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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영 Nov 18. 2022

뽕뚜

단편

동수와 서희가 카페 테이블에 마주 앉아 있었다. 서희는 테이블 위에 양 쪽 팔꿈치를 기대 동수 쪽으로 몸을 약간 기울인 상태였고, 동수는 의자 등받침에 등을 기댄 채 몸을 축 늘어뜨려 앉아있었다. 천장에 매달려 테이블 위로 길게 늘어진 전등의 빛이 서희의 그림자를 만들어 냈다. 서희의 그림자는 자신의 몸보다 동수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 있었다.


서희가 자꾸만 질문을 던졌고 동수는 약간 귀찮다는 듯이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럴 때마다 서희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가려 노력했다. 서희의 커피잔은 거의 비어있었고 동수의 커피잔은 가득 차 있었다. 동수는 자꾸만 창 밖을 바라봤고, 서희는 동수의 얼굴이 닳도록 뚫어지게 쳐다봤다. 창문에는 내부의 온기와 외부의 온기가 부딪히며 만들어낸 김이 서려있었다. 동수가 손가락을 갖다 대자 마치 창문이 눈물을 흘리듯 물방울이 맺혀 흘러내렸다.


서희가 어색함을 이기지 못하고 커피를 마시려 말을 잠시 멈추자 정적이 흘렀다. 서희는 잠시 동안 고민을 하더니 갑자기 재미있는 이야기가 생각났다는 듯이 킥킥거렸다.


“내가 오늘 아침에 알람이 울려서 눈을 그대로 감은 채로 막, 이렇게 핸드폰을 잡아서 버튼을 누르는데 아무리 눌러도 알람이 꺼지질 않는 거야, 그, 너도 알잖아, 나 알람 고양이 울음소리로 해놓은 거 말이야. 그래서 자꾸 고양이 울음소리가 나서 나는 당연히 알람 소리라고 생각하고 계속 핸드폰 버튼을 누르고, 그런데 소리는 계속 나고. 결국 눈을 뜨고 핸드폰을 봤는데 시간이 새벽 5 시인 거 있지? 나 알람 항상 7시에 맞춰 두잖아. 9시까지 출근해야 되니깐 말이야. 그제야 알았지 고양이 소리가 핸드폰에서 나는 게 아니라는 것 말이야. 그래서 혹시나 해서 창가로 가서 커튼을 걷었더니 뭐가 있었는 줄 알아?”


서희가 홀로 이어가는 독백의 클라이맥스에 다다라 흥분에 가득 찬 목소리로 물었다. 동수가 시큰둥하게 어깨를 들어 올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서희는 섭섭함을 숨기며 약간은 진정된 목소리로 말했다.


“뽕뚜! 뽕뚜가 창가 턱에 이러고 앉아서 내 방을 보면서 막 울고 있는 거야.” 서희가 두 손을 의자에 내리며 고양이가 앉는 자세를 해 보였다. 다시 팔꿈치를 테이블 위에 올려 동수 쪽으로 몸을 숙였다. 이번에는 서희의 그림자가 더 가까워져 동수의 몸에 닿았다.


동수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홀로 작게 되뇌었다. “뽕뚜…”


“응! 뽕뚜. 뽕뚜가 집에 돌아왔어! 너도 뽕뚜 보고 싶지 않아? 너도 알다시피 뽕뚜가 너 진짜 좋아했잖아. 뽕뚜가 원래 정말 도도한 애라서 내가 데려오는 친구들한테는 눈길도 안 주는데 너만 보면 정말 신나서 막 애교 떨고, 몸 비비고…”


“뽕뚜…” 동수가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며 다시 작게 소리 내어 말했다.


“응. 뽕뚜… 너도 뽕뚜… 좋아했잖아.” 들떠있던 서희가 자신의 예상과는 다른 동수의 반응에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했었지…” 동수가 ‘했었’의 발음에 강세를 두며 과거와의 단절을 강조했다.


