘이 하나도 없었다.



돌보는 일이 고된 탓도 있었지만, 더 솔직하게 파고들어보자면, 사실 나를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건 나의 일이었다. 그 무력감의 정체는 '뭘 해도 잘 안 풀린다'는 느낌이기도 했다.


부산 해운대에서 전남 순천으로 이사하며 책방을 옮겼고, 북적이던 책방에는 손님이 뚝 끊겼다. 젊은 사람이 워낙 없는 소도시라 그런지 글 쓰기 모임을 열어도 충분히 모객이 되지 않아 수업을 열 수가 없었다. 온라인 판매에 좀 더 골똘해봤지만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는 작은 서점이 워낙 많다보니 특별한 경쟁력을 갖기가 어려웠다.


한 출판사의 특정 시리즈를 염두에 둔 채 쓰고 완성해 투고한 원고는 출간이 어렵다는 회신을 받았다. 매달 에세이를 써서 부치는 프로젝트의 구독자도 1년간 크게 늘지 않았다. 본업이라 할 수 있는 외주 편집은 절대적인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라(어떤 원고를 읽고 다듬는 데는 꼼수가 없고 꼭 그만큼의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며, 원고지 매당 외주 편집비도 정해져 있다.), 더 많이 일하지 않는 한 더 많은 성과를 내기가 어려웠는데, 그 사실 또한 나를 지치게 했다.



시도해본 일들이 그저 잘 안 된 것이라면, 평소의 나처럼 훌훌 잊고 다시 다른 일들에 도전해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더 잘하는 사람들이 자꾸 눈에 보인다"는 점이었다.


나는 10년 가까이 인스타그램을 사용해온 초창기 사용자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페이스북을 쓰던 시절에 인스타그램은 내게 도피처였다. 조용한 곳에서 사진을 올리고 말이 많지 않은 사람들의 몇 장면을 구경할 수 있어 좋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페북 사용자가 대다수 인스타그램으로 넘어오기 시작했고, 스폰서 광고가 하나둘 늘더니 지인들의 게시글을 찾기가 어려울 만큼 늘어났다.


광고만큼 늘어난 것은 또 있었는데, 바로 "인플루언서"였다. 인물 좋고 쇼핑몰 운영하며 돈 버는 인플루언서들은 내 인생에 1도 영향이 없으니 그냥 무시하면 그만이었는데, 글을 쓰고 마케팅, 브랜딩을 하는 혹은 그림을 그리거나 영상을 만드는 등 창작하는 인플루언서에게는 자꾸만 눈길이 갔다. 그들은 정말이지 "잘했다." 흥미로운 콘텐츠를 잘 만드니 나 역시 팔로우하며 그들을 지켜봤다. 한 사람의 팬으로서 그들을 좋아하며.



그런데 그 "팔로잉"이, "지켜보는 일"이, "좋아요"를 누르는 일이, 그들처럼 창작자로서 견고히 자리매김하고 싶은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창작자 인플루언서들은 실제로도 잘 만들었고 크게 사랑받았다. 그렇다면 나도, 하는 일들을 더 성공적으로 해내고, 사랑을 받고 싶다는 욕망이 차올랐다.


영화 <스파이더맨>으로 유명한 미국 배우 톰 홀랜드가 정신 건강을 지키기 위해 SNS를 중단한다고 선언한 기사를 읽은 적 있다. 그가 SNS를 끊은 것은 악플 같은 것을 보지 않기 위한 것이니 이유는 좀 다르지만, 디지털 디톡스, 뭐 그런 것이 내게도 필요한 걸까? 인스타그램을 지우면 괜찮아질까? 문득 거기까지 생각이 가닿은 것이다.


육퇴 후 지쳐 누워 들여다보는 인스타그램, 거기에는 나보다 무엇이든 뚝딱 잘해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고, 그들은 그 능력으로 돈도 훨씬 잘 번다. 그들이 자꾸 보인다. 나는 두 아이들에게 모든 에너지를 내어주고 지쳐 쓰러져 있는데, 그들은 너무나 잘하는구나, 잘 사는구나. 그런 좌절을 날마다 맛보며 밤을 보낸다. 졸다가 그만, 이마 위로 탁, 스마트폰이 떨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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