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에서 울다 - "여러분 고맙습니다"

by 임성현

공주에서 흘린 눈물은 온라인 글쓰기 모임에 올라온 한 글에서 비롯되었다. 여행기인 그 글은 이상한 돈가스집을 소개하며 시작했다. 빨간 간판에 가게 이름은 대신 메뉴와 가격만이 크게 쓰여 있는 곳. 저런 간판을 공주에서 본 적이 있었는데, 혹시나 해서 스크롤을 급히 내려보자 아니나 다를까 공주가 여행지의 배경이었다. 그곳을 기억하는 이유는 강렬한 인상의 간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주메뉴가 돈가스와 황탯국이었기 때문이다. 제민천에 자주 가는 편이었지만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음식의 조합이 적힌 그 간판을 볼 때마다 쉽게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 그런 곳을 글을 쓰신 분은 예약까지 하고 간 것이다. 심지어 미국행을 포기한 간 공주 여행에서. 가게가 어떤 곳일지 궁금한 마음에 서두로 돌아가 천천히 읽어보자 뜻밖에도 글 안에는 사장님의 친절함으로 가득했다.

‘이번 주말에는 무조건 공주에 가야겠다.’

마침 얼마 전 지인의 SNS에서 본 한적한 카페도, 찻집 대표님이 알려준 소품 가게도 모두 공주에 있었다. 이미 수없이 다녀본 공주였지만 서로 다른 방향성을 가진 세 공간이 묘하게 교차하고 있는 공주에 얼른 다녀오고 싶었다.


공주의 외곽에 있는 카페에서 책을 보고 글도 끄적이다 소품 가게에 들러 선물을 산 뒤, 제민천을 천천히 걸으며 돈가스집으로 향했다. 오후 세 시 반, 저녁을 먹기에는 이른 시간이었지만 전화로 먼저 느낀 사장님의 친절함에 가게를 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카페에서 소품 가게로 향하는 도중 영업시간이 궁금해져 돈가스집에 전화를 걸었었다. 길어지는 신호음에 전화를 끊을 때쯤 전화를 받은 사장님께 영업시간을 물어보자 사장님은 지금도 열었다며 대뜸 예약을 먼저 하라고 하셨다. 방문 시간을 아직 정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갑작스러운 예약 요구에 당황해 몇 시까지 하시냐고 다시 묻자 상관없다며 손님에게 맞춘다는 대답을 사장님께서 들려주셨다. 손님에게 맞춘다는 표현에 나는 웃으며 그러면 다시 전화를 드리겠다고 했다. 그 가게의 예약은 사장님이 아닌 손님의 편의를 위한 것이었다.

가게 앞에 서서 여전히 적응이 안 되는 간판을 한 번 더 바라보고 나서 가게 문을 천천히 열었다. 아무도 없는 식당 안에는 한 할머니께서 두건과 앞치마를 두른 채 의자에 앉아 트로트가 나오는 티브이를 보고 계셨다.

할머님이 사장님이라니. 순간 사장님을 할머니라 지칭하던 글과 오랜 세월이 묻어나던 전화 속 목소리가 떠올랐다. 모든 것이 할머니임을 알려주고 있었건만 가게를, 그것도 돈가스집을 운영한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사장님을 연세가 좀 있으신 이모님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낭패다. 할머니라니.

할머니란 존재에 취약한 내가 아닌가. 영주의 무섬마을에서 오래된 한옥들을 구경하다 한 가옥에서 익숙한 냄새를 맡았을 때 그 집을 나와 돌담 아래에 숨어 한참을 울었었다. 고성의 왕곡마을을 거닐다 거실에 홀로 앉아 티브이를 보시던 할머님께서 인기척을 듣고 나를 쳐다봤을 때도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선 뒤 아무도 없는 길가에 서서 눈물을 훔쳤었다. 무섬마을의 가옥에서 나는 냄새가 이제는 사라진, 한 때 내가 자라던 우리 할머니의 집 냄새와 같아서. 지나가는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는 왕곡마을에서 나를 쳐다보시던 할머님이 꼭 인기척을 오래 기다리고 계셨을 우리 할머니일 듯해서. 몇 번의 눈물을 흘리고 난 뒤 나는 오래된 가옥이 있거나 혼자 있는 할머님을 마주칠만한 곳은 당분간 여행하지 않기로 다짐까지 했었다.

그런 내 앞에 할머님이 앉아 계셨다. 그냥 나갈까. 하지만 가게에는 나 혼자였고, 끝내 예약은 하지 않았지만 전화를 했었었고, 결정적으로 이미 주인 할머님께 ‘어서 오세요’라는 말을 들어버린 후였다. 불길한 예상을 뒤로 한 채 멋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가게 구석에 앉아 돈가스를 주문했다.

