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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채 Jul 23. 2022

돈 못 버는 프리랜서라 대출도 안 돼

INFP 엄마의 고충: 16개 성격유형 중 소득최하위


고등학생 때 처음으로 MBTI 테스트를 해본 뒤부터 지금까지 나의 성격 유형은 쭉 INFP였다. 지금껏 나는 그 사실이 좋았다. '잔다르크형'이라는 사뭇 비장한 느낌도 좋았고, 다른 성격 유형에 비해 훨씬 부드럽고 낭만적인 성향이 '나'라는 사실이 뿌듯했다.


나는 줄곧 나답게 살았다. 그게 내 인생의 자부심이었다. INFP답게 두려움 없이 몽상했다. 출판계에 몸을 담으려는 내게 "10년 뒤에도 출판 시장이 존재할지 고민해봐"라는 가까운 이의 조언에 "10년 뒤에 내가 살아 있을지 죽었을지도 모르는데? 지금 하고 싶으면 해야지!" 하고 당당하게 외치던 자였던 것이다.




그 자부심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 또 그 성격 유형으로 인해 내 삶이 불안하다고 느낀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결혼을 하고, 부산으로 삶터를 옮기고, 프리랜서로 일하며, 책방을 열고, 아이를 낳고,까지 딱 괜찮았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부터 나는 조금 다른 욕망을 품기 시작했다. 그 욕망의 시초는 집이었다.


아이들이 생기니 조금 더 쾌적하고 안정적인 공간을 갖고 싶어졌다. 그 전까지 나는 대한민국에서 집을 갖는다는 것이 상당히 싫었다. '살아가고 추억하는 공간'이라는 본질은 사라지고 광적인 부동산 투기만 남은 아파트 시장이 너무 싫었다. 출산 무렵에도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전세로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마음뿐이었다.


집이 갖고 싶어진 결정적인 계기는 코로나19였다. 어린 아기들이 집에 있으니 우리 부부는 더욱 유난스럽게 코로나를 조심했다. 대형마트/백화점/극장 등 외출, 식당에서 식사, 국내 여행, 친구와의 만남 모두 끊었다. 반경 몇 킬로미터 안만을 오가는 은둔하는 날이 길어졌다. 우리는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늘 아이들이 안쓰러웠다. 온종일 뛰어놀아도 금세 에너지가 차오르는 이 똥강아지 같은 녀석들을 마당에다 풀어놓고(?) 키워야 하는데! 마당... 그래 마당 있는 집!!!

  

도심의 오래된 한옥을 보러다니는 날들


그때부터 우리 부부는 마당이 있는 집, 특히 한옥에 꽂혀 주변 매물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세가 아닌 '매매'라는 옵션이 하나 더 붙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중학교를 마치는 정도까지는 친구들과의 관계를 꾸준히 쌓을 수 있도록 이사를 가지 말자는 생각이었다.


'아파트 키드'인 나는 단 한 번도 주택에 살아본 적이 없고, 성인이 되어서도 주택 매매에 대해 알아본 적이 없는데, 도심에서 멀지 않은 모든 주택이 상상 이상으로 비쌌다. 아파트에 비해 부동산 면에서 가치가 떨어지니 훨씬훨씬 쌀 거라고만 예상했던 거다. 하지만 현실이 어디 그렇게 녹록할까. 땅만 사서 우리가 원하는 집을 새로 짓는 게 어떤지도 한참을 이야기 나눴지만 그 역시 쉽지만은 않았다. 마당 있는 주택을 매매하기. 그걸 파고들수록 우리 부부는 작아졌다.




복권을 사는 일이 드물던 우리 부부는 이 무렵 각자 한두 장씩 복권을 사서 귀가했다. 오늘도 지칠 줄 모르는 두 사내아이를 아파트에서 돌보며, "쿵쿵 뛰지 마! 밑에 집 할아버지가 이놈 한다!!!"를 수도 없이 외치며, 다시 주문을 외듯 '마당 있는 주택, 마당 있는 주택' 하며 복권 추첨일을 기다리는 날이 이어진 것이다.


그리고 절묘하게 그 무렵 MBTI 테스트가 전 국민에게 다시금 유행하며 돌았고, 나는 나의 성격 유형인 INFP에 대한 여러 해석들을 읽으며 웃다가 울다가 요동쳤다. 그중에서도 나를 며칠간 떠나지 않은 한 문장은 이거였다.


[INFP: 16개 성격유형 중 소득 최하위]


맞다. 나만해도 그렇다. 일단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 자체가 기가 빨려서 너무 싫고, 리더가 되어 다른 사람들을 이끄는 것도 부끄럽다. 또 몽상에 강한 대신 현실감각이 둔하니 경제관념도 거의 없다. 돈을 벌면 대강 쓰고 대강 저금하고 끝. 부동산이나 주식, 부업에 기웃거려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일이라곤 늘 "박봉" 타이틀을 단 것들만 혼자서 사부작거리며 하고 있다. 이러하니 '나'라는 INFP가 돈을 팍팍 벌어들일 수가 없는 거다.

 



그러한 지표를 보고 나니, INFP 엄마는 불안해진다. 나는 끝내 이런 사람이라서, 끝끝내 이 정도 소득 수준에 머무는 걸까? 내가 돈 잘 버는 엄마였으면, 한두 해 연봉 뚝딱 모아서 대출도 팍팍 받을 수 있고, 내 사랑하는 두 아이들은 마당에서 뽈뽈뽈 잘도 뛰어다니며 놀 수 있을 텐데, 나는 돈 못 버는 프리랜서라 대출도 안 돼...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인간은 나인 것처럼,

경제적 불안 속을 허덕이게 된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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