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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태선 Dec 06. 2020

고양이와 함께 사는 일상 5편

사람들의 선의와 함께 사는 고양이


 12월의 어느 날, 추운 겨울바람을 헤치고 시루와 마루에게 밥을 주러 가니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고양이와 있었다. 시루와 마루와 뭔가 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일단 멀리서 지켜보기로 했다. 아이의 다리에 시루와 마루 둘 다 머리와 몸통을 비비고 꼬리를 세운 걸 보니 서로 친한 것처럼 보였다. 아이는 쪼그리고 앉아서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즐겁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지는 장면을 보고 있으니 절로 아빠미소가 지어졌다. 조금 후, 아이의 부모님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오니 시루와 마루는 호다닥 집 안으로 도망가고 아이는 아쉽다는 듯이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종종걸음으로 부모님께 뛰어가는 아이를 보며, 시루와 마루가 마치 아이가 성장해서 유명해지는 모습을 본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아이가 간 후, 시루와 마루에게 밥을 주기 위해 다가가니 둘 다 야옹야옹 골골 소리를 내며 밖으로 나왔다. 둘의 꼬리가 서있으면서 동시에 바르르 떠는 것을 보니 내가 아이보다 이 둘과 더 친하다는 것을 알 수 있어 기분 좋은 승리감에 도취되었다. 철없는 아이 같았지만 실제 그런 기분이 든 걸 어쩌하리. 아직 내가 보다 더 친하다는 것을 확인한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철없는 서른 살과 고양이가 그곳에 있었다.


 혹시 공기 야옹이라는 행위를 아시는지? 고양이가 소리는 내지 않고 입만 움직여 야옹거리는 행위이다. 사람이 보기에는 입만 벙긋 거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어린 고양이가 어른 고양이에게만 들리는 주파수로 소리를 내는 행위이다. 가끔 입만 벙긋거리길래 혹시나 목이 아픈 건가 싶어 아이를 안고 헐레벌떡 수의사 선생님께 달려가게 만든, 그런 부끄러운 기억과 이유는 모르겠지만 짠한 느낌을 주는 고양이의 행동이다.

 가방에서 아이들에게 줄 밥을 주섬주섬 꺼내니, 아이들이 입만 뻐끔거리며 공기야옹을 하기 시작했다. 귀여운 녀석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사료를 준비해 앞에 놓으니 냄새를 킁킁 맡더니 힘없는 소리로 한 번 야옹거리고 계속 내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평소에 잘 먹는 사료를 눈 앞에 두고 왜 안 먹는지 갸우뚱거리며 계속 사료 그릇을 애들 앞에 가져다 놓으니 다시 한번 냄새를 맡고 몇 알 먹다 말고 배를 보이며 뒹굴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밥을 안 먹는 사실을 잊은 채, 애교 부리는 모습을 흐뭇하게 보고 있을 때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아주머니께서 날 부르신 것이었다.


 아주머니와 반갑게 인사를 하고 서로의 근황을 이야기하던 도중, 아이들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일단, 아이들이 있는 아파트의 경비아저씨께서 아이들을 이뻐하셔서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허락을 받아 혹시나 있을 불상사에 대해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는 이야기와 우리가 아이들을 다른 어른 고양이로부터 케어하는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길고양이가 살고 있는 아파트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많은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이런저런 형태로 도와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예전에 단순히 길고양이라 더럽고 위험할 것이라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중성화도 되어있고, 예방접종 등을 통해 질병에 노출되지 않게 최대한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런저런 기회로 홍보가 되어 보다 호의적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게 되었다는 점이 중요했다.


 하지만 긍정적인 부분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먼저, 오며 가며 많은 사람들이 보다 보니 다들 혹여 길고양이가 굶을까 이것저것 먹을 것을 주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여기서 문제는 사람들이 고양이 밥을 챙겨주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여, 고양이 사료보다는 고양이 간식, 혹은 인간이 먹는 음식을 더러 나눠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시루와 마루가 자극적인 인간의 음식과 고양이 간식에 많이 노출되어 아주머니가 주시는 건강에 좋은 사료를 잘 안 먹게 되었다고 하셨다. 그리고 고양이가 인간의 손길에 많이 노출되어 혹시나 아이들에게 나쁜 마음을 먹고 해코지하려는 사람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는 말씀도 하셨다. 과거, 방송 프로그램에 나왔던 인간을 잘 따르는 길고양이가 다음날 연고도 없는 사람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납치당하는 등의 일이 있었기에 단순한 걱정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물론 이런 일이 과거에 있었다고 하여 아이들에게 접근하는 모든 사람을 막을 수는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걱정이 크다고 하셨다.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런저런 안 좋은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졌지만 그렇다고 나서서 무언가 하기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 상황이었다. 아주머니와 이것에 대한 해결책에 대해 같이 논한 결과, 일단은 아이들 보금자리에 인간이 먹는 음식은 주지 말고, 고양이 간식의 경우 가급적 주는 것을 자제해달라는 종이를 붙이기로 했다. 계속해서 건강하지 못한 음식만 먹는다면 아이들의 건강이 나빠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다음으로 해코지하는 사람들을 경계하기 위해, 경비아저씨와 관리사무소에 허락을 받아 아이들 보금자리에 고양이는 들어가기 쉽지만 인간이 들어가기 어렵도록 펜스를 추가로 설치하기로 했다. CCTV와 같은 방법도 생각해봤지만 실제 해코지를 당하면 CCTV가 무슨 소용인가 싶어 펜스를 선택하기로 한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문구를 붙인 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아이들은 며칠 지나자 원래 먹던 건강한 사료를 먹기 시작했다. 펜스의 경우 이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아이들을 지키는 데 사용되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든든해졌다. 제발 아이들에게 아무 일도 없기를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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