“뽕뚜가 다시 돌아왔다는데… 좋지 않아?” 서희가 서운함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동수가 매우 언짢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잠시 동안 정적이 흘렀다. 서희는 감히 말을 꺼낼 엄두를 내지 못했다. 동수가 끓어오르는 감정과 씨름하는 모습을 보며 최악의 상황을 상상했다. 결국 동수가 제압에 실패해 그 감정이 서희 자신에게 쏟아져 나올까 두려웠다. 또 반대로 그 감정을 다 쏟아내 버리고 나면 다시 원래의 둘 사이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적인 기대감도 들었다.


“뽕뚜는… 그저 날이 추워지고… 배가 고파서 다시 돌아온 것뿐일 거야.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 날이 따뜻해지면 다시 밖으로 나돌 거야. 항상 그래 왔던 것처럼. 그게 뽕뚜의 습성이야.” 동수가 오늘 본 중에 가장 긴 문장을 내뱉었다. 서희는 동수의 말이 무슨 뜻일지 고민하면서도 뽕뚜 이야기를 꺼내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야. 이번에는 느낌이 확실히 달라. 뽕뚜가 더 순해지고 내 말도 잘 따라. 이제는 내가 막 쓰다듬고 그, 뭐냐, 막, 귀엽다고 얼굴 부비부비 해도 짜증 내지 않고 가만히 있어. 예전 같았으면 막 성질내면서 냥냥펀치를 날렸을 텐데.” 서희가 냥냥펀치 시늉을 했다.


“내가 뽕뚜를 마지막으로 본 게… 작년 겨울이 마지막이지?” 동수가 물었다.


뽕뚜야 고마워. 서희가 마음속으로 뽕뚜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응응. 그때 우리 집에서 뽕뚜랑 맨날 셋이 같이 늦잠 자고, 해리포터 정주행 하고, 귤 까먹고, 그때 정말 재미있었는데. 나 그때 너무 행복했어.” 행복했던 기억을 회상하던 서희가 이제는 다시 오지 못할 지나간 과거라는 사실을 인지하고는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서희가 왼팔을 뻗어 동수 쪽 테이블 위에 올렸다.


서희의 손을 본 동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서희의 약지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에 박힌 보석이 전등 빛을 반사해 반짝거렸다. 동수의 왼손이 테이블 위로 올라가 커피잔을 들어 올렸다. 동수의 빈 손가락에는 반지 자국만이 남아있었다. 서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동수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커피를 내려놓았고, 서희는 외롭게 홀로 올려진 자신의 손을 다시 가져와 반대 손으로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뽕뚜도 그 새끼 잘 따랐어?” 갑작스러운 동수의 거친 말투에 서희의 눈이 동그래졌다.


“하긴, 애완동물은 주인을 닮는다던데, 똑같은 것들 끼리끼리 사는 거지.” 동수가 코웃음 치며 말했다. 동수의 차가운 표정이 서희를 얼렸다.


“지루해지면 떠나고, 아쉬우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돌아오는, 본인만 생각하는 그런 이기적인 것들. 뭐, 사람이 누구나 이기적이긴 하지만, 지금 네가 하는 행동을 봐. 난 이기적인 사람은 괜찮지만 자신이 이기적이란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착한 척 자신을 포장하는 사람들은 도저히 봐줄 수가 없어.”


서희의 눈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입술이 부들부들 떨렸다. 동수의 감정은 말을 마무리하기 위해 다시 동수의 입을 열었다.


“떠났으면, 가던 길 마저 가. 날씨 추워졌다고, 배고프다고 다시 돌아오지 말고. 우린 끝났어. 네가 끝냈어. 더 이상 너 보기 싫다. 가라. 내가 갈까?”


서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서희의 눈가에 맺힌 눈물이 무게를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볼을 따라 흘러내렸다. 서희가 눈물을 훔치며 카페 밖으로 나섰다.


동수가 텅 빈 의자를 보며 슬픈 미소를 지었다. 다시 창가로 고개를 돌렸다. 서희가 보였다. 동수가 서희의 뒷모습 위에 손가락을 가로로 긋자 그 줄을 따라 물방울들이 주르륵 흘렀다. 물방울들 뒤로 하얀 눈꽃 잎이 하나 떨어졌다.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셋이 되고, 순식간에 눈꽃 잎이 하늘을 가득 채웠다. 점점 멀어지는 서희의 뒷모습은 하나의 눈꽃 잎이 되어있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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