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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케혀 Jun 21. 2019

나는 지방대 졸업생이다 (EP. 1)

우리에겐 미래가 없다.

아버지는 공무원에 도전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자주 말씀하셨다. 남들이 다 알만한 번듯한 회사는 아니지만 그럭저럭 나름 만족하고 다니는 회사가 있었는데도 말이다. tv를 보다가도 당신의 입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공무원은 되기만 하면 장땡이다. 안정적이고 평생 고생 안 하고 살 수 있지 않느냐"라는 말이 불쑥 흘러나온다. 이런 얘기는 들어봤자 스트레스만 받는다. "요즘 공무원도 얼마나 힘든데요. 예전 같지 않다고요." 입에서 쓴맛이 맴돈다. 당신이 시골에서 도시로 올라와 젊은 나이에 가정을 꾸리고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형편없는 환경에서 온갖 고생을 하며 가족들을 위해 일해 왔음을 우리 네 식구는 잘 알고 있다. 자식들은 위험한 기계가 시끄럽게 돌아가는 어둡고 추운 공장이 아닌 따뜻한 온기로 가득 찬 사무실에서 개인 책상에 앉아 서류를 만지며 편하게 살아가길 원한다는 것도. 하지만 우리가 처한 상황과 주변 환경이 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발버둥처도 부와 계급은 딱 그만큼만 다음 세대에 전달되는 듯하다. 왜 우리는 올라가지 못하는 걸까? '복학왕의 사회학'에서 그 답을 찾아보자. 






지방대 졸업생은 자라면서 자본으로 전환될 만한 문화 교육을 집에서 거의 받지 못했다. 지방대생의 기대치가 낮은 것은 부모의 기대가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적극적으로 자녀 교육을 시키지 않는다. (중략) 


지방대 졸업생은 지역에서 대충 해도 괜찮다는 소리를 듣고 자랐다. 그러니 기를 쓰고 죽어라 시간을 장기적으로 투자하지 않는다. 문화자본은 다른 자본도 그렇지만 더 장기적으로 훈련을 받아야 쌓을 수 있다. 지금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문화자본 중 하나는 영어다. 문화자본으로서 영어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재력에 의해 구매되어 긴 학습 시간을 통해 자녀의 몸에 체화되어야 힘을 발휘한다. 어릴 때 외국에 살아본 경험이 있다든지, 하다못해 대학 시절 유학이나 어학연수를 다냐와야 그나마 영어 습득할 수 있다. 지방대 졸업생에게는 이것이 애초에 없거나 있어도 미약하다. 영어 얘기만 나오면 기겁해서 뒤로 물러나는 이유다. 휴학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영어 공부를 핑계로 댄다. 부족한 문화자본을 단기간에 보충해보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문화자본이 하루아침에 쌓일 수는 없다. 


_복학왕의 사회학, 최종렬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상이한 계급 배경을 지닌 학생들이 학교 성적에서 차이가 나는 이유를 문화 자본의 차이에서 기인한다고 봤다. 다시 말해 부잣집 자식과 형편이 좋지 못한 집 자식 간의 성적 차이는 문화 자본의 축적의 차이에서 온다는 것이다. 그럼 문화 자본이란 것은 무엇인가. 


(문화 자본이란 사회적으로 물려받은 계급적 배경에 의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지속적인 문화적 취향을 의미하는 개념이다. 이러한 문화자본은 문자 능력, 교육의 접근권, 문화 예술 생산물의 향유 능력 등 다양한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_네이버 지식백과


단기간 공부를 해서 토익 영어 점수를 올렸다고 한들 외국인을 만나면 벙어리가 되고 말듯이 문화 자본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부모가 자식에게 오랜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투자해야 축적될 수 있는 것이며 무엇보다도 문화자본은 시간이 흘러 한 개인의 능력과 재능을 생산해낸다는 점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문화자본이 부족한 지방대생들의 미래가 어두운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체화된 문화자본은 사실상 계급 재생산의 핵심 고리다. 지방대 부모가 자녀에게 낮은 기대를 갖고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않는 것은 지역의 문제라기보다는 계급의 문제다. (중략) 먹고살기 바빠서 그렇기도 하지만, 애초에 물려줄 자본 자체도 별로 없다. 그러려면 사교육이라도 시켜야 할 텐데 경제 자본이 없다 보니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자녀에 대한 기대를 낮추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다. 최고의 기대는 9급 공무원! 이건 문화자본 없이도 단기간의 집중 노력 끝에 붙을 수 있는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공정한 게임이다. 


_복학왕의 사회학, 최종렬




우리는 동일 선상에서 레이스를 시작했지만 누구는 스포츠카를 타고 있었고 또 다른 누구는 두 발로 뛰어야 했다. 시간이 지나 그 간극은 더 벌어진다. 좁히려고 해도 현실의 벽은 높기만 하고 우울감만 증폭시켜 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경쟁률이 극심하지만 좁은 바늘구멍을 뚫고 나오면 나름 괜찮은 삶이 기다린다. 바로 공무원! 요즘 대기업도 정년이 짧아지고 있다고 하는데 그래도 공무원은 아직 괜찮아 보인다. 조금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으로 공무원이 되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그래서 당신이 공무원을 장땡이라고 했나 보다. 그나저나 공무원은 뭐 아무나 하나.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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