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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 정 Jul 30. 2024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24.7.28. 여름 야생화의 절정 소백산 도솔봉에서 김민기를 추모함

숨이 턱 막히는 무더위 때문만은 아니다.

한주 내내 기분도 에너지도 바닥이다.  


2024.7.21.

늘 영롱할 줄 알았던 아침이슬 김민기가 '서러움 모두 버리고' 떠났다. 

  

의예과 1학년 신입생 환영회 때 잔디밭에 둥글게 둘러앉은 학우들 앞에서 아침이슬을 불렀다.

교회 안 개구리였던 내가 찬송가 외에 유일하게 기타 반주가 가능한 곡이었다.

그날 이후 매캐한 최루가스 가득한 캠퍼스 곳곳에서 들려오는 그의 노래들은 내게는 운동권 가요, 그 이상이었다. 


친구, 상록수, 백구, 작은 연못... 의 단순하면서도 소박한 멜로디와 가사는 어리숙한 청년을 위한 동화이자 알듯 모를 듯 고급진 메타포였다.


"땅 위엔 조용필, 땅 아랜 김민기"라고들 했다.  


https://youtu.be/2s65auq3v2I?si=HGgMutlEfoy8H89E



전라도에서 민통선에서 농사꾼으로, 태백에서 광부로 지내기도 했던 그가 어린이 노래극을 거쳐 지하철 1호선의 연출가로 활동한다는 소식들이 반가왔다.     


대학로 바로크 레코드에서 맘먹고 구입한 어린이 노래극 개똥이 LP속 <날개만 있다면>, 들을때마다 눈물이 날려해 자주 듣지 못한다.      


https://youtu.be/A8PubQxHnus?si=p6zbDV8C22se9nLG



한 해 두 해 나이를 들이다 보니 젊은 날 좋아라 했던 뮤지션들의 죽음을 불현듯 접하게 된다.


유재하, 김광석, 레너드 코헨의 노래들은 죽음 이전과 이후가 확연히 다르다.  

분명 동일한 음원임에도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인격체의 '홀로 남겨진' 소리는 뭔가 알맹이가 빠진 느낌이다.    

이제 김민기의 육성을 7월 이전의 느낌으로 듣는 것은 불가능하다.  




7월 마지막 주말, 소백산 도솔봉 여름 들꽃 산행 번개가 떴다. 

가만히 있어도 더운 습기에 숨이 막힐 것 같은 날씨에 등산이라니.


왜솜다리, 솔나리, 도라지모시데, 바위채송화, 동자꽃, 바위채송화 등 귀한 여름 야생화들을 볼 수 있고 하산길 시원한 계곡물을 즐길 수 있다기에 손을 들었다.  


해발  696m 죽령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낮에 나온 반달(단양 죽령 휴게소)

크고 작은 돌틈, 키 큰 나무들 사이 오롯이 자리 잡은 새색시들을 미소로 알현했다.  

1,000미터 이상으로 치고 오르자 어느덧 습기가 빠진 시원한 바람이  등줄기의 땀을 식혀준다.   


왜솜다리
도라지모시대
솔나리
말나리
동자꽃
등대시호
바위채송화


소백산 자락 이름 모를 봉우리에 올라 김민기의 봉우리를 생각했다.

기적처럼 폰의 데이터가 잡혀 그의 목소리를 찾아들었다.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지금 바로 여긴 지도 몰라

(...)

혹시라도 어쩌다가

아픔 같은 것이 저며 올 때는

바다를 생각해'


봉우리에 올라 바다를 생각하라는

다소 생뚱맞은 가사... 

산도 인생도

오르막길이 힘에 부칠 때, 위로가 되었던 그 노래.   


눈가에 차 오르는 습기를 훔쳐내고 다시 도솔봉을 향했다.  


젊은 시절보다 훨씬 성숙한 양희은, 그와는 다른 매력의 한영애, 마지막으로 "할 만큼 했다. 그저 고맙다.."는 말을 남긴 채 아침이슬처럼 사라진 그분의 목소리로 그리움을 달래 본다.  






"어느 기관에선가 신나게 때리길래 신나게 맞는데... 별 이유도 없죠, 없는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사람이 공연히 나를 때림으로 해가지고 나 때문에 죄를 짓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드니까 굉장히 미안해지더라고요. 그 사람한테..."

(1990. KBS방송인터뷰 중)



 https://youtu.be/o6a9lo_pwZw?si=RvbDaygH4E6fZHRS



https://youtu.be/SLsudSug5Vk?si=heBQ11MhUvU1U59b

https://youtu.be/PuieRjQ9k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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