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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로진 Feb 03. 2020

아래 위로 잡혀 먹는 날치...우리?

뛰는 날치 위에 나는 군함조

천적을 피해 날아 오르는 날치

 BBC 다큐멘터리에 바닷물고기 날치에 대한 게 있다. 날치는 날개 같은 지느러미가 있어 천적인 황새치가 다가오면 물 위로 치솟아 짧게는 십 수 미터에서 길게는 백 미터 가까이 날아 도망간다. 황새치는 날치를 놓치고 만다. 황새치에 쫓긴 수백 마리 날치가 바다 위로 날아오르며 안심하지만 그 순간을 기다리는 새가 있다. 군함조다. 군함조는 물 위로 솟구친 날치를  잽싸게 낚아챈다. 날치가 군함조를 피하되 그의 부리에라도 닿으면 균형을 잃고 다시 바다로 빠지는데 이때는 황새치가 다시 날치를 쉽게 채간다.      


 날치에겐 날개라도 있지만 날개도 없는 정어리는 더 비참하다. 해마다 7월이면 멕시코의 바하 캘리포니아 연안에 수백만 마리의 정어리 떼가 몰려든다. 정어리를 먹으려는 포식자들은 잔치를 벌인다. 정어리는 먼저 청새치의 공격에 무참히 무너진다. 청새치는 날카로운 부리로 정어리 무리를 흩어지게 한 뒤 상처 입은 놈을 잡아먹는다. 떼가 갈라진 틈을 노려 바다사자가 등장해 정어리를 집어삼킨다. 정어리가 몇십 마리 단위로 나뉘면 어느새 고래가 다가와 한입에 흡입해 버린다. 그 많던 정어리들이 찢기고 상처 입어 몇 마리밖에 남지 않는다. 포식자들은 마지막 한 마리의 정어리까지 싹 쓸어 버린다.


 이런 다큐멘터리를 보면 내 감수성은 바닥까지 내려간다. 어찌 보면 우리 인생은 날치와도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황새치를 피하면 군함조가 기다린다. 아니, 어찌 보면 우리 인생은 정어리와도 같다. 청새치를 피하면 바다사자가 다가오고, 운 좋게 그를 피해도 고래의 입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아닌가? 인간 사회 역시 먹이사슬에 불과하다. 날치나 정어리 같은 먹히는 존재가 있고 황새치나 바다사자 같은 먹는 존재가 있다.      


 ‘가난을 탓하지 말고 운명을 개척해라’ 이런 구호는 부질없이 들린다. ‘날치 같은 존재가 되지 말고 황새치 같은 존재가 되어라.’와 같은 말이다. 마치 고래가 입을 벌려 남은 정어리를 싹쓸이하면서 “좀 더 빨리 도망치는 능력을 길렀어야지”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날치는 황새치가 될 수 없고 군함조는 더더욱 될 수 없다. 정어리가 바다사자나 고래가 될 수 없는 것과 같다.      


 어쩌라고? 날치로 태어났으나 힘을 기르거나, 태생이 정어리지만 잘 피하란 말인가? 다행히 날치에겐 날개가 있고 정어리는 왕성한 번식력이 있다. 날치로선, 뛰어오르되 하늘을 살피고 정어리로선 도망치되 더 많이 알을 낳아야 한다. 인간 사회의 날치급인 나 역시 날아오르더라도 위를 주시하면서 자세를 낮춰야 한다. 인간 사회의 정어리급인 나로서도 오직 더 사랑하며 사는 수밖에 없다. 더불어 날치이자 정어리인 그대들과 힘을 합쳐 함께 생존의 방법을 찾는 수밖에 없다. 먹히는 존재들끼리 우리, 먹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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