주인 할머님이 주방으로 들어가자 젊은 가수가 부르는 트로트만이 들려왔다. 자리에서 일어나 가게를 둘러보았지만 인테리어라고는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성경 구절과 그 아래로 크게 쓰여 있는 메뉴들이 전부였다. 저렇게 메뉴가 적혀있지 않으면 도무지 무엇을 파는 음식점인지 알 수 없는 곳이었다. 잠시 후 주인 할머니께서 자기 몸만 한 주전자를 들고나오셨다. 큰 주전자에 비해 주인 할머님이 너무 작았다.

“물이라도 먹고 있어.”

황급히 할머님 손에서 주전자를 받아 가게 중앙에 있는 테이블에 올려놓으며 조심스레 연세를 물어보자 주인 할머님은 여든이라 말씀하시며 ‘젊지?’하고 웃으셨다. 그 말에 불길한 예상이 곧 벌어지려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끓인 물이네요, 할머니.”

컵에 물 한 잔을 따라 내 자리로 돌아와 주방이 보이지 않게 몸을 돌려 앉았다. 그러지 않으면 정말로 예상한 일이 벌어질까 봐, 그런 나를 보고 주인 할머님께서 마음 쓰실까 봐.


한참 동안을 기다리자 주인 할머님이 수레에 돈가스와 반찬과 황탯국을 싣고 오셨다. 전화로 영업시간을 불어봤던 사람이라고 말을 건네며 주인 할머님과 같이 수레 위의 그릇을 테이블에 옮기다 뚝배기에 갓 지은 밥을 보았다.

“밥이 이렇게 동그랗게 지어져야 좋아, 그래야 맛있지. 그래서 예약을 하고 오라고 한 거야. 밥 짓는 데 시간이 걸리거든. 예약하고 오면 배고픈데 안 기다리고 바로 먹을 수 있잖아. 어서, 접시에 밥을 옮겨놔.”

주인 할머님에게 예약은 배고픈 손님을 기다리지 않게 하기 위한 방안이었다. 할머니란 존재는 왜 그리들 배고픔을 걱정하는지. 눈시울이 붉어지고 결국 예상했던 일이 벌어졌다. 티 내지 않기 위해 휴지로 조심스레 눈물을 닦느라 뚝배기에서 밥을 옮기지 못하고 있자 뒤에서 지켜보던 주인 할머님은 뚝배기가 식는다고 밥을 어서 옮기라고 재촉하셨다. 그래, 뚝배기가 식으면 숭늉이 맛없지. 쌀알이 동그랗게 지어진 흰밥을 황급히 앞접시에 옮기자 주인 할머님은 뚝배기를 들고 가져가셨다.

“아니, 제가 물을 부어도 되는데…”

목이 메 제대로 말도 못 하는 사이 주인 할머님은 느릿느릿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셨다. 돈가스와 황탯국, 하얀 쌀밥과 김, 김치와 깍두기. 테이블에 놓은 음식들을 보고 있으니 할머니가 해주시던 음식들이 생각났다. 돼지고기가 가득 들어있던 김치찌개, 배추는 물론 양파부터 고구마 순까지 온갖 재료로 담그던 김치, 큰엄마도 엄마도 끝내 따라 하지 못해 이제는 먹을 수 없는 콩나물잡채까지. 그 빨간 음식들을 그때는 왜 사진으로 남겨놓을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모든 음식이 나오면 예쁘게 사진으로 담고 싶어 황탯국만 몇 번 떠먹고 돈가스는 자르지 않은 채 숭늉을 기다렸다. 하지만 곧 음식을 먹고 있지 않는 나를 보고 주인 할머님이 속상해하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사이 주방에서 뚝배기에 숟가락이나 국자 같은 것이 부딪치는, 주인 할머님께서 숭늉을 끓여주는 소리가 들려왔다. 안 끓여주셔도 되는데, 이미 충분한데. 탁. 탁. 뚝배기에 무언가 부딪치는 소리에 맞춰 눈물이 계속 떨어졌다. 어느새 테이블 위에는 돈가스 크기만큼 휴지가 쌓였다.

“아니, 왜 안 먹고 있어?”

팔팔 끓는 숭늉을 들고 주인 할머님께서 다가오셨다.

“숭늉까지 사진에 담아 주변에 홍보하려고요.”

그 말에 주인 할머님은 해맑게 웃으시며 ‘젊은이들이 홍보해 주면 정말 고맙지’라고 하셨다. 이제 마흔한 살이라 젊은이는 아니라고 말하려다 서른이 넘은 내게 여전히 강아지라고 부르시던 할머니가 생각났다. 할머니들에게 손주는 언제까지나 어린 존재인 건가. 주인 할머님은 바라보지도 못한 채 황탯국이 맛있다고 하자 주인 할머님은 직장인들이 아침에 해장하러 많이들 온다고 하셨다.

