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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케혀 Oct 12. 2019

5%만 준비되어도 일단 저지릅니다.

영화 '아이엠 어 파일럿' (I am a pilot)을 보고

태풍이 지나가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가을이다.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적당히 기분 좋은 날씨, 수수한 멋을 내고 싶은 날씨다. 하지만 으레 그렇듯 좋았던 시간은 짧다. 곧 목도리로 목을 칭칭 감고 움츠러드는 회색 겨울이 올 것이다.



바람도 쐴 겸 부산국제영화제 초청된 작품 'I am a pilot'을 보러 갔다. 부산에 살면서 영화제는 처음인데 극장 주변에 여러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과 스텝들로 붐볐다. 영화는 제목으로 추측할 수 있듯이 비행기 조종사가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파일럿이 되는 꿈을 이루고자 주인공은 미국으로 넘어가 여러 비행학교의 문을 두드린다. 비싼 등록금을 해결하고자 비행학교의 생활을 영화로 만들어 학교를 홍보해주겠다며 다소 엉뚱하고 문전박대를 당할 것 같은 제안을 하게 되는데 예상외로 학교 측은 KFC 할아버지 같은 미소로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주인공은 목표한 파일럿 자격증을 따기 위해 모든 교육과정에 아주 열심히다. 영화 중간에 '이거 너무 밋밋한데?'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런데 비행기 조종이 무슨 원동기 오토바이 면허와 같겠는가. 계속 꽃길만 걸을 것 같던 그의 길이 살얼음 판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1:1 수업을 하던 코치가 주인공을 향해 "파일럿이 되기 위해 비행 기술을 익히는 것보다 너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영어 공부야!"하고 돌직구를 던지며 수업을 중단하는데 이른다. 이게 무슨 말인가? 미국에서 비행기 조종 자격증을 따려는 사람이 영어를 못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전문 용어가 넘쳐나고 우리말로 들어도 이해를 못 할 것이 뻔한데 영어도 못하면서 어떻게 미국에서 자격증을 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까? 유아인이 이 장면을 봤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어이가 없네" 주인공은 어쩔 수 없이 학교 측에 코치 교체를 요청하지만 새로운 코치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영어를 지적하며 수업을 중단시킨다. 수업, 비행 중 교신 그리고 구술 테스트 등 모두 영어로 하는데 영어가 안되면 한 발짝도 앞으로 내디딜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영화가 끝나 후 영화감독과 주인공이 스크린 앞으로 나와 관객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 관객이 일어나 물었다. "이때까지 많은 도전을 해오셨는데 그 원동력은 어디에서 나온다고 생각하십니까?" 주인공이 답했다. "저는 5%만 준비되었으면 일단 도전하고 봅니다. 그리고 지속하는 과정에서 그 가능성을 높여 갈 뿐입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런 류의 질문과 답이 오고 갔던 것 같다. 나는 그가 실패를 거듭했지만 피나는 노력을 해서 결국 목표한 바를 이루고 말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다. 나에게 있어 이 영화의 핵심은 "5%의 준비"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흔히 얘기한다. "아직 준비가 안되어서... 조금만 더 준비를 하고..." 하지만 지금 안되어있는 준비가 시간이 지나 준비될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이렇듯 우리 주변에는 시작도 못해보고 끝나버린 일들이 차고 넘친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며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완벽하게 준비된 때는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완벽이라는 지독한 강박에서 벗어나 일단 시작하고 보아야 한다. 과정 중에 잘못된 것은 고치고 교훈으로 삼으면 된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 옷에 묻은 흙먼지를 툭툭 털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면 그만이다. 주인공은 영어를 잘하지도 못하면서 미국에 파일럿이 되기 위해 떠나는 객기를 부렸다. 하지만 무언가를 이루어 내는 사람들은 먼저 일의 가능성을 점치기보다는 5%로 준비만으로도 실행으로 옮기는 사람들이지 않을까.




영화 후반부에 활주로에 비행기를 안전하게 착륙시키고 마지막 테스트는 끝이 난다. 비행기를 내리는 교관의 입에서 최종 테스트에 합격했다 얘기가 흘러나올 때 주인공은 마침내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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