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에서 군마현까지 03

교토에서의 하루

by Dali record
오사카 ▷ 코베 ▷ 교토 ▷ 히루가노고원 ▷ 타카야마 ▷ 시라카와고 ▷ 쿠사쯔 ▷아리마온천 ▷ 코베


안개 가득한 코베의 도로에서 너덜너덜 해진 몸뚱이를 이끌고 또다시 비와호에 올라 하룻밤을 묵었다. 그리고 다음날 해뜨기가 무섭게 일어나 아침을 챙겨 먹고 차를 움직였다. 다음 코스는 역시 교토였다.


교토는 일본의 옛 수도로 여행지로 도쿄보다 교토를 선호하는 일본인들이 많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가장 먼저 우리를 반긴 것은 교토역이라는 도로 위 표지판이었다.


참 멀리도 왔다.

야마구치에서 오사카라니!

또 놀랍게도 이제 시작이다.


교토의 도로에 들어서자 옛 수도의 흔적이 느껴지는 듯한 건물들이 보인다. 아는 게 별로 없으니 특별하게 꼽을 수 있는 것도 없지만 일본의 그 옛날 그 시대의 수도를 느낄 수 있는 교토 자체가 특별한 것이 아닐까란 생각을 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보인 것은 마이코 공연장이었다. 온 김에 우리도 공연을 보고 싶었는데 시간이 맞지 않아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시간이 맞았다고 해도 과연 자리가 남아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이코는 교토의 상징이 되었다. 마이코를 게이샤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데 마이코는 게이샤가 되기 위해 준비하는 단계로 마이코가 된다고 해서 무조건 게이샤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교토의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간혹 마이코상들을 만날 수 있는데 분장을 하지 않으면 알아보기 어렵지만 일본인들은 어떻게 알았는지 간혹 몇몇 무리들이 누군가를 졸졸 쫓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걸 또 어떻게 알았느냐 하면 우리도 같이 따라간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공연장에서 나와서는 하나미코지라는 골목에 들어섰다. 하나미코지는 꽃을 보는 골목이라는 뜻으로 꽃은 아마도 마이코, 게이코, 게이샤들을 말하는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왜냐하면 도저히 식물을 보는 곳이라고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에도식 전통이 살아 숨 쉬는 거리인 하나미코지는 옛 건물의 특징을 많이 볼 수 있는데 거리의 모습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온 듯한 기분이 들게 했다.


곳곳에서는 전통적인 무언가를 만드는 등의 체험을 할 수 있는데 나도 그때 하고 싶은 것이 보여서 줄을 섰다가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관두었다. 인기가 많았었는데 뭔지 기억이 안 나는 걸 보니 그만큼 하고 싶지는 않았나 보다.


대부분 이자카야로 보이는 건물이 많았는데, 그중에는 마이코의 공연을 볼 수 있는 곳도 있을 테다. 하지만 현지인이나 인맥이 없으면 그런 호사는 누리기 힘드리라. 아니면 과한 지불의 대가라면 볼 수 있으려나. 이 얘기는 밤에 또 이어하겠다.


어찌되었든 우리의 다음 코스는 여느 관광객들과 다름없는 산넨자카 니넨자카였다.

3넨자카(三年坂)에서 넘어지면 3년 안에 죽고, 2넨자카(二年坂)에서 넘어지면 2년 안에 죽는다는 전설은 유명하다. 들려오는 전설 때문인지 오르는 사람들의 발길이 왜인지 조심스럽게 느껴진 것은 착각이 아닐 것이다.


이렇게 무시무시한 언덕에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이 오다니!

놀라운 일이 아닌가.


양쪽에는 기념품 샵이나 식당, 카페 등이 아기자기하게 줄지어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만 어느 곳이든 사람들이 북적여 자리 잡기가 쉽지 않았다. 우리도 중간에 마음에 드는 카페가 있어 커피도 한 잔 하고, 기념품 샵에서 엽서 따위를 샀는데, 아무래도 유명 관광지이다 보니 다른 곳에 비해 가격대가 높은 편이었다. 대신 조금 외곽으로 나가면 그보다는 저렴하게 같은 물건을 볼 수 있다.