“숭늉까지 다 먹고 가면 좋은데 다들 아침에 출근하느라 바쁘니까 밥을 먹다 나가. 예약하고 오면 내가 미리 준비해 줄 수 있는데 ….”

주인 할머니의 말에는 손주 같은 직장인들에게 밥을 다 먹이지 못한 이의 안쓰러움이 느껴졌다. 그나저나 출근하는 직장인들이 아침을 먹으러 여기에 온다면 대체 주인 할머님은 몇 시에 문을 여시는 걸까.


자꾸만 나오는 눈물을 휴지로 막으며 겨우 음식을 먹고 있는 도중 노래를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주인 할머님께서 의자에 한쪽 다리를 올려놓고 티브이 속 가수의 노래를 가만한 소리로 따라 부르고 계셨다. 그 모습에서 여름이면 정자에 앉아 하얀 메리야스를 입고 부채질을 하며 알 수 없는 노래를 부르시던 할머니가 보였다. 살아계셨다면 할머니는 임영웅과 영탁 중에 누구를 더 좋아하셨을까? 그때부턴 정말 음식을 어떻게 먹었는지 모르겠다. 지금 내가 먹고 있는 게 돈가스인지, 황탯국인지, 눈물인지, 콧물인지도 모른 채 음식을 남기지 않겠다는 생각만으로 돈가스 옆에 있는 옥수수알 하나까지 모두 입에 넣었을 뿐이었다. 내게 이 음식들은 오랜만에 할머니가 차려준 식사와 같았다.

식사를 마치고도 쉽게 일어나지 못하고 앉아 있자 가게 유리 너머로 무언가 지나가는 게 느껴졌다. 가게 앞에 놓인 작은 그릇에 담긴 사료를 먹으러 온 고양이. 누가 사료를 챙겨 주고있는지 뻔했다. 고양이를 사진으로 담고 나서야 휴지들을 꾹꾹 눌러 손안에 감춘 채 계산을 하기 위해 주인 할머님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피곤하실 텐데, 몇 시까지 하세요?”

“괜찮아. 피곤하면 그때그때 일찍 퇴근해.”

음식값을 깎아주려는 주인 할머님을 몇 번이나 말리고 난 후 허리를 숙여 인사를 드렸다. 아무렇지 않게, 바보같이 티 내지 말고 담담하게 돌아서서 나가자. 그렇게 결심하고 고개를 들었건만 나를 보고 웃으시는 주인 할머님을 보자 더는 아무렇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마흔한 살의 젊은 나는 어린 손주처럼 팔로 얼굴을 가린 채 엉엉 울어버렸다. 진짜 낭패였다. 이런 내가 나도 어이가 없는데 주인 할머님은 어떠실까. 주인 할머님께서 당황하지 않도록 급히 눈물을 닦고 죄송하다고 말했다.

“죄송하긴. 아이고, 할머니한테 예쁨을 많이 받았구나. 어렸을 때 할머니가 키워주셨나 보구나.”

주인 할머님은 이런 나를 보고도 전혀 당황해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내가 다른 손주들보다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을, 어린 시절 형과 함께 할머니 품에서 자랐다는 사실을 다 알고 계셨다. 또 오겠다는 말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 채 가게 문을 열고 나와 유월의 햇볕이 쬐는 제민천을 보고 나서야 모든 일이 꿈만 같았다. 남은 눈물을 마저 닦고 뒤돌아보자 유리로 된 벽면에 가게의 이름이 조그맣게 쓰여 있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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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이번에는 주인 할머님으로 나타나셨군요. 요즘 학교 일 때문에 힘들어하는 손주에게 밥 한 끼 해주고 싶으셨나 봐요. 그날 저는 대전으로 운전하며 돌아가는 내내 울었어요. 그렇게 할머니 때문에 펑펑 울면서 운전하던 때가 이전에도 있었는데. 할머니가 나를 두고 먼저 하늘나라로 가셨던 날, 그날도 대전에서 전주로 가면서 많이 울었었어요. 이러다 저 사고 나면 어떻게 해요. 그럼 할머니 속상해하실 거잖아요. 그러니 이제 제가 먼저 할머니를 떠올릴게요. 세상 어떤 할머니를 만나도 더 이상 울지 않게, 눈물 대신 당신을 반갑게 맞이할 수 있게. 그래도 혹시나 제가 또 오래 할머니를 잊고 지내면 다시 나타나 주세요.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할머니 앞에서만큼은 어린 손주처럼 울 수 있으니까. 건강하게 또 봬요.









글, 사진 :: 임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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