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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님 Sep 11. 2019

실업급여는 처음이라.

첫 고용보험센터 방문기.


회사를 16년이나 다녀놓고, 더 이상 골리앗이 내 인생을 좀먹는 것을 방치할 수 없어 제 발로 걸어 나왔습니다.
‘조금 벌고 잘 살기’를 실천하고 싶습니다.
퇴직 후 열흘이 흘렀습니다.


통장에 퇴직금이 입금되었다. 두둑해진 통장으로 든든한 마음보다는 이제 회사가 나에게 ‘진짜 이별을 통보해 왔구나’ 하는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 이 허탈함은 앞으로 닥칠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도 맞닿아 있다.

     

드라마 ‘미생’에서 오 과장(이성민 분)님은 일찍이 이런 명언을 남긴 바 있다.

‘회사가 전쟁터라면 밖은 지옥이다.’


‘나는 이 지옥에서 잘 살아남을 수 있을까?, 누구보다 나약해 빠진 내가.’

     

하지만 퇴사 후, 다시 숨 막히는 사무실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은 ‘위안’ 그 자체로 다가왔다. 그래서 앞으로 나는, 오늘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나만의 방식으로 노력하며 살아갈 것이다.


새로운 인생의 스텝은 아이러니하게도 '실업급여 완전 정복하기' 다. 그간 해보고 싶은 공부도 하고, 새로운 실험과 도전을 하며 퇴직 초기를 채워 나갈 참이다.

     

제도를 알기 전 ‘실업급여’는 퇴직을 한 사람들에게 위로금 조로 주어지는 ‘돈’인 줄 알았다. 그런데 초록창을 통해 알아보니, ‘퇴직한 사람이 구직활동을 하는 동안 일상생활이 가능하도록 정부에서 지원해 주는 비용’이었다.



실업급여를 받는 절차는 이러하다.

① 워크넷이라는 사이트에 들어가 이력서를 작성하고 구직등록을 한다.

② 고용보험 홈페이지에 들어가 회원가입, 공인인증서를 등록하고 수급자격 신청자 온라인 교육을 받는다.

③ 가까운 고용센터에 방문해 수급 자격 신청을 한다.

④ 수급자격 신청일로부터 2주 후, 고용센터에서 정해주는 날짜에 가서 집체교육을 받는다.

   (집체교육일은 연기가 가능하다. 단, 지정일로부터 2주 내)

⑤ 구직활동을 했다는 증명을 1달에 두 번 방문이나 인터넷을 통해 제출해야 한다.

     

2단계까지는 집에서 오랜 시간을 들이지 않고 처리할 수 있었다. 이력서 등록과 구직신청 절차는 매우 간단했고, 사이버 교육은 1시간쯤 걸렸고 딱히 어려운 점은 없었다.

     

이제 고용센터에 방문할 차례. 고용센터 방문도, 실업급여도 처음인지라 괜한 두려움이 앞섰다. 하지만 나는 시스템의 힘을 믿는 편이다. 실업을 한 많은 사람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곳인 만큼 그곳에 가면 ‘내가 알지 못하는 실업급여의 세계’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겠지 하는 기대가 있었다.


오후 4시 30분이 되어서야 집을 나섰다. 태풍 링링의 흔적이 미처 다 지워지지도 않았는데 많은 양의 비가 내리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비가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정류장에 내리자 비는 더 억수같이 쏟아져 내렸다. 지도 까막눈이라 티맵을 켜고 고용센터로 가는 동안 이미 두 발은 거리에 넘치는 빗물로 완전히 젖어 있었다.

     

‘실업급여를 받으러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구나’

     

혼자 괜한 생각을 하며 티맵이 일러주는 대로 가다 보니 고용센터 건물이 눈앞에 나타났다. 실업급여를 받으러 간다는 것은 곧 실직을 의미하므로, 저 문을 열고 들어서면 사람들이 많은 도움을 줄 것 같다는 생각을 출입문을 열기 직전까지 하고 있었다.

     

도착시간 5시 20분. 문을 열고 들어간 공간은 내가 상상하던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구청이나 마을주민센터 느낌보다는 ‘은행’이나 ‘취업박람회’의 느낌이 더 비슷하다고 할까. 네모난 파티션 속에 직원들은 하나같이 지루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퇴근시간이 다 되어 방문한 탓이었을까. 고객이라곤 나 하나뿐이었다.

     

‘뭐지? 번호표를 뽑아야 하나.’

 한때 별명이 ‘어리바리’였던 나는 일부러 더 어리바리한 척을 했다.


그러면 누군가 다가와

 “무슨 일로 오셨나요?”

