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민 Oct 20. 2020

코로나 시국 퇴사 결정을 하게 만든 회사의 못난 점

퇴사 잘한 듯

퇴사를 결정하기는 쉽지 않다. 꼬박꼬박 들어오던 월급을 대체할 수단, 앞으로의 커리어, 이직처 등 골치 아픈 것들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괴로워하면서도 퇴사를 차일피일 미뤄왔다. 3년 동안 한 회사에서 이미 입지를 다져놓은 상황에서 이를 박차고 나가기엔 잃을 것이 많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퇴사를 결정하게 만든 요소들이 있다.

후려쳤어야 하는데...  누구를? 쉿 ㅇ.< 출처. mbc 나혼자산다 

1.  개인의 성장이 이뤄지기 어려운 업무구조

업무에 대한 피드백이 없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상사의 구체적인 피드백은 팀원의 성장을 이끌어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물론 과유불급이다) 전 회사는 "요즘 일 어때? 재밌어? 할 만 하지? 힘든 건 없고?"라고 물어보는 것이 다였다. 구체적으로 "이런 부분에 문제가 있네. 이건 이렇게 고치는 게 나아" 같은 실질적인 피드백은 거의 없었다. 또한 직속 상사는 내 분야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었고, 현장업무를 하지 않아 소개해줄 인맥이 거의 없는 것도 힘들었다. 그 와중에도 살아남기 위해 발로 뛴 나에게 박수. 


지엽적인 것에 매달리게 하는 업무 가이드라인도 문제였다. 가이드라인을 지키기 위해 너무 많은 시간을 소요했다. 자연스레 핵심 업무에 투입하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시장에서의 내 가치도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회사가 미는 핵심사업에 투입됐는데, 문제는 내가 이미 맡는 업무가 많았다는 것. 회사는 두 가지를 다 해내기를 원했다. 안타깝게도 9 to 6 근무로는 좋은 퀄리티를 뽑아낼 수 없었고, 나는 야근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순간 '이게 뭐하는 짓이지? 나한테 이득이 되는 일인가? 회사에게만 이득이 되는 것인가?'라는 질문이 고개를 들었다. 후자라는 판단이 섰다. 이후 퀄리티에 대한 욕심을 포기하고 빠른 속도로 업무를 처리해 야근을 없애버렸다. 


여기서 파생된 문제는 일에서 얻는 자부심, 성취감도 사라졌다는 것. 회사가 주는 마감일에 맞추기 위해 기계적으로 일했다. 당시 눈빛에 영혼이 없었다고 한다. 선배가 "너 작년에는 나한테 아이템까지 제안할 정도로 열정적인 사람이었는데...어쩌다 이렇게 됐니"라고 말할 정도였다. 재미로 움직이던 나는 월급과 퇴근만을 바라보며 근무 시간 동안 끊임없이 괴로워하게 됐다. 그리고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지? 그렇다고 회사를 그만두기에는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무서워... 일 진짜 그만하고 싶다'라는 우울의 무한궤도에 빠졌다. 


이수정 교수님. 인간에게는 희망이 없다며 동물 프로그램 애정하신다고. 동의합니다.. 출처. tvN어쩌다어른

2. 거지 같은 상사

전 회사의 가장 큰 매력은 사람이 좋다는 거였다. 하지만 회사가 커질수록 또라이의 유입량도 늘어나더라. 회사의 크기와 또라이의 수는 비례한다. 상사 A는 그림으로 그린 듯한 꼰대였다. '나도 꼰대일까? 자가테스트'에서 100점 만점을 받을 것 같은 사람이었다.


상사 A는 가스라이팅의 귀재였다. 내가 부당한 대우를 받은 뒤 강하게 반발하자 그는 자신의 인맥, 나이, 경력 등을 내세워 나를 찍어 눌렀다. "나도 n0년 동안 일해봐서 알아. 젊을 땐 다 그렇지. 하지만 사람이 말이야. 태도라는 게 있어. 눈 똥그랗게 뜨고 쳐다보면서 그렇게 말하면 내가 도와주고 싶겠어? 너 이 회사 나가더라도 내 얼굴 안 볼 자신 있어? 나 카카오톡에만 연락처 수천 명 있어." (처음에는 일단 눈치 보면서 가만히 있었지만 갈수록 어쩌라고 싶었다)


그러면서 그는 어떤 잘못이든 개인의 탓으로 돌렸다. 회사 규모, 자원의 한계 등 이유가 분명히 있음에도 개인의 문제로 규정됐다. "그 정도면 당신이 딱 거기까지인 사람인 거지" 같은 말로, 팀원의 가치를 자신이 한정지었다. 

상사 A를 바라보는 직원들의 눈빛. 출처. MBC나혼자산다

또한 상사 A는 직원들을 메모장으로 활용했다. 주말에 아무 때나 연락하는 것은 물론이었고, 주말에 연락해서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조차 하지 않았다. 그중 제일 연락 잘 받는 직원(호구)에게는 매주 주말마다 연락해 일을 시켰다. 수당은 물론 없었다. 자발적으로 주말 출근한 사람을 대대적으로 치하하기도 했다. 아, 퇴근 10분 전에 일 시키는 건 당연하다. 직원들이 열심히 만들어놓은 근로문화를 상사 A가 마음대로 휘저어놓았다. 마치 프랑스에서 근무하기 시작한 워커홀릭 미국인처럼.. 상사 A의 방식은 불법 소지가 있다는 게 차이점이다. 상사 A 욕은 끝도 없이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만 줄이겠다. 


출처. 트위터

3. 직업 매력도 감소

3년 정도 구르다 보니 업계의 미래가 대충 예상됐다. 선배들을 보며 내 미래를 그려봤다. 답이 없었다. 산업은 사양길을 걷고 있었으며, 많은 이들이 탈주하고 있었다. 물론 매력적인 직업이지만, 큰 기업에 근무하는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는 구조였다. 


정리해보면 이렇다.

-돈을 적게 준다

-사양산업이다

-일하는 게 피곤하고 소모적이다


또 나는 돈을 벌고 싶었다. 내 직종은 연봉 테이블이 전반적으로 너무 낮았다. 기본적으로 돈을 많이 주는 직종 혹은 기업으로 길을 틀고 싶기도 했다. 


갑자기 분위기 픽사베이. 출처. 픽사베이

그럼에도 무서웠다

하지만 용기가 없었다. 코로나 19가 대한민국의 경제를 습격했기 때문이다. 다시는 취업할 수도 없겠다는 공포감이 엄습했다. 일단 존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우울증의 시작일 줄이야...^^. 


다음 편에는 우울증 진단을 받은 뒤 상담 선생님과의 대화를 살짝 실어볼 예정이다. 퇴사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30분이다. 기대해 주시라!

매거진의 이전글 직장생활 2년 만에 우울증을 진단 받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