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에서 군마현까지 05

히다 타카야마 그린호텔, 여기가 그렇게 좋을 줄 몰랐지.

by Dali record
오사카 ▷ 코베 ▷ 교토 ▷ 히루가노고원 ▷ 타카야마 ▷ 시라카와고 ▷ 쿠사쯔 ▷아리마온천 ▷ 코베


오사카와 코베, 교토를 지나 - 아 비와호를 빼먹을 수야 없지. 어찌 됐든 우리는 어두워지기 전에 타카야마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곳에서도 우리의 관광은 히타 타카야마 그린호텔이 전부였다. 비와호의 호텔과 다른 점은 '관광'을 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다름의 차이는 꽤 컸다.


히스 씨는 고단했던 일정을 보상받으려는 듯 이때부터 우리에게 꽤나 호화스러운 숙소를 찾았고, 엉겁결에 휴게소에서 세수를 하고, 카페인 음료로 연명하던 우리의 여행은 생각지 못한 호사를 누리게 됐다. 게다가 운이 좋게도 마침 호텔 홈페이지에서 하고 있는 새해 이벤트에 당첨이 되어 숙소를 업그레이드받을 수 있었다. 일출을 볼 수 있는 방이었는데, 날씨가 좋지 않아 일출을 보지 못한 것은 그리 아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곳의 메인은 온천이다. 히다 타카야마 온천은 북 알프스에 몇 년에 걸쳐서 쌓인 눈이 녹아 흘러내린 물에서 탄생했다고 하는데, 이곳에는 7개의 원천과 30여 개의 료칸이 있으며, 이 중 6개 료칸에서 독자적인 원천이 샘솟는다고 한다. 다만 객실에 딸려있는 노천탕은 원천이 아니어서 원천을 즐기기 위해서는 대욕탕이나 가족탕으로 가야 한다.


대욕탕은 객실 이용객이 아니어도 요금을 지불하고 사용할 수 있으며, 호텔 투숙객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호텔 입구에서부터 눈에 띄는 넒직한 족욕탕은 온천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건물 바깥에 설치된 족욕탕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으며, 부모들과 아이들이 함께 즐기는 모습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우리도 지나가다 잠깐씩 즐겼는데, 추운 겨울날 아무 때나 즐길 수 있는 온천의 족욕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왜인지 체크인이 오래 걸렸던 기억이 있는데 그냥 기분 탓이었던 게 아닐까도 싶다. 호텔에는 유카타가 5개 정도 사이즈별로 준비되어 있고, 입실할 때 마음에 드는 무늬로 고를 수 있다. 이때 내가 고른 유카타는 연둣빛의 무난한 무늬였는데, 대욕탕 탈의실에서 아주머니들이 자기와 같은 무늬라며 반가워했던 기억이 있다.

유난히 이곳에서 마주친 사람들이 친절하다고 느낀 이유를 나중에야 짐작할 수 있었는데, 한 분이 우릴 보고 신혼여행이냐고 물었던 것이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대부분의 손님이 나잇대가 우리보다 한참 많았고, 20대로 보이는 사람은 적었다. 그러니까 신혼여행으로 묵는 호텔을 어쩌다 온 듯한 추레한 차림의 젊은 커플이 와서 이 호텔에 묵고 있었던 것이다.


어찌 되었든 온천은 즐거웠다. 시설도 깨끗했고, 야외탕도 굉장히 잘 차려져 있어서 손님들이 붐볐지만 한적한 분위기에서 즐길 수 있었고, 안마의자 등도 준비되어 있었다. 그렇게 느긋하게 온천을 즐기고는 호텔 로비를 걷다 보니 화려한 축제용 가마가 전시된 것이 눈에 띄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타카야마 마쯔리는 일본의 3대 축제로 꼽힌다고 한다. 나는 잠시 전시된 가마를 보고 굉장히 화려한 축제의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호텔을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저녁 시간이 되었다. 식당으로 들어가자 직원이 미리 준비된 자리로 안내해 주었다. 테이블에 펼쳐진 종이에는 카이세키 순서가 적혀있다. 순서를 훑어보고는 고개를 들자 자리에서 보이는 창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앞에 놓인 식전주를 마시고는 병맥주를 주문했다.