라고 물어 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원들은 교묘하게(?) 나를 모른 척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는 수 없이 어리바리 모드를 그만두고 번호표 발급기를 찾아냈다. 번호표를 뽑자 ‘딩동’하는 호출음이 들렸다.


창구에 가서

“수급자격 신청을 하러 왔는데요.”

라고 사전에 학습한 사람답게 말했다.

     

담당 직원은 서류 한 장을 주며 주소와 인적사항, 연락처, 퇴직 사유와 날짜 등을 적으라고 했다. 아주 간단하게 기재가 끝나고 나서 몇 가지 질문을 한 뒤 회사에서 아직 상실신고서와 이직확인서를 근로복지공단으로 보내지 않은 것 같으니 담당자에게 요청하라고 했다. 그리고 한 장의 종이를 주며 9월 24일까지 집체교육을 받으러 오라는 말을 남겼다.  절차는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제가 그 날은 지방에 있을 것 같아 참석하기 어려운데 어떻게 하죠?”  

 라고 물으니, 1층 2번 창구에 가서 물어보란다.


주섬주섬 일어서려다 ‘실업급여’에 대해 조금 더 알 수 있을 거라는 나의 기대가 충족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어서서 수급자격 신청을 했는데 승인이 나지 않을 수도 있냐, 실제 수령금액은 어느 정도가 되겠느냐 라고 질문을 했더니, 희망퇴직은 대부분 인정이 된다, 금액은 고용센터로 서류를 검토해 보아야 알 수 있다, 라는 대답을 남겼다.


전반적으로, 아주 귀찮은 기색이 역력하다. 물어보는 것만 억지로 대답해 주는 태도다. 여기서 더 건질 것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주섬주섬 우산을 챙겨 그가 말했던 1층으로 내려갔다. 역시 번호표를 뽑아 해당 창구로 갔다.


아까 2층에서 건네받은 서류 종이를 내미니

“뭐 때문에 그러시는데요?”  

라는 질문이 날아왔다.


“아, 9월 24일에 집체교육을 오라고 하는데, 제가 그날은 일이 있어 못 올 것 같아서요.

혹시 날짜 연기가 가능한가요?”

     

“9월 24일로부터 2주간 아무 때나 오시면 되세요!”


‘엥?’ 아무 때라고? 내가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자 그녀는 한마디를 보탰다.

“거기 적힌 시간 아무 때나 오시면 되세요!”


종이에는 출석시간이 10시 30분이라고 되어 있었다.

     

다시 한번 확인 차 물었다.

“9월 24일부터 2주 이내에 이 시간 아무 때나 오면 된다는 말씀이시죠?”

     

“네”

2층 직원과 마찬가지로 아주 귀찮다는 듯 억지로 한 대답이었다.


느낌 알죠? 더 물어보면 화낼 것 같아서 알아서 대화를 마치게 되는 그 느낌적인 느낌!

     


네네, 하고 돌아서며 생각해 보니 2층 직원은 이 간단한 대답을 들으라고 나를 1층으로 보내 번호표까지 뽑게 만든 걸까?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맡은 업무의 영역이 조금 다르다고 할지라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이 구역 시스템 되게 구질구질하네.'

     

속으로 생각하며 건물을 빠져나왔다. 그곳에 20분도 머무르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아까보다 빗줄기는 조금 약해져 있었다. 고용센터 방문으로 많은 정보를 알아낼 수 있으리란 기대가 사라져 버려서였을까, 괜한 허탈감이 들었다.

     

친한 언니 1과 친한 언니 2는 실업급여와 육아 휴직급여를 받는 과정에서 담당자와 크게 다툼이 있었다고 했다. 둘 다 담당자가 너무 무례하다는 이유였다고 했다. 고용보험이 내걸고 있는 이름이 ‘고양복지플러스센터’인 점을 생각해 보면, 내가 눈으로 직접 본 이들의 태도도 전형적인 복지부동 자세를 보이는 공무원, 더불어 싫어증(일하기 싫어)에 걸린 직장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친구들의 단톡 방에

“어디 한번 걸려봐라. 길을 비켜라 민원왕 나가신다.”

라는 메시지를 남기며 아쉬움을 결의로 바꿨다.

     

‘실업’이라는 일생의 기로에 선 이들은 사회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나약하다.  서비스 질을 좌우 하는 것은 '태도'가 되기도 한다. 과잉된 친절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공적 서비스를 받기 위해 찾아온 고객을 대하는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주길 바랄 뿐이다.


“100만 실업 시대, 당신들은 국민들에게 제대로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가?”

     

그들에게  묻고 싶은 하루였다.


# 실업급여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됩니다.


   추석연휴 행복하게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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