언덕을 올라오는 데 시간이 꽤 걸리기는 하지만 구경하는 재미에 지루할 틈이 없는 곳이었다. 언덕의 끝에는 키요미즈테라(청수사)가 있다. 우리는 청수사 앞에서 사진을 한 장 남기고 신사내부를 한 바퀴 돌고는 내려갔다.


그렇게 또다시 하나미코지를 지나 쭉 내려가다 보면 야자키 신사가 보이는데 역시 관광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우리는 그냥 입구에서 사진만 찍고는 지나쳤다. 아마 지금처럼 신사에서 받는 고 슈인을 수집했더라면 들어갔을지도 모르겠다.


우린 그렇게 관광지를 쓱 돌아보고 간단히 배를 채우고는 긴자를 구경하면서 디저트까지 야무지게 챙겼다. 그리고 어영부영 시간이 지나 밤이 되었고, 우리는 꽤나 멋스러운 밤거리에 매료되어 낮에 갔던 곳을 다시 둘러보기로 했다.


낮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거리였다.

술집에 매달린 홍등마저도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불 켜진 곳은 대부분 이자카야였다. 그렇게 넋 놓고 구경하며 걸어가고 있는데 한 건물로 마이코가 들어가는 모습을 목격하고 말았다. 마음 같아서는 그곳에 너무도 들어가 보고 싶었지만 왠지 가격이 부담스러울 거 같아 고민하다가 발 길을 돌렸다.


하지만 결국 발길을 들이고야 말았다. 또 다른 곳에 마이코가 들어가는 것을 목격한 것이다. 그러니까 그때가 바로 그들의 피크였다! 게다가 우리의 마음을 더 설레게 했던 포인트는 우습게도 화려한 분장의 마이코가 가게의 정문이 아닌 뒷 문으로 들어가는 모습이었다.


"우리가 언제 마이코 공연을 보면서 밥을 먹겠냐. 들어가 보자."


하지만, 마이코 사마를 볼 수 없었다.

마이코 사마를 따라 들어간 우리는 1층의 카운터 석으로 안내를 받았고, 마이코 사마들은 2층의 어딘가로 쓰윽 올라가시고야 말았다.


당황한 나는 직원에게 마이코 상은 볼 수 없는 거냐고 물어보니 이 가게 마이코가 아니고 윗 층 연회장 손님이 따로 불러서 온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쉽게 만날 수 있을 리가 없지.


우리는 자리에 앉았으니 어쩔 수 없이 메뉴판을 펼쳤다. 그리고 당시 대학생이었던 우린 가격에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오빠. 커피나 한 잔씩하고 가자."


런데 저녁 시간에는 꼭 술을 주문해야 한다고 말하는 그 직원은 우리를 무시하고 있다는 걸 숨기기는커녕 대놓고 내비쳤다.


"그냥 나가자."


하지만 상처받은 청년의 치기 어린 자존심은 그곳에서 가장 저렴한 하우스 와인 한 잔과 교토의 전통음식인 오반자이를 주문했다.


운전석에 앉아야 하는 히스 씨는 와인을 마실 수 없었다.


그리고 그의 자존심 울적하지만 눈치 없는 나를 순식간에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다. 사실 나는 그곳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내가 그때 좀 더 눈치를 챙겼더라면 분명 그의 주문을 말렸을 테지만 말이다.


가장 저렴한 메뉴를 먹은 자들의 계산서에는 1만 엔이 넘는 가격이 찍혔고, 배부르기엔 한참 부족했다.


나는 뭘 먹었는 지도 기억나지 않는데 맛이 좋았던 건 기억이 나고, 사진을 보니 와인을 마셨는데 무슨 와인을 마셨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게 교토의 행복을 되찾은 자와 그날 이후 교토를 가장 싫어하는 자의 교토의 밤이 지나갔다.



단지 어슴푸레 기억이 나는 것은 2층에서 들려왔던 악기소리와 웃음소리였다. 분명 그곳에서 마이코 사마들의 화려하면서도 비밀스러운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겠지.


교토 사람들의 고맙다는 말은 고맙다는 말이 아니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교토는 어딘가 폐쇄적인 이미지가 있다. 다만 그때 교토 특유의 억양으로 건네받은 고맙다는 뜻의 오오끼니(おおきに。)는 아직도 내겐 그저 예쁘기만 한 무언가로 기억되고 있다.


또다시 그곳에 갈 계획은 없지만 말이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03화오사카에서 군마현까지 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