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변화에 살뜰히 반응하며 그것들에 웃고 울며 지내고 싶다.
- 집 내놨어?
이 말은 옛 애인이 오랜만에 내 집에 들렀을 때 엉망인 집을 보고 했던 말이다. 그 뒤로 종종 집이 지저분해져 있을 때면 스스로에게 같은 말을 되묻곤 하는 버릇이 생겼다. 오늘, 거실이 한눈에 보이는 식탁에 앉아 이제는 사람들에게 잊힌 지 오래된 유행어를 뱉듯 내게 물어본다.
- 집 내놓은 거니?
밀린 청소를 마치고 의자에 앉아 정갈해진 거실을 바라보니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이 선명하다. 어느새 문 앞까지 성큼 다가온 여름, 그 여름의 햇살에 맞춰 겉 커튼과 속 커튼을 조절하고 식물들의 위치를 바꿔본다. 햇살이 더 드는 곳으로, 덜 드는 곳으로. 갑작스러운 화분의 위치 변화로 자리를 지키고 있던 작은 인테리어 소품들의 위치까지 덩달아 바뀐다. 내친김에 턴테이블의 LP를 다른 앨범으로 교체하고 오래된 러그도 세탁해 둔 러그로 바꾸자 거실이 마치 새로운 곳이 된 듯하다. 여전히 선명한 햇살이 비치는 거실을 사진으로 남겨본다. 사실 이렇게 찍어둔 거실 사진이 이미 여러 장이다. 틀린 그림 찾기처럼 달라진 곳을 찾기 어려운 거실 사진을 팔불출처럼 SNS에 또 올린다.
나를 아끼는 이가 봐도 이전과 무엇이 변했는지 알아채기 어려운 작은 변화지만 내게 이러한 변화는 무척 중요하다. 한 번씩 휴대폰이나 노트북 배경 화면의 사진을 바꿔보기, 출근길은 아니어도 퇴근길을 달리해 보기, 어제와 다른 필기감을 가진 연필을 꺼내 책에 밑줄을 그어 보기. 이런 사소한 변화가 반복되는 일상을 질리지 않게, 지치지 않게 해준다. 더구나 하루의 변화가 더 적어진 근래에는 더욱 그렇다. 언젠가 낮잠을 자고 일어나니 아는 동생에게 전화가 와 있어 전화를 걸자 동생이 대뜸 ‘잤어?’라고 물었다. 어떻게 알았냐는 나의 말에 형의 주말은 잠을 자거나, 서점이나 카페에서 책보거나, 어딘가를 여행 중이거나, 이 중 하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딱히 반박할 말이 없어 헛웃음만 나왔다. 이 년 전에 이 집으로 이사를 왔을 때도 칠 년을 살았던 이전 집과 별다르지 않게 꾸민 탓에 집에 놀러 온 지인이 ‘이전 집을 떠 온 거니?’라고 묻기도 했었다. 하지만 나의 주말은 그때마다 미묘하게 다르다. 읽는 책이 다르고, 가는 서점이나 카페가 다르며, 그 장소의 대표님과 나누는 대화가 다르다. 지금 집도 들어오는 햇살이 이전 집과 다르다.
누군가는 단조롭게 볼 삶이다. 사실 나도 그렇게 느낄 때가 많다. 그렇지만 덕분에 작고 사소한 일이 내 삶에선 크게 울린다. 내게 말을 건네는 이들의 작은 이야기도 즐겁게 들리고, 자주 가는 장소의 변화를 눈치채고, 오늘처럼 평소보다 환해진 햇살에 반응하는 내가 좋다. 하루하루의 색온도가 너무 비슷해 지겨울 때도 있고 한 번씩 그 지겨움이 만든 고독에 허덕이기도 하지만 그럴 때면 채도와 명도를 조금씩 바꾸면 된다. 그러면 그 안에 돋보이지 않던 색이 새롭게 보이기도 한다.
앞으로도 작은 변화에 살뜰히 반응하며 그것들에 웃고 울며 지내고 싶다. 내 사소한 주관을 지키며 살아가고 싶다.
글, 사진 :: 임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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