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에서 군마현까지 04

뜻밖의 히루가노고원

by Dali record
오사카 ▷ 코베 ▷ 교토 ▷ 히루가노고원 ▷ 타카야마 ▷ 시라카와고 ▷ 쿠사쯔 ▷아리마온천 ▷ 코베


반도 지나지 않은 여행에서 문득 혼잣말처럼 내뱉었던 말은 아마도

그 시간들을 두고두고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 나에게 했던 말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날들이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면 얼마나 즐거울까."


그리고 당시 기록했던 첫 문장에 조용히 실소를 터뜨렸다. 왜냐하면 또 그 비와호에 있었으니까.

우린 그곳에서 세 번의 밤하늘을 보았고, 이틀을 묵었지만 호텔 외에 다른 곳에는 한 걸음도 옮겨보지 않았다.


그때 조금 마음에 여유를 가졌다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이때의 기록은 무척이나 한적해 보일 수 있겠지만 실상은 정말 바쁘게 움직인 결과물이기 때문에.


비와호에서 기억하는 것이라고는 열리지 않는 호텔 창문으로 봤던 나름의 분위기를 머금은 구름이 가득한 아침의 풍경이었다. 게다가 갈 길이 먼 우리는 아시다시피 바삐 움직였기에 그 풍경마저도 사진을 남기지 않았으면 기억하지 못했을 테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비와호의 호텔에서 우리는 짧고 굵은 잠을 이루었다.

어렴풋이 그곳의 침대가 굉장히 포근했던 기억이 있다.


우리의 여행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히스 씨의 배꼽시계다.

그의 배꼽시계가 울리는 때면 여행에 상당한 지장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재 내 배꼽이 가장 중요해졌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살기 위해 먹는 쪽에 가까웠던 나의 식사가 그를 만난 뒤 인생의 가장 큰 낙을 차지하고 있으니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어찌 됐든 식사를 해치우고는 도시를 벗어나 위쪽으로 계속해서 올라갔고, 우리는 자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하루가 멀다 하고 눈이 펑펑 내리는 추운 겨울에도 화산열로 침엽수의 초록색이 가득한 설산의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짙은 초록에 하얀 눈이 포실포실 내리는 그때의 장관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다음 목적지인 타카야마로 가기 전 우리가 들른 곳은 다름 아닌 휴게소였다. 그리고 마침 그 휴게소가 히루가노고원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멋진 휴게소가 있다니!


그때의 기록에 보면 '이건 정말 복이다.'라고 썼다. 내가 속세에 찌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내가 남겼던 여행 기록을 읽으면서 멈칫할 때가 있는데, 그때의 나는 참. 작은 것에 감사하고 감동했구나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반면 또다시 그곳에 간다면 그런 곳에 간다면 그때와 같은 생각이 들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휴게소를 둘러보니 몇몇 사람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해발 고도가 표시된 포토스폿이었는데 당시에는 주변을 둘러싼 산맥의 풍광을 그대로 볼 수 있었다. 현재는 그때와 달리 뒤로 주차장이 생긴 듯하다. 그럼에도 멋진 풍경을 잃은 것은 아니니 여전히 그곳의 360도 파노라마 뷰는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개인적으로도 마음에 드는 포토스폿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다름 아닌 히루가노고원 우유였다. 우리는 일본 여행을 하다가 농장 우유를 판매하는 곳이 보이면 되도록 들러서 맛을 보는 편인데, 이는 농장 우유를 좋아하는 나 때문이다. 평소에는 잘 먹는 편이 아닌데도 언젠가 들른 농장에서 맛본 우유가 너무 맛이 좋았던 기억에 습관이 된 듯도 하다. 일본에서는 지역 우유를 꽤 많이 볼 수가 있는데 맛을 볼 때마다 미묘한 차이가 느껴지는 것도 재미가 있다. 그때 내가 가장 맛있다고 꼽은 것은 쿠로가와 우유였는데, 아직도 그때의 맛을 느낄 수 있을는지는 확실지 않다.


사실 인기가 더 좋은 것은 따로 있는데, 바로 소프트 아이스크림이다.

아마 여름에 갔더라면 나는 둘 다 맛보지 않았을까 싶다.


휴게소 지붕에는 투명한 고드름이 들쭉날쭉한 길이로 일정해 보이는 거리를 두고는 가지런히 늘어져 있었다. 화분에는 노오랗게 핀 꽃이 고개를 숙인 채 얼어있었다. 그러니까 꽃을 피운 채로 얼어있었다. 이렇게 되면 이 꽃은 더 이상 색을 잃지는 않으려나. 화분에 솜뭉치처럼 담겨있는 눈얼음이 얄궂어 보였다.


왜인지 그곳에서의 자연의 순리는 조금 부자연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원래 너무 자연스러운 것은 가끔 그렇게 보이는 듯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요즘 나답게 자연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걸까. 너무 자연스러워 보이려 노력한 나머지 정작 내 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하지만 내가 이제 와서 나다워지려고 애쓴다면 지금도 어딘가 툭 튀어나와 간신히 매달려있는 그게 결국 어딘가로 데굴데굴 굴러 떨어질 듯하다. 그러니까 소심한 나는 결국 겁쟁이로 전락해 버린 건 아닐까.


새치 염색을 귀찮아하는 겁쟁이와 마이웨이를 자처했던 앗싸의 싸움이 계속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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