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로 손바닥에 올려보는

손바닥 위에 올려놓으려 했던 문장들

by 임성현

첫 기억은 중학교 때로 기억한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은 시간이 지나는 일이라 여겼던 때가. 영원할 줄 알았던 존재들이 시간이 지나며 사라지거나 변하는 걸 볼 때마다 어린 날의 설익은 생각으로는 슬프다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무상함’이라는 단어를 접하고 나서야 나를 휩쓸던 그 알 수 없는 그 감정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었다. 사라지거나 변하는 존재에 나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그런 내가 이십 대를 지나 막 서른이 됐을 때는 얼마 전의 이십대와 별 다를 것이 없어 큰 감흥이 없었다.

하지만 일 년이 지나 ‘3’ 뒤에 ‘1’이 붙기 시작하자 무언가 달라 보였다.

1, 2, 3 …. 새로운 시기의 카운트가 시작된 느낌. 이제는 정말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 앞으로도 계속 변해갈 내 나이를 최대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매번 내 나이를 잊지 않으려고 했다. 시간이 흐르는 건 여전히 슬픈 일이지만 시간의 변화가 주는 무상함에 빠지지 않도록, 돌이킬 수 없는 만큼 다가오는 것들을 환영할 수 있도록 내 시간이 흐름은 계절의 변화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싶었다.

그러다 어느새 마흔도 넘어 올해 다시 1의 카운트가 시작되었다. 이제는 지나가는 아이를 보고 인사를 건넬 때면 형이나 오빠는커녕 삼촌도 아닌 ‘아저씨’라는 표현을 스스럼없이 쓰고 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호칭을 정리해 가는 나를 보면 헛웃음이 나오지만 잘하고 있다고도 생각한다.


얼마 전 동료 선생님들과 술자리가 있었다. 평소 같으면 이런저런 핑계로 나가지 않았겠지만 대학 후배이자 동료 교사인 친한 동생으로부터 사람들이 나를 궁금해한다는 말을 들은 터라 빠질 수가 없었다. 셋이 모이기로 한 술자리에 몇 분이 더 참석할 거라는 이야기를 후배에게서 들었을 땐 이참에 한꺼번에 인사를 드리면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참석하는 선생님들의 이름을 다 듣고 나자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날 술자리의 최고 연장자가 바로 나였기 때문이었다. 형들이 없는 모임이라니. 멍한 것도 잠시 기어코 올 것이 와버린 느낌이었다.

- 이제부터 이런 자리가 더 있겠구나.

그렇다면 빠지기는커녕 맏형으로서 데뷔하는 무대인 만큼 거하게 쏴야 겠다고 다짐했다. 막내로서 한참을 얻어먹고 다니던 시절과 눈치껏 2차를 결제하던 시기가 있지 않았던가. 다가올 술자리에 남들은 모를 의미를 부여하며 스스로에게 축하의 말을 건넸다.

- 너 이제 맏형이야.


최근 이렇게 나의 나이를 체감하는 순간들이 많다. 쉬는 시간에 교실에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줬을 때 한 학생으로부터 자기 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악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고, 최근에는 미루고 미루던 옆머리 새치 염색을 집에서 혼자 처음으로 시도해 보았다. 그러고 보니 요즘 허리가 더 자주 아픈 듯하고, 깜박하는 일도 늘어나는 기분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상 해온 일이었으니 크게 당혹스럽지는 않다.

대신 내가 나이에 맞게 자라왔는지, 소위 말하는 어른이 되었는지에 관해서는 여전히 혼란스럽기만 하다. 마흔은 불혹(不惑)이라 세상일에 판단이 흐려지는 일이 없다는 나이. 그러나 여전히 세상 물정을 잘 모른 채 ‘아, 그래?’를 입버릇처럼 말하는 내게 혹하는 것들은 늘어만 가고, 빠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우유부단 때가 더 많다.

나이 먹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자고 다짐했건만 정작 나이를 제때 따라가지 못하는 듯하다.

- 이러다 영영 따라잡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이제는 ‘어른스럽게’도 아닌 ‘어른답게’가 어울려야 할 나이. 너무 빠르게 가는 나이에게 조금만 천천히 가자고 말하고 싶어도 시간이 부족해 숙제를 못해왔다는 핑계를 대는 아이들을 혼낼 때의 내가 생각나 민망할 뿐이다.


때로는 아까운 말도 / 용기있게 버려서 더욱 빛나는 / 한 편의 시처럼 살게 하소서 *


20대에는 이해인의 시를 품으며 살고 싶었다.


나의 생활을 구성하는 모든 작고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한다. (…) 여러 사람을 좋아하며 아무도 미워하지 아니하며, 몇몇 사람을 끔찍이 사랑하며 살고 싶다. **


30대에는 피천득의 수필을 품으며 살고 싶었다.

20년이 지나는 사이 나는 저 문장들에 얼마나 다가갔을까? 하얀 머리가 많아진 만큼 내 마음도 하얘졌을까, 늘어난 주름만큼 마음의 굴곡만 더 생긴 건 아닌지. 무엇 하나 쉽게 버리지 못하고, 쓰레기를 몰래 버리듯 숱한 미움을 흩뿌리는 사람이 되어버린 걸 보면 마흔에 가까워질수록 저 문장에서 멀어지는 삶을 살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며칠 전에는 수업 준비를 하다 지문으로 나온 정일근 시인의 시를 보았다.


그 마을 사람들은 바다를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

떠나오던 날 마을 사람들이 주섬주섬 챙겨 선물로 건네주던 바다

읽다 만 시집 속에 곱게 접어 온 바다

삶에 지칠 때, 누군가가 아득히 그리울 때

나는 손바닥에 그 바다를 올려 놓고 엽서를 쓴다 ***


무심코 내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나를 올려놓고 살아왔길래 이런 방향의 빗금이 손바닥에 그어져 있는 것일까? 인생의 반환점을 돌고 있는 내가 앞으로 손바닥 위에 무엇을 올려놓을 수 있을지 궁금해져 이미 두 번의 실패를 맛본 나지만 40대는 이 시를 품으며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일이면 벌써 8월이다. 허둥지둥하는 사이 올해의 절반도 지나 남은 시간이 지나온 시간보다 적어지고 있다. 이렇게 또 한 살을 먹겠구나. 나이를 잊고 살아야 한다는 말도 있지만 나는 앞으로도 한 살씩 더 먹어가는 나이를 꼭꼭 곱씹을 예정이다. 끝내 따라잡지 못한다 해도, 손바닥 위에 올려놓으려 했던 문장들로부터 멀어진다 해도 시선의 방향은 늘 그곳을 향해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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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혜인, '서시' 중에서

** 피천득, 나의 사랑하는 생활' 중에서

*** 정일근, '주머니 속의 바다' 중에서






글, 사진 :: 임성현

Insta :: @always.n.alldays



* 이 글과 사진은 저의 개인 창작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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