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이 뭔지도 몰랐던 나, 신문을 읽기 시작했다
나는 ‘심심하다’는 감각이 뭔지 잘 모른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생각만 해도 뻗어갈 상상의 가지가 너무 많고 재밌고 무섭고 흥미진진한데, 심심한 건 도대체 어떤 느낌일까? 대개의 이야기는 나로부터 출발하고, 나 자신에 빠져들어 삶의 의미를 고민하고 것만으로도 늘 긴 시간이 흐른다. INFP의 시간은 자주 그렇게 흘러간다.
보통의 INFP는 긴 시간 동안 ‘나’에 초점을 맞춰 사고하고(바깥세상의 일들은 자주 배제된다), 현실적인 판단보다는 다소 비현실적인 망상으로 사유하기 때문인지, 미래 계획이 없고 경제관념이 없는 편이다(물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을 테지만). 내가 그런 사람이란 사실조차 몰랐는데, 가정을 꾸려보니 그런 줄 알겠더라.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무지 무지한 엄마였다.
단편적인 예로 나는 서른 살이 넘도록 '예금'이 뭔지도 몰랐다. 그래서 수입의 일정 부분으로 적금을 붓는 것 외에 돈은 그냥 '입출금 통장'에 넣어 모았다! 돈은 계속 쌓였지만, 금리가 어떤지 그 돈을 어떻게 굴리며 관리해야 하는지 아예 관심이 없으니, 내 돈은 언제나 입출금 통장에 고스란히 머물러 있을 뿐이었다. 다들 그렇게 돈을 모으는 줄 알았다.
예금이란 목돈을 특정 기간(n개월, n년) 은행에 묶어두는 상품인데, 보통 돈을 맡겨두는 기간이 길어지면 우대금리가 적용되어 더 높은 이자를 받을 수 있다. 수시로 돈을 넣고 빼기 위해 통상 사용하는 입출금 통장보다 금리가 높다. 그 돈을 쓰지 않고(당분간 쓸 계획이 없고) 모아둘 거라면, 기간을 설정해 예금 상품에 넣어두기만 했더라도 훨씬 더 많은 이자를 받을 수 있었는데, 그조차 몰랐던 거다!
나는 엄마가 된 뒤부터 전에 없던 여러 욕망을 품게 되며 불안에 휩싸였는데, 아이들이 생기니 좀 더 안정적으로 수입을 얻고 돈을 불리고 싶어졌기 때문이었다. 아이들 데리고 주기적으로 여행을 다니며 맛있는 음식 귀한 풍경들을 다 맛보여주고 싶었다. 전세 말고 집을 사서 아이들의 학창 시절에 이사를 다니거나 하는 수고로움도 없애고 싶었다. 그런 욕망이 생기기 시작하니 돈이 필요했다.
그런데 주변 부모들을 둘러보니 다들 돈이 많은 것 같았다. 나만 돈이 없는 기분이 들었다. 편집자라는 직업은 워낙에 박봉이니까, 게다가 그마저도 지금은 프리랜서로 일하니까, 당연히 없는 건가 싶다가, 문득 '내가 뭘 너무 모르는 건가?'라는 생각에 도달했다. '나만 없고, 나만 못한다'라는 느낌은 나를 자꾸 불안하게 만들었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전혀 관심이 없으니 '정치'에 대해서만 잘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곱씹어보니 나는 '경제'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었다. 언제나 내가 보고 느낀 세상을 표현하고 시간을 엮는 일을 하는 삶에 자부심을 품고 살아왔는데, 시각을 조금 바꾸니 정말 바깥세상에 대해서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 것 같았다. 절망스러웠다.
가정의 한 축을 이루는 엄마라는 사람으로서 더 멋지게 살림을 꾸리고 싶었다. 소득 최하위는 못 벗어날지라도 적어도 내가 번 돈은 야무지게 굴리고 관리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10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경제 신문을 구독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고 지내야겠다 싶어서였다. 정치 경제에 있어 까막눈이였던 나는 예대 금리차, 파킹 통장 등의 용어를 조금씩 습득하기 시작했다. 눈곱만큼의 관심도 없던 세계를 하나씩 읽어내려가고 있다. 입출금 통장에 그저 넣어만 뒀던 돈을 예금/적금 등 상품으로 나누어 넣고, 끝난 예적금은 이자까지 합쳐서 금리가 좋은 상품으로 다시 예적금을 굴리고... 애초에 큰 돈은 아니지만 예전보다는 훨씬 부지런히 눈을 밝히고 지낸다.
여전히 모르는 게 많고, 돈 잘 버는 다른 또래들보다는 셈에 어둡지만, 나는 노력하고 있다. INFP 특유의 망상력으로 즐겁게 말이다.
박봉의 수입을 쪼개어 모으고 굴리며, 상상 속 나는 아이들과 배낭여행을 떠나고, 그곳에서 우리는 처음 맛보는 것들로 쉴 새 없이 바쁘다. 실수하고 극복하고 회복하며 우리는 자주 웃는다. 망상 속 우리는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본다. 뭐든지 흡수하며 비로소 우리는 우리가 된다.
그런 걸 상상하다보면 입꼬리가 올라가고, 역시, 심심할 틈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