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도 전혀
무라카미 하루키가 조그마한 bar를 열고자 했을 때, 그리고 bar에 손님이 늘어나고 장사가 잘 되어 가는데 갑자기 전업 소설가의 길을 걷겠다고 다짐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만류했다. 이런 주변 사람들이 잘 못 되었다고 말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도 어디선가 이런 주변 사람 역할을 하고 있으며 파도에 배가 흔들리듯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 수백 번도 고민을 거듭하며 이리저리 나부끼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니까.
주위의 여러 사람들은 내 결심에 반대했다. 혹은 고개를 크게 갸우뚱했다. 그들은 "가게가 이제 궤도에 올랐으니까 경영은 다른 사람에게 맡겨놓고, 자신은 어디선가 좋아하는 소설을 쓰면 좋지 않은가"라고 충고해주었다. 얼핏 보면 일리가 있는 사고방식으로 보인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아마도 당시 내가 전업 작가로서 살아남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함의 충고를 따를 순 없었다. 나는 가령, 무슨 일이든 뭔가를 시작하면 그 일에 전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정을 못 찾는 성격이다. 가게는 적당히 누군가에게 맡기고, 자신은 다른 곳에서 소설을 쓴다고 하는 그런 재주를 부리는 일은 아무래도 할 수 없었다. 전력을 다해서 매달리고, 그래도 잘 되지 않으면 단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어중간하게 하다가 실패한다면, 두고두고 후회가 남을 것이다.
요즘 들어 드는 생각이지만 어느 한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는 사람들은 주변 지인들이나 가족 또는 그 누군가가 충고나 조언이랍시고 재수 없게 떠들더라고 꿋꿋이 자기의 길을 개척하고 나아간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런 고집스러운 줏대나 그 비슷한 무언가가 없었다면 결코 그 분야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옆에서 누군가가 "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런 짓을 하려고 하니?", "그건 결코 쉽지 않을 거야.", "그건 불가능에 가까워.", "그건 아무나 하는 줄 아니?" 이런 류의 얘기를 한다면 당신은 제대로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얘기를 뱉는 사람들은 당신의 한계나 당신에 대해서 x도 모른다. (부모도 마찬가지다. 학교에 불려 온 부모님은 "우리 아이가 결코 그랬을 리가 없다. 얼마나 착한 아이인데"라고 말하지 않는가.)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결과'는 우리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신의 영역인 것이다. 예측할 수 없다. 자신을 믿고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고 하더라도 노력과는 다르게 결과는 처참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인생을 물로 보지 마라. 인생은 만만한 것이 결코 아니니까) 인간은 무언가를 시도한 후에 결과가 좋지 않아서 오는 후회와 시간이 지나 그때 그것을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후회를 같은 종류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후회를 한다는 것은 다르지 않지만 후회의 깊이는 다르다. 앞에 것은 적어도 미련은 남기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