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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쮸댕 Dec 29. 2022

2022년 달리기 결산

2,000km 그리고 임신과 달리기


올해의 달리기

올해도 어김없이 달렸다. 우리 집 뒷동산과 여의도 한강변, 그리고 경복궁 일대는 아주 훌륭한 코스였다. 매일 꾸준히 달리기란 어렵고도 쉬웠다. 달리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 페이스는 썩 훌륭하지 못한 데다 마라톤 한번 나간 적 없지만, 이 글은 명백하고 엄연하게도 달리기에 중독된 인간의 기록이다.


2022년 달리기 기록



나의 러닝 역사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달리기를 시작한 게. 기억이 정확하지 않지만 어플 기록에 기대어 보면 2019년부터니까. 약 3년 정도 되었다. 사실 헬스장 트레드밀 위에서 위치가 고정된 채 발만 움직이며 달리기를 한 건 그보다 훨씬 전이다. 아마 다니던 헬스장이 영업을 중지한 그때부터였나 보다. 그래 맞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화되던 그 시점이었다. 뛰는 행위라고는 트레드밀 위에서만 하는 건 줄 알았던 내 두 다리는 그때부터 야외에서 구르기 시작했다.


2019년부터 달리기 기록


혼런(혼자 달리기)과 러닝크루

요즘은 러닝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다 보니 러닝크루도 워낙 많아졌다. 남녀노소 할것 없다. 특히 광화문의 경복궁 일대나 여의도 공원을 거닐 때면 생기 넘치고 젊디 젊은 크루들의 풍경을 자주 목격한다. 도심 한복판의 빌딩숲 사이에서 정장이 아닌 애슬레저 룩을 본다는 건 더 이상 놀랍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뛰고 있다. 뛰지 않는 젊은이가 없다.


그 와중에 나는 늘 혼자 뛴다. 어떤 크루에도 속하지 않는다. 어디서 뛰는 방법을 딱히 배우지도 않았다. 나만의 방식대로 그렇게 3년을 달렸다. 주로 새벽에 눈뜨자마자 달리는 게 루틴이 되어버려서 나와 같은 시간대에 함께 달려줄 크루를 찾지 못했다. 사실 그것보다 혼자 뛰는 게 너무 좋았다. 오롯이 그 시간은 나 혼자일 수 있었다. 코스도 내 마음대로 정하고, 페이스도 그날 컨디션에 따라 변경했다. 힘들면 걷고, 너무 루즈한가 싶으면 냅다 오르막길을 달려버린다.



러닝 BGM

달릴 때 비쥐엠은 늘 다양하다. 어느 날은 K팝 최신곡 플레이리스트에 맞춰 신나게 달리다가, 어느 날은 지난 추억을 회상하며 90년대와 2000년대 사이 발라드에 맞춰 감정에 취해 달리고, 또 어느 날은 평소에 듣고 싶었던 팟캐스트를 듣는다. 무엇을 듣느냐에 따라 페이스가 달라질 수 있겠지만 뭐 그게 중요한가. 빠르든 느리든. 달린다는 그 자체에 의의를 둔다. 심장이 요동친다는 그 사실이 중요하다. 그 무엇도 달리기만큼 내 심장을 뛰게 하지 못한다.


강물을 생각하려 한다. 구름을 생각하려 한다. 그러나 본질적인 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 나는 소박하고 아담한 공백 속을, 정겨운 침묵 속을 그저 계속 달려가고 있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은 여간 멋진 일이 아니다.-<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무라카미 하루키-



임신과 달리기

1년 365일 중 360일은 달리던 인간이 임신을 하면 달리기를 멈추어야 할까.


의사가 아니라서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다. 결코 없다.산모와 태아의 상태에 따라 경우는 너무 다양하니까. 게다가 읽는 자료마다, 보는 영상마다 전문가들의 소견이 다르다. 정확하게 말하면 적당히 '무리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 운동하는 게 태아와 산모의 건강을 위해서 좋다. 하지만 그 무리가 되지 않는 범위라는 게 참 애매하다.


 달리기를 중단할 수 없었다. 달리지 않는 일상은 더 이상 상상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명랑한 은둔자>에서 캐럴라인 냅이 중독 없는 삶이 세상의 고통을 고스란히 느끼는 거라고 했던가, 나는 그 반대였다. 달리기에 중독되어버린 나는 내 안의 다양한 감정과 세상의 아름다움을 달리기 없이 느낄 수가 없었다.


결국 임신 이후 거리와 속도를 조정했다. 매일 6~7km를 달리던 나는 4km에서 멈추었다. 심박수가 160 bpm 이상이 되지 않게 달리기와 걷기를 번갈아가면서 했다. 사실 쉽지 않았다. '러너스 하이'라고 하는 경지는, 30분 이상 뛰었을 때 밀려오는 행복감으로 피로가 사라지고 새로운 힘이 생기는 것인데. 그 감칠맛 나는 경계에서 멈춘다는 건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가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결정이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일반인이 아니다, 보통의 젊은이가 아닌 뱃속에 태아가 있는 임신한 상태이다'라고 줄곧 되뇌었다. 딱 상쾌해질 정도로만 하자라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렇게

임신 중기를 지나고 있다.


초기에 입덧이 심하고 어지러운 때에는 걷기조차 힘들었다. 그런 날은 쉬어가고, 하루가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도했다. 불안한 마음이 엄습할 때는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주변 풍경을 관찰하면서 마음을 다스렸다. 마치 명상을 하듯이. 도로 위에서, 트랙 위에서, 그리고 언덕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다행스럽게도 뱃속의 태아는 너무 건강하게 주수에 맞게 잘 커주고 있다. 나 또한 정체되었다는 우울감 없이 이 과정을 씩씩하게 견뎌내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에세이에 이런 구절이 있다.


만약 내 묘비명 같은 것이 있다고 하면, 그리고 그 문구를 내가 선택하는 게 가능하다면, 이렇게 써넣고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그리고 러너)
1949~20**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물론 나는 매 순간 뛰기보다 걷기도 종종 하는 '절반만 러너'인 신세지만, 두 다리가 건강한 할머니가 될 때까지 뛰기를 멈추지 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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