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퇴사하면 다들 전 세계 어딘가 존재하는 자아를 찾으러 떠난다. 인도든 치앙마이든 아무튼 뭔가 조용하고 좋은 곳으로. 하지만 코로나 19가 전 세계를 봉쇄하며 퇴사러가 갈 수 있는 곳은 방콕밖에 없었다. 태국 방콕 말고.... 집 방콕.....
다행스럽게도 나는 집에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 여행을 못 가는 건 고통스러웠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놀거리를 발굴해왔다.
요리
감바스와 까르보나라.
앞서 브런치에도 썼지만 요리 실력이 급격하게 늘었다. 외식이 어려워지니 자동적으로 요리를 많이 하게 됐다. 유튜브를 보며 독학했다. 나의 스승은 꿀키님, 하루한끼님, 그리고 닭발가게 아저씨(?) 백종원님이다. 처음엔 김치찌개, 라볶이처럼 가벼운 것들만 했는데 점점 세계화되고 있다. 라자냐(이탈리아) 감바스(스페인) 팟타이(태국), 샤부샤부(일본) 등등. 몸뚱이 대신 혀라도 여행을 보내야지 싶다.
베이킹
갓 구운 치즈케이크.
요리 유튜브를 보다 보면 필연적으로 뜨는 영상이 있는데 바로 베이킹이다. 왜냐하면 요리 유튜버들이 제빵 영상도 많이 올리기 때문이다. 베이킹은 오븐도 없거니와 재료도 많이 필요해 넘겨버렸는데 채피님의 에어프라이어 베이킹 영상을 보는 순간 도전 욕구가 끓어올랐다. 웬만한 재료가 집에 있어 스콘 굽기를 바로 시도했고....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이후 당근케이크, 사과파이 등을 성공해버렸다... 에어프라이어의 작은 용량에 성이 안 차 결국 오븐을 질렀다. 고구마 쿠키, 치즈케이크 등을 구우며 돼지가 되고 있다.
게임
퇴사하고 가장 하고 싶은 것이 게임이었다. 플스 게임은 한번 시작하면 4~5시간은 기본적으로 하기 때문에 일하면서 플레이하기는 힘들었다. 퇴근하면 기력이 후달렸고 주말에는 4~5시간을 쏟아야 한다는 생각에 손이 잘 안 갔다. 퇴사 후 일단 일어나서 밥 먹고 바로 PS4를 켜고 5시간을 내리 달렸다. 현타가 오기도 했지만 너무 재미있는걸! 그렇게 마블스 스파이더맨, 비욘드 투 소울즈 등을 깼고, 호라이즌 제로던은 가마솥에 갇힌 트라우마가 있어 아직도 손을 못 대고 있다. 요즘엔 바빠서 게임을 잘 못하는데, 언젠가 날 잡고 언차티드 시리즈를 정주행하고 싶다.
독서
와인과 함께하는 독서모임.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올라가면서 구글미트로 화상토론함. 새로운 경험이었다.
회사 다니면서 가장 줄었던 활동이 독서. 하루 종일 활자를 보다 보니 글은 읽기도 싫어져서 책을 멀리한 지 꽤 됐다. 하지만 이젠 아니지. 활자와 멀어지니 오히려 활자가 고파지더라. 도서관이 문을 닫아 리디셀렉트를 통해 흥미로운 책들을 다운받았다. 좋은 세상이다.
자기 전에 책을 읽는 걸 습관화했고, 3개월 동안 꽤 많은 책을 읽었다. 소설로는 피프티피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달러구트 꿈백화점 등이 있고 경제 책으로는 엄마 주식 사주세요, 파이어족이 온다, 배당주 관련 책, 에세이/철학으로는 여행의 이유, 부모를 실망시키는 기술, 골드만삭스를 신고 차이나를 걷는 여자 등을 읽었다. 정리해보니 꽤 많이 읽었다. 고등학교 때 공부하기 싫어 책을 읽었을 만큼 책을 좋아했는데, 그런 나 자신을 되찾은 거 같아 기쁘다.
요가
유튜브 캡처.
상담선생님이 퇴사를 한 뛰 꼭 빠뜨리지 말 것 세 가지를 당부했다. 끼니, 수면 그리고 운동. 알다시피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와 2.5단계가 실행되면서 온갖 체육시설들이 문을 닫았고 나도 가기가 꺼려졌다. 그래서 홈트를 시작했다. 해보고 싶었던 것은 요가. 마음의 안정을 주기 때문이다. 역시나 만물상점 유튜브를 찾았고, 지음요가라는 요가채널을 발굴했다. 차분하고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진짜 요가원에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요가 동작들도 쉽고 은근히 빡세 운동이 된다. 아침에 일어나서 햇빛을 받으며 요가하는 게 습관이 됐다.
이젠 할일이 생겨 놀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다. 대신 브런치와 블로그에 연재하는 걸 새로운 놀거리로 생각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