그런데 웬걸.

맥주병에 히다라는 글씨가 박혀있는 걸 보니 그 좋다는 히다의 물로 만든 것이리라.


이어서 나오는 음식들은 과하지 않고 적당했으며 그 맛은 조금 과하게 맛있다고 할 수 있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 히다규가 있는 호화스러운 카이세키가 아닌가. 마지막으로 나온 샤부샤부까지 남기지 않고 먹은 우린 배를 두드리는 것으로 행복을 과시하며 식당을 나섰다.


"맥주 시키길 잘했다."


"최고의 선택이었어."


우리는 방에 들어가서는 다시 외출준비를 했다. 그린 호텔의 또 따른 자랑이라 할 수 있는 붓산칸(物産館)이라는 곳에 들르기 위해서였다. 사실 유카타 차림 그대로 갔어도 되었는데, 아무래도 촌놈들은 그게 어색했던 모양이다. 아무튼 붓산칸(物産館)은 이름 그대로 타카야마의 특산품이나 기념품 등 다양한 제품들을 구매할 수 있고,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마침 가족탕이 가까운 위치여서인지 예약도 이곳에서 진행하고 있어 들른 김에 가족탕 예약을 하기로 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타카야마의 상징 사루보보 인형이다. 구매도 가능하지만 직접 만드는 체험교실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사루보보 인형을 만들어간다. 사루보보 인형에 자신의 이름을 적기도 하고 소원을 적기도 하며, 직접 얼굴을 그려 넣기도 한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사루보보는 원래 눈코입이 없으며, 나쁜 일을 막아주고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아기 원숭이'라고 한다.



당시 데려온 사루보보 인형은 지금까지 우리 집 현관을 지키고 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사루보보에게 말해야겠다.

'지금이야 사루보보! 행운이 필요할 때라고!'



가족탕에는 타월만 들고 가면 되는데, 없는 경우 유료로 사용할 수 있다. 나는 호텔방에서 미리 갖고 나왔다. 가족탕의 종류는 돌로 만들어진 것과 대나무로 만들어진 것이 있어서 고민하다가 돌로 만들어진 것을 선택했다. 내부는 깔끔하고 필요한 것들은 모두 준비되어 있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노천탕이 있는 곳은 지붕이 없다.

좋았던 점을 꼽자면 무엇보다 프라이빗한 공간이니 자유롭게 드나들며 오래 즐길 수 있다는 것과 눈치 보지 않고 둘이 떠들면서 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그리고 냉장고에 있는 물은 꿀맛이다.

생수를 꿀 맛으로 만들어버린 온천을 즐긴 촌놈들은 아직 침대로 가기겐 아쉬웠는지 또 기어 나와서는 처음 보는 호텔 라운지에 발을 들였다. 투숙객보다는 방문객들이 많았던 건 대욕탕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촌놈들이 가장 차려입을 수 있는 방법은 유카타를 입는 것이었기에 우리는 결국 투숙객이라는 것을 꼭 티를 내면서 창가에 자릴 잡고는 시원한 플로트를 한 잔씩 주문했다. 참고로 나는 플로트라는 게 뭔지도 몰랐고, 몇 번 먹어봤다는 히스 씨의 추천이었다.


라운지의 높은 천장에 매달린 화려한 샹들리에는 창가마저도 빛으로 가득 채웠으며, 그랜드 피아노 앞에는 턱시도 차림의 연주자가 앉아 고상한 클래식을 연주하고 있었다. 나는 어느새 연주자가 4곡을 돌려가며 연주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우리가 얼마나 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 지를 되돌아보고는 플로트가 담긴 잔의 바닥을 기다란 스푼으로 긁어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졸리다.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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