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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니차니피디 Oct 29. 2020

가족 필사

정약용의 초서를 따라 하기


강진에 있는 다산초당을 다녀온 후 정약용 선생에 관한 책을 읽어보았다. 유배지에서 아들 학연, 학유에게 보낸 편지를 묶은 <아버지의 편지>에는 아버지의 아들 사랑이 절절했다. 일찍 어머니를 여읜 그는 책으로 위안을 삼으며 세상의 이치를 배웠고 글에 진심을 담아 자식을 교육시킨 것이다. 그의 독서법은 깊이 읽는 정독(精讀), 깨달음을 메모하는 질서(疾書), 중요한 부분을 기록해두는 초서(抄書)로 요약할 수 있겠다. 중요한 문장을 기록하는 초서는 그대로 베껴 쓰는 필사와 같다. 글쓰기 감각을 향상하는 데 필사가 효과적이라고 한다. 자녀에게 읽기와 쓰기의 가치를 알려주려면 다산의 편지를 아이와 같이 읽어보는 것을 권한다.


필사가 글 연습에 도움이 되는 것을 알지만 막상 시작하려니 쉽지가 않았다. 블로그에 서평을 기록하면서 책 속 문장을 옮겨 쓰곤 했다. 기록은 했는데 양만 채우는 것 같았고 손글씨만큼 정성이 담기지 않았다. 하지만 고백하자면, 글씨에 대해서 나는 장애가 있는 사람이다. 군대에서 과도한 훈련으로 척수종양이 생겼다. 수술 후 오른팔에 감각이 떨어져 숟가락으로 밥을 먹기도 힘들었다. 회복이 되었지만 손은 떨렸고 반듯했던 글씨가 흔들렸다.  20년간 떨리는 손을 누군가 알아볼까 두려웠다. 태어날 때부터 악필 인양 일부러 흘려 썼다. 




<아버지의 편지>를 읽고 책 여백에 메모를 하면서 손글씨를 다시 써보고 싶어 졌다. 다산 선생의 가르침을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어 '가족 필사'를 제안했다. 먼저 동네 문방구에서 각자 사용할 노트를 골랐다. 노트의 크기, 색깔도 자기가 원하는 것으로 했다. 아내의 노트는 아이들이 골랐다. 시니는 근사한 노트가 생겨 설레는 마음으로 표지에 이름을 적었다. 시니도 노트 안쪽에 이름을 적었다. 첫 번째 필사 책은 김종원 작가의 <우리 아이를 위한 하루 한 줄 인문학>으로 정했다. 

  

아빠가 먼저 오늘의 문장을 소리 내어 읽고 노트에 적는다. 아이들이 같은 문장을 따라서 쓴다. 끝에는 각자 소감을 한 줄 기록했다. 앞장에 소개한 독서기록장은 내용을 확인하지 않았지만 필사 소감은 꼭 읽어보았다. 같은 문장을 두고 아빠의 감정과 두 아이의 생각에 어떤지 알 수 있었다. 또 아빠보다 권위 있는 작가의 말을 빌어 올바른 인성을 가르치고 마음을 수양할 수 있어 유익하다. 하루 10분만 투자해 배우고 깨닫는 게 있으면 가성비는 최고가 아닐까 싶다. 두 달 동안 책 한 권을 필사했다. 아래는 나의 소감이다.


가족필사 첫 책 <아이를 위한 하루 한 줄 인문학>을 65일에 걸쳐 마쳤다. 시니차니도 아빠와 같은 걸음으로 함께 걸었다. 필사를 통해서 작가의 목소리에 담긴 진심을 느꼈고 시니차니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도 따뜻해졌다. 집현전에 마주 앉아 아빠와 이들은 오늘도 글을 쓴다. 다음 필사는 차니가 제안한 윤동주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이다.     




<시니 생각>

책을 읽고 좋은 구절을 노트에 옮겨가며 나만의 필사 노트를 만든다는 게 신기해요. 이번에 윤동주 시인의 시집 필사로 넘어갔는데 정말 재밌어요.




PS.

아직까지 키보드 자판이 편하다. 고딕체 폰트가 내 손글씨라고 믿고 싶다. 손 필사를 시작하고 다이어리에 일기도 쓰기 시작했다. 마음이 편하고 컨디션이 좋은 날은 반듯한 글씨가 보여 기분이 좋다. 마음이 불안한 날이나 날씨가 흐린 날은 늘 흘려버린다. 그래도 잉크 만년필을 사용하니 단어 하나에도 정성을 담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빠의 손글씨가 반듯해는 날이 올 것이라 믿고 가족 필사를 이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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