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영을 했었다. 살을 빼거나 특정한 목적이 있어서 시작한 운동이 아니었기에 수영은 그 자체로 재미있었다. 하루 중 제일 기다려지는 시간이었고 강습이 없는 주말이면 홀로 자유 수영을 하기도 했으니까. 초급반에서 중급, 고급을 거쳐 연수반까지 차근차근 실력이 향상되고 있다는 사실에 뿌듯했고 때로는 정체된 실력에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구기도 했다.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있더라도 수영을 할 때만은 잊을 수 있어서 좋았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셀 수 없이 레인을 돌고 나면 내가 살아 있음을 느꼈다.
그런데 어느 날 수영을 하다가 왼쪽 어깨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병원에서는 아무래도 오랜 기간 무리한 운동으로 인해 근육에 염증이 생겼고 치료를 위해서는 당분간은 운동을 쉬어야 한다는 처방이 떨어졌다. 그 순간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수영을 할 수 없는 삶은 어떠할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만큼 수영은 나의 삶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했었다. 그래도 잘 치료하면 곧 수영장으로 복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여러 병원을 기웃거렸다. 한의원에 가서 침도 맞아보고 동네 정형외과에도 가보았지만 안타깝게도 차도는 없었다. 결국 대형 관절 전문병원에 가서 약물과 물리치료를 받았지만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부상으로 프로계를 떠난 선수가 된 것 마냥 부정적인 생각이 나를 옭아맸다. 그럼, 다음 솔류션이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에 담당의사는 수많은 환자를 진료해서 인지 성의 없게 툭 던졌다. "당분간 약물과 물리치료를 계속 병행하면서 치료하는 방법과 환자가 원하면 MRI를 찍어 불 수도 있습니다." (이때 나는 해적에 피랍되어 총상을 입은 석해균 선장을 수술했던 이국종 교수가 나타나서 나의 어깨 x-ray를 뚫어지게 보면서 "문제는 그것이 아닙니다." 하며 즉각 치료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몹쓸 상상을 했던 거 같다.) 결국 나는 자발적으로 MRI도 찍었고 10명 중에 3명 정도는 효과가 없을 수 있다고 하는 충격파 치료까지 마쳤다. 30%에 들어가는 재수 없는 일이 나에게는 잃어 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당분간은 무리하지 말고 충분히 휴식을 취하는 것이 제일 좋다며 두 달 뒤에 내원하라는 여전히 영혼 없는 담당의사의 말을 등 뒤로 하고 나는 병원을 나섰다.
언젠가 엄홍길 산악인의 책에서 '맑은 정신은 건강한 몸에서 나온다.'류의 문장을 읽은 적이 있다. 우리가 잠이 부족하면 하루 종일 좋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없듯 꾸준한 신체 단련 없이는 결코 긍정적인 마인드를 기대하기 어렵다. 다시 말해 마음의 근원은 몸에 있으며 꾸준한 신체단련 없이 마음속으로 다짐한들 저절로 맑은 정신이 생기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깨 부상으로 수영을 쉬게 된 지 벌써 5개월이 다되어 간다. 부상으로 인해 할 수 있는 운동의 폭이 현저하게 준 것도 사실이지만 몸은 언제 운동이라는 것을 했었냐는 듯이 엄청난 속도로 쉬는 것에 적응해 갔다. 스트레스 해소처는 없어졌고 엉뚱하게 다른 데에서 불쑥 폭발하기도 했다. 게다가 목, 어깨 할 거 없이 온몸이 뻐근하고 통나무처럼 굳어 매일 만성적인 피로에 시달리고 있다. 삶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조금씩,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몸을 움직여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라디오에서 들은 내용을 공유한다. 의사가 환자에게 말했다. "다행히 아픈 곳이 점점 나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쉽게 재발될 수 있으니 각별히 유의해야 합니다." "그럼 언제 즘 완쾌될까요?" "무슨 그런 소리를 하십니까? 완쾌는 하나님이나 가능한 신의 영역이지 인간은 다만 관리를 할 뿐입니다." 짧은 시간 동안 치료를 통해 완쾌를 바라기보다는 장기간 관리한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
그간 아직 젊다는 생각에 미세한 몸의 반응에 무감각했다. 이때까지 함부로 몸을 사용한 것에 대해 몸이 파업을 벌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삭발을 하고 아주 장기간. 웬만큼 어르고 달래도 좀처럼 토라진 마음을 돌릴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